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트레킹/....백두산 트레킹

    트레커 2014. 6. 5. 10:13

    민족의 영산 백두산(白頭山)

    한민족의 가슴 깊은 뿌리

    이제 난 내 평생소원 풀었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습니다. 당분간은 조용히 백두산을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지난 20089월에

    백두산에 올랐던 안산에서 오신 할머님의 말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실향민이신 할머니는 70이 훨씬 넘은 연세에 허리까지 구부러진 상황이었다. 할머님의 평생소원을 풀어드리러 백두산행을 결정한

    할머니의 자식들은 일행이 있는데도 나에게 할머님을 잘 모셔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해온다.

    그러나 염려와는 달리 할머니는 너무도 잘 다니신다. 서백두(중국에서는 서파라고 부른다.)의 주차장에서

    37호경기비(5호경계비가 변경됨)가 있는 천지까지 오르는 1300여개의 계단도 끄떡 없이 오르고, 금강대협곡도 문제없이 다니신다.

    다음 날 북백두로 이동하여 천문봉에서 바라보는 천지와 비룡폭포 관광까지 걱정스런 마음과는 다르게 너무도 잘 다니신다.

    아마 평생소원이었던 백두산이여서 알게 모르게 힘이 많이 솟았을 것으로 내심 추정해본다.

    백두산을 찾을 째마다 감격에 겨워 두둔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그 할머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시작이 된 백두산…….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고 싶어 하고, 한번은 가야 할 백두산…….

    백두산은 우리에게 커다란 뿌리며, 민족의 혼인 영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일부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비룡폭포를 장백폭포로 잘못알고 있다. 백두산 종주나 여행을 주관하는

    여행사나 여행객을 인솔하는 인솔자의 책임이 크다고 봐야한다. 오래전 우리네 선조들이 지키지 못하여 지금은 중국 땅이 되어

    아쉽게도 중국을 통해야만 갈 수 있는 산이라지만, 민족의 혼까지 그들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의 뿌리를 그들의 역사로 만들고 있다. 찬란하고 파란만장했던 고구려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중국의 속국으로 만

    들고 있다. 백두산에서 한글로 된 현수막은 하나도 허용이 되지 않는다. 노래도 부르지 못한다. 감사의 기도조차 올리지 못한다.

    이는 단순한 제약이 아니다.

    백두산뿐이 아니라 고구려의 고토에 남아있는 수많은 유적은 중국의 유적으로 변해있다. 산속에 남아있는 성터마저 복원한다는

    명분아래 중국식 성으로 바뀌고 고구려역사를 없애고 중국식 역사를 만들어 그것을 알리고 있다. 몇 년 전만해도 직접 볼 수 있었던

    집안의 광개토대왕비는 훼손을 방지한다는 명분아래 유리벽을 만들어 접근조차 못하게 한다.

     

    현지를 안내하는 가이드들은 대부분 조선족이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태어나고 중국에서 배우고 중국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민족정신에 따른 올바른 안내를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대하지 말아야한다.

    그들은 백두산을 한민족의 영산이라기보다는 청나라의 시작인 후금이 태동할 수 있었던 누루하치의 성지로 안내를 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백두산을 한민족의 성지로 안내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그들만의 고충이 있다고 한다.

    1,400여개의 계단길로 올라야 천지와 첫 대면

    백두산 종주는 서백두에서 북백두로 이어진 천지를 싸고도는 아름다운 녹색융단 길이다. 수많은 야생화와 음지쪽에는 겨우내 쌓여서

    녹지 못한 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 눈은 7~8월을 지나며 대부분 녹아내리지만 녹지 않고 남아있는 눈도 상당 수 있다.

    아침 일찍 서백두의 매표소에 도착하면 매표소 앞에는 백두산을 찾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에서 백두산을

    찾아온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중국 내에서도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중국인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여기서 37호경계비(예전 5호경계비) 주차장까지는 백두산보호관리국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37호경계비(예전 5호경계비) 주차장에서 1,400여개의 계단을 거치며 약 45분을 올라야 비로소 37호경계비에 도달한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올라오는 관광지로 이곳에서 처음으로 천지를 만난다. 경계비를 경계로 해서 북한쪽으로는 넘을 수 가 없다. 중국 측에서

    경계를 하고 지키고 있으나, 북한측에서는 아무도 없다. 중국인들의 상술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북한쪽으로 안내를 해서

    사진을 촬영하게 하고 비용을 받는다. 단순히 북한 땅을 밟게 해준 대가를....

    모두들 이곳에서 천지를 처음 만나면 감격에 젖고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맑은 하늘에 천지를 만나면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천지를 주변으로 북한쪽으로 8개의 봉우리, 중국 쪽으로 8개의 봉우리가 천지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종주를 한다면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다. 천지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하는 백두산 종주 중에 더 좋은 모습으로 천지를 만날 수 있다.

    백두산 종주는 사실상 이곳이 시작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것이다.

     

    초록색 비단 융단을 깔고 가는 14km의 꽃길

    마천우를 향해 오르는 길은 비교적 가파른 편이다. 야생화 만발한 푸른 초원과 화산으로 이뤄져 있는 바위들이 잘 조화롭게 어울려져

    종주팀들을 환영하고 있다. 봉우리 비탈면으로는 화산으로 생긴 부석들이 흘러내려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해발 2,000m의 높이의 서백두 주차장에서 2,260m정도 높이의 37호경계비를 지나 2,460m의 마천우를 지나 2,660m의 청석봉을 향해

    오를 때면 대부분 거친 호흡을 토하며 오를 수밖에 없는 곳이다. 청석봉까지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이후 한허계곡까지

    1시간동안은 하염없는 내리막길…….

    백두산은 해발 2,000m를 전후에 식생대가 구분된다. 수목한계선인 해발 2,000m가 넘는 지역은 나무한그루 없는 초원지대다.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초원위에 갖가지 색상의 야생화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우측으로는 천지의 장엄함이 함께한다.

    이 모습만으로도 가슴은 이미 요동을 친다. 눈가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수면표고의 높이가 2,189m인 천지는 화산분화구에 용천수가 끊임 엇이 솟아오르며 만든 자연의 위대한 걸작이다.

    크기도 어마어마해 최고의 수심이 384m, 둘레가 14.4km, 남북으로 최대길이가 4.55km이며, 동서로 최대길이가 3.35km이며,

    천지의 총 면적은 9.165라고 한다.

    백두에서 북백두까지의 종주에 이어 천지를 중심으로 백두산을 완전하게 1바퀴 순회를 하는 종주를 한다면 최소 4일은 가져야

    가능할 것으로 보여 진다.

    고산으로 위도조차 북쪽으로 치우쳐 백두산의 여름은 없다. 높이 2,300m에서 2,600m 사이를 걷는 백두산 종주는 한여름의

    더운 날씨라도 20도 이상을 넘지 않는다. 겨울 날씨가 연중 230일 정도 계속된다고 한다. 대신 맑은 날씨에는 자외선이 강한

    햇빛이 강하다. 흐린 날이나 비가 온다면 겨울 재킷을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은 많이 떨어진다.

    가파른 비탈은 내려서면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송화강의 물줄기가 되는 한허계곡을 만나게 된다. 야생화 군락지로 이어진다.

    대부분 금련화가 많지만 시기에 따라 피는 꽃은 다르다. 그러나 가을로 접어드는 8월 말 이전에는 언제나 만발한 천상화원을

    만날 수 있다.

    한허계곡을 만나면 대부분 그냥 이곳을 지나치지 못한다. 등산화를 벗고 족욕을 한다. 위쪽에서는 빈 물병에 식수를 채운다.

    대 자연의 신비한 힘은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준다. 나약한 인간은 힘든 산행에 피로회복이 되도록 족욕을 하기도 하고,

    맑은 계곡물로 시원하고 식수도 제공받고, 경이로움과 아룸다운 절경에 감동까지 받는다.

     

    종주의 끝에 웅장한 비룡폭포가...

    한허계곡에서 백운봉으로 오르는 길은 백두산종주 중에 가장 힘든 구간이기도 하다. 백운봉 아래까지 약 2시간을 가빠른 길로

    올라야한다. 이곳으로 오르면서 야생화는 더욱 다양하게 많이 진다.

    안개가 자욱하거나 비로인하여 날씨가 좋지 않다면 이곳에서는 일행들 모두가 모여 함께 백운봉까지 오르기를 권한다,

    백두산의 사고 중 대부분이 이곳에서 날씨가 안 좋을 때 길을 잃어 조난을 당하여 일어난다.

    능선으로 거의 오르면 대부분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조선족이 만든 간단한 도시락으로 이곳의 초원에 앉아 먹는 도시락의 맛도

    꿀맛이다. 좋은 곳에서 좋은 기운과 함께 먹는 도시락은 적은 반찬이라도 진수성찬으로 느껴진다.

    백운봉을 지나면 이후는 편안한 고산 초원길을 걷게 된다. 잔디밭 같은 푸른 초원을 걷는 이 길에서는 편안한 어머니 품속 같은 기분을

    느낀다. 초원위에 노란 두메양귀비가 천지를 바라보며 수줍은 듯 피어 있고, 바위틈에서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야생화도 천지를

    바라보고 있다.

    긴 능선좌측으로 초원에 희끗희끗하게 깔린 바위조차 아름답다. 가끔 기암의 봉우리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청석봉을 지나 종주의 막바지에 하산 길로 접어들며 우측 뒤편으로는 웅장한 비룡폭포를 만난다.

    높이 68m의 웅장한 비룡폭포는 천지의 물이 승차하(乘搓河)를 통해 흘러나와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다. 물줄기가 3가닥으로 갈라져

    떨어져서 이 물도 송화강(松花江)으로 흘러 들어간다.

    비룡폭포는 수직으로 아래로 곧게 떨어지다가 암벽에 부딪히면서 물보라를 일으켜 더 없는 장관을 이룬다. 폭포 주변에는 온천수가

    김을 내며 흐르고 있는데 흐린 날에는 안개와 온천수의 연기가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풍긴다.

     

    자칫 지나치기 쉬운 비룡폭포는 웅장함과 굉음에 가까운 폭포소리로 종주의 피로함을 씻어준다. 이곳에서 카메라의 셔터는 쉴 수가

    없다. 동북공정으로 한글로 된 현수막조차 펼치지 못하는 백두산에서 종주의 대미는 언제나 비룡폭포가 책임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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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백두와 북한의 보초병

    2007년 경 장백현의 백두산에서 남백두(그들은 남파라고 부른다)가 공개된 이후로 남백두의 정상부인 관명봉 부근에서 서백두로

    넘어오는 등산로를 이용하여 산행을 하기도 하였다. 5시간이 소요되는 이 길은 북한과 가깝다. 서백두와는 다르게 이곳은

    북한군이 상주 하며 보초를 서는 곳이 많다. 2009년 경 남백두의 관명봉을 차량을 이용해서 오른 후 관명봉에서 천지를 관광하고

    산문(매표소)으로 하산하던 중 중간에 내려 좁게 흐르는 압록강에서 래프팅으로 산문까지 내려온 적이 있다. 압록강 강변 중간

    몇 군데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북한군을 쉽게 볼 수 있었다.

    37호경계비(예전 5호경계비) 주차장에서 1,400여개의 계단을 거치며 약 45분을 올라야 비로소 37호경계비에 도달한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올라오는 관광지로 이곳에서 처음으로 천지를 만난다.

    모두들 이곳에서 천지를 처음 만나면 감격에 젖고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종주를 한다면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다. 천지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하는 백두산 종주는 사실상 이곳이 시작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것이다.

     

    백두산과 단군신화(위키백과에서..)

    단군신화에서의 백두산은 태백산으로 묘사되어 있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한 산이고 하늘과 맞닿은 공간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발현한 장소로 백두산은 한민족 역사의 시원지이다.

    현존하는 단군신화에 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은 삼국유사태백산(太伯山)’이다. 하지만 단군신화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삼국사기에서는 최치원(崔致遠)상대사시중장(上大師侍中狀)을 인용하여 태백산(太白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이후의 기록, 제왕운기·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동국사략· 동사강목등의 단군에 관한 기록이

    있는 사서들은 백두산을 모두 태백산(太白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같은 이 혼용은 같은 음가(音價)에서 태백산이 지닌 의미를 전달에는 차이가 없다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자가

    사용된 듯하며 태백산을 한자식으로 풀이하면 크고 하얀 산으로 굳이 한글로 해석하면 한뫼가 된다.

    이렇듯이 태백의 뜻은 어느 특정 지역, 특정 산에만 한정되는 고유 명사가 아니고, 비슷한 의미와 발음을 가진 채 인류 문화의

    변동에 따라 옮겨 다니는 특징이 있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우주산의 구실을 하면서 하늘을 향해 제의(祭儀)

    올리는 제단을 조성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단군신화에 나타난 태백산은 백두산(白頭山)을 지칭한 것임이 분명하다. 백두산은 동북아시아의 많은 산과 강의

    시원지로서, 숭배의 대상으로서 불함(不咸개마산(蓋馬山태백산·도태산(徒太山)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특히 동북아시아를 발원으로 하는 종족들에게는 머리가 희고, 초목도 짐승도 모두 하얗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신령스러운 성산(聖山)으로 묘사되어, 그들 종족의 흰 것(밝음)에 대한 인식으로 태양 숭배 사상과 밝음()에 대한 믿음이

    반영하고 있다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백두산 트레킹 정보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아야 할 곳이다. 일반적으로 백두산을 종주하기 위해서는

    34일이면 충분하다. 주변의 고구려 유적지 관광을 추가한다면 일정은 자유롭게 조정하면 된다.

    길림성 연길이나 장춘, 요녕성 심양으로 우리나라의 여러지역 공항에서 항공이 운항을 한다. 종주의 시작점인 송강하까지는

    연길에서는 5시간, 장춘에서도 5~6시간, 심양에서는 6~7시간이 소요된다.

    최근 송강하지역에 공항에 개항하면서 중국 국내인 심양, 장춘, 대련, 청도, 상해 등에서 국내선이 운항하고 있어 국내선을 이용하면

    지루한 차량이동을 줄일 수 있다.

    백두산은 연중 270일의 강풍일수와 함께 날씨가 변화무쌍한 하다.

    강한 돌개바람이 자주 일어나며, 벼락도 잦게 일어난다. 따라서 안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적지 않은 돈과 쉽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서 백두산을 찾았는데 이런 날씨를 만나면 매우 당혹스럽다. 그러나 과감하게 포기하는

    결단도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때다.

     

    촤근 중국정부에서는 백두산트레킹을 금지시켰다. “자연을 보호한다.” “위험구간이 있어 통제를 한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고

    있지만 그 속내는 다르다. 관광지에서는 인력을 동원하여 마름대로 통제가 가능하지만 백두산을 종주 중에는 통제가 어렵다. 이는

    중국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저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트레킹문의

    ()마운틴트렉 1688-2584 / 010-9964-8848 www,trekkingclub.kr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