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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커 2010. 1. 10. 21:33

    강 얼음에 서서 주상절리 비경에 취하다



    《얼어붙은 한탄강. 흰 눈에 덮여 그 밑이 물인지 땅인지 알 길이 없다.

    그 눈밭 위로 강아지가 뛰놀고 사람이 걷는다. 한겨울 강원 철원에서 만나는 이 풍경.

    언 강 보기조차 힘든 온난화 지구에서 얼어붙은 강 위로 유유자적한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한 호사일는지 모른다.

    더군다나 서울에서 불과 89km 거리의 이 철원에서라면 더더욱. 그래서 한탄강 얼음계곡 트레킹에 더더욱 마음이 동한다. 》

     

    강 얼음에 서서 주상절리 비경에 취하다

     

    한탄강은 보통 강과 다르다. 우선 그 발원이 북한(평강)이다. 지형도 특이하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별명처럼 협곡이다. 그런 협곡 지형의 모태는 화산이다. 철원평야가 용암으로 뒤덮인 화산 지형임을 안다면 좀 더 이해가 쉽다.

     

    남서 방향으로 흐르다 임진강에 합류해 서해로 흘러드는 한탄강. 그 흐름은 추가령 구조곡을 따른다. 구조곡이란 길게 파인 지형이다. 서로 다른 지층의 경계선에 형성되는데 추가령 구조곡의 경우는 단층의 약한 띠를 따라 지반(화강암)이 차별 침식돼 형성된 저지대다. 이런 지형은 지층이 얇아 마그마가 뚫고 올라오기 쉬워 화산 지형이 잘 발달한다.

     

    추가령 구조곡을 보자. 철원과 원산을 잇는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한반도를 비스듬히 남북으로 자르는 형국이다. 철원을 지나는 한탄강과 경원선 철도는 모두 이 구조곡을 따르는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사람도 강도 지나기에 가장 무난한 지형이어서다.

     

    얼어붙은 한탄강으로 나를 안내한 이는 주민 이석범 씨다. ‘철원사랑 야생화사랑’이라는 개인블로그(blog.daum.net/mysilove)를 운영하는 철원의 자연지기다. ‘신이 만든 걸작’이라는 한탄강 주상절리를 보고 싶다는 기자의 청을 마다않고 안내에 나섰다. 주상절리를 가까이서 보자면 절벽 가까이로 가야 하는데 얼어붙은 지금이 적기다.

     

    그래서 찾은 곳이 승일교 아래. 강은 협곡 아래로 물도리동을 이루며 흐른다. 트레킹 코스는 여기서 1km쯤 하류의 한탄강 명소 ‘고석정’까지다. 강물은 교각 밑 여울만 빼고는 모두 얼었다. 얼음 위로는 엊그제 내린 눈이 고이 쌓여 하얀 눈밭이었다. 언 강으로 조심스레 발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강심. 그런데 여전히 얼음 바닥은 굳건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주인 따라 산보 나온 백구 두 마리가 신나게 얼음눈판을 뛰어다닌다. 난생 처음의 얼음 트레킹이 여기 주민에게는 산보코스였던 셈이다. 좀 더 가니 고석정이 보이고 그 앞에 임꺽정의 산채가 있었다는 절벽바위가 보였다. 강안의 협곡 절벽은 온통 얼음폭포를 이뤘다. 한탄강의 겨울 풍경은 이렇듯 화려했다.

    고석정에서 차를 몰아 번지점프장 하류의 송대소라는 물가를 찾았다. 가파른 계곡 아래의 강상도 역시 눈 덮인 얼음판이었다. 주상절리는 좌우 협곡의 절벽 면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상절리란 용암이 식으며 변한 돌기둥 모습의 바위다. 그런데 그 모양이 수상하다. 육각형 팔각형 오각형…. 이것은 수직, 저것은 수평, 또 어느 것은 부챗살. 모양도 제각각으로. 이렇게 가까이서 주상절리를 감상하는 호사는 강이 얼어붙는 이 겨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 여행정보

     

    ◇찾아가기=영동대교∼노원역∼의정부∼국도43호선∼포천∼철원∼갈말읍(삼부연폭포)∼지방도463호선(철원읍 방향)∼승일교

    ◇볼거리 ▽관광지=제2땅굴, 노동당사, 옛 철원, 경원선 월정리역(녹슨 기차)과 철원역(철마는 달리고 싶다 간판) ▽철새 탐조=독수리는 토교저수지 제방 아래 들판(지방도464호선 옆)에서 볼 수 있다.

    ◇한탄강 얼음트레킹=절대로 안내자 없이 얼음 강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석범 씨의 ‘철원사랑 야생화사랑’(blog.daum.net/mysilove) 참조.

     

    옛 금강산 가는 길목 철원엔 명소도 많네

    겸재, 금강산 화첩에 삼부연폭포 넣어

     

    철원과 금강산. 한수 이북에 대한 지리 개념이 부족한 남쪽 사람에게 이 둘의 관계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철원 이북의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을 걷어내면, 아니 철조망이 놓이기 이전으로 역사를 거스르면 이 둘의 관계는 좀 더 확실해진다. 철원이 금강산 길목에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를 살피면 18세기를 풍미한 진경산수 화풍의 겸재 정선(1676∼1759)이 금강산경(내금강)을 담아 펴낸 화첩 ‘해악전신첩’이 우선이다. 그 산수화 틈에서 찾아낸 철원의 삼부연폭포가 그것. 겸재가 금강산을 찾은 것은 생애 두 번(1711년과 1712년)이다. 그때 본 자연을 그린 금강산 화첩에 삼부연을 끼워 둔 것은 철원이 금강산 가는 길목이어서다.

     

    다른 하나는 금강산 전기철도다. 댐을 막아 발전한 전기로 운행한 이 철도는 1931년 일제하에서 일본인에 의해 개통된 국내 최초의 관광열차다. 객차 15량을 많게는 하루 8회 운행하며 관광객과 스키어를 온종일 내금강산역으로 실어 날랐다. 그 출발지 역시 경원선과 연결되는 철원이었다.

    철원은 넓은 평야다. 김일성이 철원을 남측에 내어준 상태로 휴전협정에 조인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던 곡창이다. 또 궁예 왕이 대동방국의 꿈을 품고 찾아와 도성을 쌓고 왕궁을 지었던 왕도다.

    그리고 한때는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북유럽의 헬싱키(핀란드)까지 달리는 대륙철도의 중간 역(서울∼원산 경원선)이었다. 대륙 진출의 야심을 키우던 일제에 의해 그 전진기지로 이용된 요충지 철원의 거주민 수가 1945년 독립 당시 ‘3만7000명’이나 됐다는 사실이 철원의 지정학적 의미를 잘 말해준다.

     

    그런 철원의 현재는 과연 어떨까. 점점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는 인상이다. 남북 간 도로도, 북한 여행길도 서쪽 개성과 동쪽 고성으로 났다. 금강산 전기철도는 교각 몇 개만 남았고 경원선 철길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연말에야 겨우 철원 근방까지 5.7km 철도 연장공사에 들어갔을 뿐이다. 새 천년 들어 이뤄진 허다한 남북 교류의 그 어떤 움직임도 예서는 감지되지 않는다. 겨울을 나기 위해 철원평야로 날아오는 시베리아 철새(두루미 기러기 오리)와 평강고원을 훑어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한탄강 물의 유려한 흐름 말고는.

     

    그러나 철원 사람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머잖아 철원에서 기차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 시베리아 대륙을 가로질러 프랑스 파리까지 여행을 갈 수도 있을 거라고. 또 내금강산을 겸재가 오갔던 길로 달릴 금강산 철길로 편안히 오가며 그 비경을 똑같이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분단이란 인위이며 인위란 자연의 역행임을 잘 아는 그들이기에 실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도 두루미와 오리가 먹을 낱알과 볏짚을 평야에 쌓아두고 돼지와 소를 잡아 독수리 무리가 노니는 들판에 놓아둔다. 저 유려한 한탄강이 철조망을 헤치고 철원평야를 적시듯 철원 땅의 역사도 이 자연처럼 언젠가는 반드시 제 모습으로 되돌아올 것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