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화인 2012. 11. 27. 11:49

기법적인 프로세스와 축조된 화면


 

고 충 환(미술평론)


  이기성은 진작부터 회화적이기보다는 기법적인 프로세스에 주목해왔다. 즉 기법적인 특수성과 자율성이 강조되는 것에 비해 작가의 주관이 상대적으로 제약받기 마련인 ‘마블링’(marbling)이라는 기법을 차용하고 있다. 마블링이란 문자 그대로 대리석의 표면효과를 꾀하는 것으로서, 물과 기름과의 반발작용의 원리를 이용해서 그 효과를 얻는 것이다. 그 원리나 미세한 얼룩의 중첩된 주름 효과를 가시화하고 있는 화면이 프레스의 암축 공정을 제외한다면, 해먹에 의한 흑백 모노톤의 석판화를 상기시킨다. 보기에 따라서는 대리석의 질감을, 그리고 오랜사긴의 경과를 함축한 퇴적층을 보는 듯한 표면효과가 시간의 아우라를 떠올리게 한다.

일견 동일한 화면을 반복적으로 나열한 듯한, 마치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듯이 축조(築造)된 화면에서 사실은 동일한 이미지는 하나도 없다. 모두가 하나같이 마블링 기법의 우연성, 우발성, 그리고 가변성이 낳은 다른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성의 도입이 전면적이지는 않다. 조절되고 계획된 우연성인 것이며, 작가는 이렇듯 이 작업 과정에 개입되는 우연성의 계기에 상당한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물 표면에 떠있는 안료의 알갱이와 얼룩이 종이(화면)와 만나는 접점에 주목하는 작가의 방식에서 종이를 안료가 담긴 수조(水槽)에 밀어넣는 각도와 속도를 조율함으로써, 그리고 종이의 재질을 다변화함으로써 다양한 화면 효과와 표현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붓질과 마블링 효과가 만나는 접점에서 의식적인 이미지(붓질)에 반하는 외적 요인들 즉 우연성의 개입으로 의도되지 않은 상황과의 만남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듯이 외관상 동일한 프로세스를 경유한 각기 다른 이미지들의 축조는 삶의 조건으로서의 ‘차이’를 상징한다. 마치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격언에서처럼 삶의 조건이란 외관상의 유사(類似)에도 불구하고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세계의 물상적인 조건, 그 조건에 대한 심정적인 경험, 그리고 그 심정적인 경험을 예술화한 미학적인 가치 중 어느 것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이렇듯이 유사와 차이가 물려있는 축조된 화면으로서 작가는 삶의 조건으로서의 차이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작가는 회화를 생산하는 과정에 개입하는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서보다는 객체로서의 회화가 생산되는 과정을 조력(助力)하는 수동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특정 기법이 유사(類似)회화를 생산해내는 현상(학)적인 지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동적인 작가의 존재가 회화의 또 다른 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를테면 흔히 회화가 생산되기는 전 과정에 작가의 주체가 능동적으로 간여하기 마련인 여타의 방법과는 다른, 기법 자체의 현상적인 과정이 표현과 일치하는 프로세스 아트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세스 아트는 작가와 무관하게 이미 주어진 조건으로서의 회화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발견하는, 그리고 그 수동성만큼이나 회화에 대한 주체의 의식적인 간여를 줄여나가는, 그럼으로써 마침내 주어진 조건 곧 우연성에 자기를 일치시키는 것으로서 순수의식에로 퇴행하는 점진적인 과정과 관련된다. 나를 지우는 것으로서 회화를 드러내는 과정을 순수의식으로 이해한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이러한 순수의식에의 추구는 작가의 정체 대신 회화의 드러냄에 주목한 모더니스트의 회화관과, 그리고 동시에 의식적인 자아를 탈각(脫却)해 가는 점진적인 과정에서 예술의 가능성을 찾은 재도론(載道論)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수 천 장에 달하는 자잘한 크기의 화면들이 축조된 외관상 동일한 문법의 반복되는 프로세스가, 점진적으로 밝아지거나 어두워지는 화면이 의식의 탈각 과정을 상징하고 있다. 이를테면 최초의 시점에서 동행했던 작업의 추이에 대한 여러 의식적인 편린들을, 작업의 향방에 대한 계산적이고 계획적인 면면들을 반복과정 속에서 탈각하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마침내 최초의 행위자, 주체는 없고 현상적인 프로세스만이 남는다. 그 과정이 동양적인 관조 혹은 미적 향수의 습성을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그 표면에 유성 안료가 풀어헤쳐진 수조에 종이를 담갔다 빼내는 반복적인 행위에서 전체적인 짜임을 조율하는 최소한의 의식적인 조작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정이 거의 무의식에 가깝다. 이러한 무의식의 과정이 순수의식과 닮아있다. 이로써 작가는 회화를 어떤 제로 지점에서의 창조적인 산물로서보다는 이미 주어진 조건이나 가능성과 만나는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주어진 조건이나 가능성이란 우연성을 말하며, 그 우연성과 조우(遭遇)하게 하는 심적 계기가 순수의식인 것이다.

이렇듯이 기법적인 프로세스가 동반하는 우연성의 효과 외에 작가의 작업에서 특징적인 것으로서 음악과 소리에의 관심을 들 수 있다. 오선지나 여타의 악기가 등장하는 작업이 그러하며, 이는 청각적인 이미지를 시지각적인 이미지로 번안하는 ‘공감각’에 기초하고 있다. 이들 작업에서 작가는 실루엣의 최소한의 표현으로 제한된 형상을 실크스크린으로 화면에 전사(轉寫)한 다음, 형상과 여백을 마찬가지의 마블링 기법으로 메우고 있어서 판법의 부분적인 도입을 엿볼 수 있다. 오선지를 전사한, 세로로 길게 늘여진 화면의 형태가 두루마리나 족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 자체로는 추상적이랄 수 있는 이러한 음악적 코드에의 관심은 기법적인 프로세스이전부터 작가의 작업을 지배해온 ‘세계의 기호학적 환원’에 이어진 것이다. 마블링 기법에 의한 현란한 색채 효과가 추상적인 음악적 코드와 만나면서 동적인 울림을, 화음을 화면에 부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반적인 회화적 습성 또는 프로세스를 반전(反轉)시키는 점이 흥미롭다. 이를테면 흔히 안료와 붓질이 일체를 이루는 일반적인 방법과는 달리, 마치 네거티브 화면이 그렇듯 붓질이 가해진 부분이 빈 여백으로, 그리고 붓질이 가해지지 않은 나머지 공간이 안료 층으로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작가는 정형화된 회화적 프로세스와 습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회화적 방법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기법적인 프로세스와 우연성의 효과, 그리고 반전된 화면이 유기적으로 동화(同和) 축조된 화면을 가시화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은 일정하게는 무의식적인 지층에 그 맥이 닿아있다. 화면을 장악하는 작가의 권력 대신 기법적인 프로세스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으로서, 주어진 조건 곧 우연성에서 회화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현상학적인 방법론을 멘탈리티(정신적인 지층)로 삼고 있다. 이로써 작가의 그림은 반쯤은 우연성이 만든 회화인 것이며, 물과 기름과의 자연 현상에 기초한 것이란 점에서 자연(성)이 만든 회화이기도 하다.


Technical Process used in and screen built in Ki-sung Lee's painting


 

Ko, Choong-Hwan(fine arts critic)



Ki-sung Lee started to focus on technical processes rather than pictorial aspects earlier in his career. That is, he adopted a technique named "marbling", which is restricted in the aspect of author's subjectivity even though technical peculiarity and autonomy are outstanding within it. "Marbling", which makes use of the surface effect of marble, is to enhance the effectiveness by using a characteristic of the repellent action of water and oil. Except for its principle and compressing process of a compressor in dealing with a screen visualizing effects of overlapped pleats appeared in minute spots, it reminds us of the image of a monotonic lithograph. Depending on the angle of appreciation, we may come across some image like complexity of "time" because of the surface quality which gives the look of a river drift over along time period of time.

At a glance, we cannot find any identical images on a screen built like accumulating bricks one after another, which seems like arraying identical screens again and again. All works have various images created by fortuity, incoherency and variability of marbling technique. In marbling, fortuity is not accidental, but planned. Even though it is not the only feature, it is a major feature which magnifies the author's intent. In the method of focusing on a tangent point of paper(screen) and pigment granules(spots), artists adjust angles and timing by putting paper into a cistern dissolving color pigment. In addition, they may achieve more various screen effectiveness of expressions by using various kinds of paper in quality. Also they may pursue unintentional situations by accidentalness, or by using an external feature against intentional image(brushing) appeared in a tangent point of "brushing" and "marbling."

Various images, which are built by a variety of images through superficially identical processes, symbolize 'difference' as a condition of the life. As we cannot be what we were before, nothing is same in life even though many things superficially look identical. Physical conditions of the world, psychological experiences and furthermore aesthetical values artistically embodying psychological experiences, are all the same in the phenomenal aspect. Authors, therefore, embody the differences as a condition of life in a screen coexisting 'similarity' and 'difference.'

By doing this process, authors became more passive and objective artists rather than active and conscious creators. So, artists focus on phenomenal aspects to create quasi-painting in the way of adopting some special techniques. In other words, different from the normal creating processes which make artists get involved with the overall creating process, "process art" is realized to reflect phenomenal processes of techniques.

"Process art" tries to find the possibility of painting in the given condition, and doesn't concern itself with the authors. It is involved with a gradual process regressing from the pure consciousness by according the author's intent like passivity with a given condition, or the fortuity, which doesn't interfere intentionally with their paintings. It presupposes that the painting process is considered with the pure consciousness by forgetting the authors themselves. This kind of pursuit is related to a theory, Jae-Do Ron(載道論) in the aspect of finding the possibility of arts throughout the gradual process of getting out of conscious ego. In addition, this is similar to some tendency of the modernistic point of view towards painting in the aspect of focusing on the surface expression instead of pursuing the author's identity.

Gradually lightening or darkening the screen, which is composed of a thousand small pieces of screens, symbolizes the repeated process getting out of the "consciousness." That is to say, various conscious pieces of screens accompanied from the beginning of work may be interpreted as a planned and calculated repetitive process. Finally, there is not any initial agent, but a phenomenal process without any subjectivity. We will get some kind of oriental images or aesthetic aroma out of this process.

Furthermore, most processes except for minimal conscious handling are unconscious in adjusting the overall structure throughout the processes to repeatedly put paper into a cistern dissolving color pigment. This unconscious process is similar to pure consciousness. We may understand this process as an experience by coming across some given conditions and possibilities, rather than a creative product from nothing. Therefore, psychological chances to meet fortuity may be regarded as a pure unconsciousness.

In addition to the fortuitous effect accompanied with the technical process, we may realize the concern of music and sound as a special characteristic in the author's work. As a work orchestrating various musical instruments on a musical sheet, this technique is based on "synaesthesia" transferring auditory images into visual ones. In this work, making minimal expression on a silhouette, authors may transfer the limited figure onto a silk screen. After that, the space and the figure may be filled with same marbling technique that shows some partial introduction to the lithographic method. This gives us some vertical images which resemble musical sheets or a lengthened figure on a hanging scroll. This abstract musical concern is connected with the "world's semiotic transformation" which governs the authors' work before the technical process. If dazzling coloring effects processed by marbling technique meet abstract musical codes, the screen may be a given dynamic sounding effect.

Furthermore, the aspect of general painting habits and processes reverse the image. Unlike the general method of coinciding pigment and brushing, brushed screen space like negative screen is dealt with blank space and unbrushed screen space is filled with pigment. Fulfilling this process suggests dubiety on the formalized painting process and habitude and a variety of other painting methods.

An author's work involving a technical process, fortuity, and reversed screen is visualized in the way of mechanically assimilated and built screening. Authors try to find painting possibility through some given conditions, or fortuity in the way of making them accorded in the technical process instead of occupying the whole screen. That is, authors stick on a phenomenal method (a mental basis). In this way, authors accomplish paintings mostly created by fortuity and this method may be called a naturally approached painting technique because it is based on the natural phenomenon happening in oil and w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