야생화와 풍경

타박네 2021. 1. 11. 13:40

 

주차장 근처에서 개 두 마리가 여기저기 영역표시를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유기견들인지,주인이 있는 개들인지 모르겠어서 마음 편히 욕도 못하겠다.

너희들이 무슨 잘못이겠냐.

 

 

발로 꽉 움켜쥔 무엇을 뜯어 먹고 있는 중이다.

뒷태가 예뻐서 찍어봤는데 이름을 몰라 불러주지 못했다.

미안,짹짹아!

 

 

 

 

 

 

 

 

 

 

 

 

이제 이 산책길은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이 되었다.

부드럽게 굽이진 흙길과 사납지 않은 오르막 내리막길,사방이 탁 트인 능선길,

걸을 수록 고마운 길이다.

문제는 이곳에 찾는 두루미들이다.

두루미들의 주 서식지는 횡산리 빙애여울이어서 대부분 그곳에 터를 잡고 겨울을 난다.

낮시간 여기서 머무는 건 강의 저쪽과 이쪽을 모두 합쳐 스무 마리 안팎이다.

우리 산책은 종종 두루미 가족의 한가로운 식사 시간을 방해하곤 한다. 

다급한 비명과 날개짓을  볼 때마다 마음 한켠이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결국 미안함이다.

본의가 아니라 해서 미안함이 덜 하지는 않다.

십리 밖에서 우리가 숨만 쉬어도 알아챌 거라며 두루미들의 예민한 감각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저 두루미들 만큼 우리도 여기가 좋은데.

대신 두루미들이 자주 보이는 율무밭 근처를 지날 때는 각별히 신경을 쓴다.

길모퉁이 너머 뚜루뚜루 소리가 들리기라도 할 때는 최대한 몸을 낮춰 걷기도 한다. 

가끔은 들키지 않고 산책을 마치는 날도 있다.

 

 

 

 

 

 

 

개안마루 옆 율무밭에 수확하지 않았는지 못했는지 씨앗을 달고 선 율무가 듬성듬성 있다.

그리고 여기선 단 한번도 두루미를 만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건 좀 아까운 걸?

그대로 세워둬봤자 바람에 삭고 썩고 하기 밖에 더 하겠어?

배를 곯아본 적 있는 나는 다른 건(영혼의 허기 뭐 그런거) 몰라도 배 고픈 남의 사정 짐작은 잘한다.

월백 설백 천지백, 눈 덮힌 연강길 그 숨막히게 아름다운 절경과 함께

먹이를 찾느라 눈밭을 파헤치는 두루미들의 고단한 두 발이

짬짜면처럼 묶여 생각으로 떠오르던 참이었다.

요 며칠 전부터 폭설 대비용으로 마트에 가면 잊지 말고 율무를 좀 사둬야지 했었다.

 

그렇게 율무 이삭줍기를 시작했다.

카사장과 나는 낱알을 따 비닐봉지에 담고 실장는 어느 천년에 한알한알 따 모으냐며 줄기채 툭툭 꺽었다.

어느 정도 따고 꺽은 뒤 남은 건 발로 밟아 눕혀놓았다.

혹시라도 이곳을 찾아오는 두루미가 있을 지도 모르니.

 

 

 

 

 

 

 

 

 

 

 

 

 

 

 

 

 

 

 

 

 

 

 

 

 

길에서 조금 떨어진 오목하고 아늑한 율무밭, 늘 예닐곱 마리의 두루미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가지고 온 걸 뿌리며 보니 탈곡하고 버린 더미 안에 율무 알갱이들이 제법 많다.

이곳을 찾는 수가 많지 않아 그 정도만 해도 겨울 나기에 충분해 보였다.

다행이다.

 

 

 

 

 

 

 

 

 

 

 

 

 

물먹으러 왔을까?

근처 웅덩이에 발자국이 어지럽다.

 

 

 

 

 

 

 

 

 

 

 

 

 

 

 

 

 

 

 

 

 

 

 

 

 

 

 

 

 

 

 

 

 

'혹시라도' 하던 말이 땅에 떨어져 고물 묻을세라 냉큼 날아온 두루미들.

우리가 따고 꺽던 율무밭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그립던 님 꿈에서 만난 듯 능선 위에 쪼그려 앉아 바라보았다.

하염없이,

왼쪽 하늘이 불그레 물들 때까지.

젠장,하마터면 동사할 뻔 했다.

외사랑은 내 스타일 아님.

그나저나 다음엔 저 비닐끈들이나 치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