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후기모음

    트레커 2006. 4. 20. 12:15

    [이상의 국가 율도국으로 가는 길]

    홍길동이 나라를 세워 왕이 되고 훌륭하게 다스려 태평성대를 이루고 30년을 다스린 후 72세의 나이로 죽는다. 이후로 율도국은 대대로 태평을 이룬다.


    절경을 품고 있는 작은섬, 위도는 허균이 홍길동전을 통해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율도국의 모델이 된 섬이다.

    무도한 벼슬아치도 없고, 못 먹는 백성도 없는 유토피아국가였던 율도국.....

    그곳 위도에 망월봉 도제봉 망금봉을 이어주는 산행지가 개발이 되면서 최근 산꾼들이 찾기 시작하고 있다.

    당일 산행지로도 시간상 문제는 없지만, 모처럼 섬 산행지를 택한 탓에 1박을 하고, 절경을 구경하기로 한다.


    잠실의 집결지에 하나둘씩 일행들이 모여들고, 위도로 향해 출발한다.

    서해안고속국도를 이용해 격포항에 도착하여, 쭈꾸미볶음으로 한 끼의 식사를 마치고, 위도행 카페리에 올라탄다.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 섬, 위도행 첫날은 예상외로 한산했다.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아직은 수온도 차고 물때가 맞지 않아 낚시꾼이 없다고 한다. 날씨마저 흐려,

    서해 낙조모습을 기대했지만 이것마저도 포기한다.


    파장금항에 도착하자 섬내 순환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안내자를 겸한 기사아저씨의 친절한 안내로 버스 내에는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숙소 앞에서 내리지만 섬 일주를 시켜준다는 말에 다시 버스를 타고 기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섬을 한바퀴 순환하고 나서야 숙소로 들어선다.


    중복된 예약으로 급히 다른 민박집으로 자리를 옮겨 여장을 풀고, 민박집에서의 파티가 열린다.

    삼겹살과 어우러진 술잔에서 찌든 회색도시의 삶을 모두 버리려 듯 모두 기분 좋은 밤으로 이어진다.

    예상과는 달리 수없이 맥주병을 사 나르고, 유일한 노래방에서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바람! 바람! 바람!]

    아침 일찍 들려오는 소식에 모두 분위기가 침울하다.

    강풍으로 인하여 배가 출항을 하지 못한다는 소식이다.

    며칠 전부터 기상을 체크했지만, 하늘이 하는 일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산행도 포기하고, 대기를 하다 출항소식이 들리면 바로 육지로 나가지는 의견이다.

    여객사무실에 전화를 해보며, 오후 배는 가능하리라는 기대와 함께 산행보다는 섬 구석구석의 절경을 구경하자는 제의에 모두 도로를 따라 위도 도보일주에 나선다.


    진리민박집을 나서 진말고개를 넘어 위도초등학교를 지나 치도리로 향한다.

    8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위도 초등학교는 전교생수 35명을 13명의 교직원이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어제 버스로 일주당시 기사님의 설명이 있었다. 인구 1500명의 섬에 초등학교2개, 중 고등학교가 1개가 교육시설의 전부인 셈이다.

    수백 수천의 학생들이 몰려있는 도심의 학교와는 대조적인 교육환경이다.


    바다의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나고, 갯벌 안으로도 들어서본다.

    전막쪽 방향으로 방향을 틀고 보니 전방우측 방향으로 망금봉이 우뚝 서있다.

    강풍으로 인한 여파로 산행을 포기한 것이 못내 아쉬워 정상부분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동쪽으로 바다건너 격포의 모습은 섬 안에서 발이 묶인 여행객의 모습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다시 내원암쪽 고개를 넘어 깊은금 방향으로 이어진 도로의 양옆에서 달래를 한 아름 뽑아간다.

    천혜의 섬인 위도는 곳곳에 먹을 것이 자라고 있다. 사람의 손길로 키워져 맛이 덜한 식물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조건을 그대로 받고 사는 식물들이 사람의 손도 타지 않고 있던 것이다.

    깊은금에서 위도 해수욕장으로 이어진 해안 도로를 따라 걸으며 해안의 절경에 섬에 발이 묶인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경치에 감탄을 하고 있다.

    동편의 해안보다는 더 많은 절경을 간직한 이곳에서 카메라도 할일을 찾은 모양이다.

    몇 장의 기록으로 이곳에서의 시간을 저장한다.


    상수원으로 사용되는 저수지와 취수, 정수장 아래 위치한 위도해수욕장, 강풍으로 고운 모래는 사막의 흉내를 내며 바람에 날린다. 양 옆으로 산으로 쌓여 아늑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위도 해수욕장은 여름에 꼭 다시 한번 찾을만한 곳이다.

    섬의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았다고 위도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 섬은 북한강 줄기인 춘천의 작은 섬 위도와 이름이 같다. 춘천의 위도 역시 고슴도치섬으로 위도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망월봉 고슴도치]

    12시가 되어 민박으로 돌아왔지만 배가 출항한다는 소식은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객 터미널로 전화를 하지만, 출항이 되더라도 4시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가벼운 산행을 원하는 사람 6명이 산행을 하기로 하고 전말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이정표에는 봉수산(도제봉)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지도와는 정 반대방향이다.

    작은 산허리를 감아 봉수산으로 서서히 올라서 개들넘으로 간다.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산하에 내가 있음을 또 한번 감사하며, 내려선 개들넘 고개에서 망월봉 정상은 절벽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해발 251m의 작은 봉우리가 자신의 강인함을 과시라도 하듯 암봉의 모습은 우람하기 그지없다.

    가파른 길옆에는 안전 로프가 설치되어 산행객을 보호하고 있다.


    위도의 최고봉인 망월봉 정상엔 두 마리의 고슴도치가 있다.

    한 마리는 뒤로 사람이 들어가 가슴으로 얼굴을 내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 가슴으로 얼굴을 내밀고 사진도 찍어본다.

    널따란 평지의 정상에서의 주변조망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동으로 바다건너 격포항은 물론 변산까지도 조망이 시원하고, 섬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은 하루일정의 연기가 오히려 고마울 정도로 환상적이다.


    서편 산 아래로 위령탑이 바다로 간 영혼을 달래며, 홀로 외로이 서 있다.

    93년 대형 참사로 기억되는 서해 페리호 침몰사건......

    정원을 넘어 두 배나 가까운 승선인원을 견디지 못한 배는 바다로 빠져들고, 292명의 목숨이 바다로 버려졌다. 항상 우리 주위엔 규칙과 자연의 섭리를 거슬려 스스로 재앙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두고두고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망월봉을 비롯한 위도 내의 산행 길은 부안군에서 이정표를 세우고 정비를 하고,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어업량의 감소로 주민들이 생활고에 시달리자 인구감소로 이어지고, 방폐장 유치로 희망을 걸었지만 환경단체의 반대로 백지화가 되고, 관광자원을 개발하기에 이루었다.

    등산로 곳곳에 쉴 수 있는 의자도 만들고, 이정표도 만들어 놓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하산 길 내내 의자에 앉아 재잘거리며, 아쉬울 것만 같았던 위도 산행을 대신한다.


    출항을 포기하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해진다.

    간재미와 주꾸미로 하루 저녁을 다시 준비하고, 20대의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

    18명이 둘러 앉아 각각 파트너를 정하고 게임을 즐긴다.

    벌칙은 폭탄주 한잔에 파트너 입에 문 멸치를 입으로 받아먹기…….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또 하루의 밤은 깊어만 간다.


    [출항, 그리고 그 후......]

    다음날, 아침이 부산스럽다.

    7시 30분에 있는 첫배로 나가서, 출근을 해야 될 인원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소란스럽게들 준비를 하고 11명이 민박집을 빠져나가고, 남은 인원은 7명…….

    나머지 인원은 느지막이 나오려고 했으나, 일찍 육지로 나가자는 의견과 함께 다음 배인 8시 30분배를 타기로 한다.

    첫배를 타지 못하고 남아 있던 3명과 다시 합류한다.


    적벽강.....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황주 단련부사로 좌천되어 밝은 달밤에 유명한 적벽부(赤壁賦)를 남긴다.

    소동파가 적벽부를 남긴 그곳이 적벽강으로 흡사히 닮았다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설명이 된 안내판에는 사자의 형상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실제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다시 채석강...

    이곳 역시 이름이 중국에서 건너왔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하던 중, 강물에 비친 달을 따려다가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바람과 파도에 씻기고 부서져 흡사 수천, 수만 권의 책을 포개 올린 듯한 수성암 단층이 신비롭다.


    그냥 갈 수 없다는 의견에 따라 좌판에서 해삼, 게불 등 해산물 회와

    이곳의 명물 백합죽과 해물칼국수로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서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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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편이 좋지 않아 승용차량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차량을 지원하신 분들께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였지만 모자람이 있었을 겁니다.

    감사드리고, 갑작스런 기상변화로 2박3일의 일정으로 변한 모임이 오히려 즐거움이 배가 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월요일 출근을 걱정하고, 일정의 차질로 내심 많은 후회도 했습니다만, 여러분의 협조로 감동으로 위도를 가슴에 담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오후 섬 내를 드라이브하며 위도낙조에 풍부한 감성으로 벅찬 가슴으로 위도의 아름다움을 담으신 분들의 행복한 소리 또한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모두들 감사하구요, 죽는 날까지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