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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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16.

홋카이도 비에이(美瑛) 마일드세븐언덕

 

더러는 아픈 일이겠지만
가진 것 없이 한겨울 지낸다는 것
그 얼마나 당당한 일인가
스스로를 버린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몰아치는 눈발 속에서
눈 씻고 일어서는 빈 벌판을 보아라
참한 풀잎들 말라 꺾이고
홀로의 목마름 속
뿌리로 몰린 생의 온기,
함박눈 쌓이며 묻혀 가는 겨울잠이여
내가 너에게 건넬 수 있는 약속도
거짓일 수밖에 없는 오늘
우리 두 손을 눈 속에 파묻고
몇 줌 눈이야 체온으로 녹이겠지만
땅에 박힌 겨울 칼날이야 녹슬게 할 수 있겠는가
온 벌판 뒤덮고 빛나는 눈발이
가진 건 오직 한줌 물일 뿐이리
그러나, 보아라
땅 밑 어둠 씻어 내리는 물소리에 젖어
그 안에서 풀뿌리들이 굵어짐을
잠시 서릿발 아래 버티며
끝끝내 일어설 힘 모아 누웠거늘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당당한 일인가


김완하

 

 

Blåmann (Lost Sheep) - Sigmund Gro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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