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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26. 19:59

##_053, 경마란 무엇인가?(아: 落張不入- 공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하나:

뭇 소인배들은 자신들의 자존심에 극복될 수 없는 치명척인 상처를 주는 자들을 증오와 질시를 보내게 되어있

다. 그래서 그런 사내들의 질투는 여자보다도 더 집요하고 더러우며 치사스럽다.  그것이 타인의 넘어설 수 없

는 재능에 관해서는 더더욱이나 그렇다.  그런 이류도 안 되는 소인배들은 자신이 나서지 않고 그저 그런 놈을

내세워 집단의 두목으로 떠 받든 뒤, 입김을 불어넣고 압력도 가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얻게 되길 바란다. 그

그렇지 못할 때는 "자신의 이웃을 감금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도스토에프스키의 말

처럼 그것이 언어든 문자이든 개인적 무시하고, 냉대를 넘어 끼리를 만들고 집단적 린치를 가하는 것이다.  특히 올바른 선의의 충고 무시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족속에게는 그런 것이

더하다.

 

둘:

양말이나 속옷도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상표를 신거나 입는다. 지금은 누구나 LEX나 폴로의 독특한 무늬를

발목의 복숭아뼈자리에 붙이고 다닌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낯익은 상표가 붙지 않는 양말을 선택하기란  아예

불가능하다. 하다 못해 육교에서 천 원에 두세 켤레 하는 양말에조차 도용된 외국상표들이 붙어 있다.  독점자

본 혹 텔레비전의 광고를 할 여력이 있는 중소자본이 제공하는 상품과 상표로 우리의  일상생활은 가득 차 있

다.  아니 포위되어 있다. 포로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B.Y.C냐, Vic Man이냐> 하는 선택일 뿐이다. 시장

에서 남편의 속옷을 고르는 주부들은 이덕화나 유인촌 혹 제임스 딘중에서 불가피하게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

다. 자본과 광고의 에이전시가 강제한 메커니즘에 의해서 주부는 결국 이덕화나 유인촌 혹 제임스 딘과 <같은

상표>를 입은 남편과 이부자리를 함께 하게 된다.

 

주부들이 보는 여성잡지는  매호마다 번갈아 가면서 이러저러한 용품이나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생활의 지

혜>를 특집으로 싣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본문보다 더 두꺼운 컬러 페이지의 광고들이 부추기는 소위 과소비

의 유혹을 이겨낼 참다운 지혜는 독자들에게 용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경지를 훨신지나 이제는

상표화, 패션화되고 있다. <패션가구, 블렉센스, 하이패션.. 기능보다 멋을, 감성 소비시대의 하이터치에 의한

제품의 차별화>라는 구호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애들 장난감과 문구용품이 팬시상품으로 패션화된 지가 오래

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켄트나 말보로를 피우는 것이고, 맥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미국식 버드와

저를 마시거나 독일식으로 레벤브로이를 마신다.

 

컬러텔레비전을 통한 상품광고는 사실 우리의 일상적 지각과 체험의 틀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광고에 의

해 유발되는 주술적 효과에 의해 우리의 욕망은 저 깊은 무의식 안에서 더욱더 꼬이고 비틀어진다.  광고 속에

모든 것이 있다.  품위와 낭만이 있고 지혜가 있고 야망이 있으며, 인생의 깊이와 생활의 멋이 있고, 자연과 도

시가 함께 숨쉬며, 전통과 혁신이 동시에 있으며 야성과 지성이 겸비되어 있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자 한다면

<00을 아는 당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어떤 상품을 사야한다. 결국 <앎이란 소비하는 것>이다. <직

확인하십시오>라는 광고 문구를 따른다면  소비하는 것은 검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광고는 우리 시대의 실

의 보편적 지침이며, 소비는 실천의 가장 본원적인 형태이다. 광고가 이렇게 현대의 신이라면, 욕망은 우리

에 악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충족되지 못한 욕망은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황무지에 내팽개쳐버린

다. 억압되거나 좌절된 욕망은 상처를 입은 영혼처럼, 아니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 상처를 입은 맹수처럼 우리

를 상품의 밀림 속에서 신음하며 헤매게 만든다.

                                                                                                            (말이라는 시인의 일기에서)

 

셋:

예로부터 일반 사람들은 귀가 엺어서 열 번 백 번 듣는 소리는 진실이든 거짓이든 결국에는 믿게 되는 것이.

우리는 이런 것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곧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정의할 수 없게 하여 우리에게 희망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상실시키고 끝내는 이 사회의 가치관을 혼란시키고 우리들을 해체시킨다. 한

미디로 "둘 이상이 하나 바보를 만드는 것" 우습다고 쪽빠리도 아니면서 우기고 빨갱이도 아니면서 떼를 쓰는

것들에게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집단주의와 인민재판의 파쇼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보수라고 자칭하는 울아파들이나, 진보라고 자칭하는 더나빠들이 가지는 공통적의 습관이다.  그런데

나쁜 것은 그것이 자유에 따른 창조성을 죽여 모두를 불행하게 하고, 결국을 국가를 도탄에 빠뜨린다. 그렇게 그들의 집요함은 너와 나를 죽이고 우리 사회의 모두를 망하게 하는데 있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를 알거지로 만드는데 말이다. 

 

넷:

다음에서 "전갈의 침"으로 사이트 검색

 

네이버에서 "전갈의 "으로 사이트 검색

 

구글에서 "전갈의 "으로 사이트 검색

 

이렇게 나온다.

 

그러나 "경마란 무엇인가"라고 다음, 네이버, 구글에서 치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다음:

               

 

네이버:

               

 

구글:

 

라고 전갈의 침 자료가 쫙 올라온다. 더구나 구글은 "경마의 구미"라고 치면

 

 

라고 "전갈의 침" 자료가 대부분 올라온다. 이것은 알집, 알약으로 유명한 이스트소프트사에서 운영하는 포털

같다. 그러나 대한민국 1,2위를 찾이하는 다음이나 네이버에는 전갈의 침 자료가 없다. 얼마나 웃기는 이

야기인가? 그러니까 대한민국 포털은 돈을 들여 자사에 광고를 하지 않으면  얼마 전까지 싸이트의 이름도 공

개되지도 않았다. 10년 전에는 이런 문제로 네이버와 졸라게 싸운적도 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냥 묻어둔 것은 "전갈의 침"은 진정으로 연구하고 함께 공부하는 싸이트로 상업적인 장사가 아닌한 경마가 마

이너스게임이라 사람이 많으면 적중과 환수률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경을 쓰지 않은 것뿐이다. 그

러나 전갈의 침은 다음이나 네이버보다 더 오래된 사이트다. 사실 초기에 다음이나 네이버가 사이트를 만들고

한국 인터넷에 포털로써의 가치를 위해 디렉토리도 만들고, 같은 종류의 업체나 콘텐츠를 만들어 전갈의 침도

함께 그들의 사이트의 카테고리에 넣어 이용을 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르자 돈을 내는 광고에만 검색

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것이 정확한 정보가 있겠는가? 사기가 난무하는 상업적 사이트가 대세를 이루고 그래

서 인터넷을 쓰레기 정보가 가득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 시장을 넘보려고 하는 것다. 얼마나 웃

기는 짓인지? 그래도 전갈의 침이 20년이 넘게 존재하는 이유는 아름아름하여 알아 자료를 신뢰하여 이겨온 5

년 10년 20년을 함께 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 결론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공부란?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공부란 두 가지의 길

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문과 기술이란? 계획을 세워 규칙을 정하고, 자료를 찾아 기록하며, 그 기록한

자료를 다시 종합하여 정리하고 분석하여 실험을 통해서 검증하여 소통하는 것이다. 이것을 첫 번째 공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일반 사들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두 번째 "배우고 익힘"이라고 한

것이다. 즉 일반 사람들이 쉽게 할 없는 일들을 천재적인이 사람들이 실험과 검증을 통해서 만든 것을 배우

고 익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두 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학문과 기술을 창조하거나

난 여러 사회의 기록된 것들을 정리하여 만 수준도 되지도 않으면서  "갈드림질, 알려드림질"하는 것처럼

"누굴 가르치려고 해" 하듯이 없는 것들은 글의 자체로 비난하듯이 배움을 질색하는 하는 인간들에게 무슨

부가 있겠는가?>라고 밑에 "경마란 무엇인가(바)"에 대해 글을 썼다. 

 

대한민국 국민처럼 책을 안 읽는 나라도 드물다. OECD국가에서 꼴찌다. 그러면서 그저 한 때 달달 외운 지식

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저들 꼴리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세상을 지배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들면 집단 따돌림을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간들이 <보잘파 골

아파 울아파>라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골아프게 해 우리를 아프게 하고 다른 한축에서는 <진노파 더나빠 나

자빠>라고, 방귀 뀐 놈이 되레 큰 소리로 성을 낸다고 더 나쁘게 하여 아예 우리를 수렁의 밑바닥으로 나자빠

지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수라고 하고 진보라고 한다. 그러니 세상 진실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아이들을 낳겠는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아니 그 이상의 최선을 다해도

썰에 따른 이빨과 삽질의 구라판에 노가리를 구어되는 것들에 안주(시다바리 쫄다구 꼬봉)가 될 것을 이미 젊

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아이가 이빨과 삽질의 구라판에 올려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그들

과 그들의 아이가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예보다도 더 못한 삶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

들을 낳으라고 한다. 미친 개새기들이라고 하지 않은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간들과 무슨 대화가 되겠

는가? 아니 대화는 할 수 있기나 한가? 그리고 20년 30년 50년 안 해본 것이 없이 경마를 했단다? 무엇을 했는

지? 위에 하버드를 30년 다닌 우편배달부나, 50년 서울대를 다닌 신문배달부와 무엇이 다른지?

 

50년이나 100년이 지난 미래에 살아있는 자가 있다면

 

"아빠 우리는 달나라나 화성 등 우주여행을 할 수 없는 것야?"

 

"아주 오래 전에 인구는 기하급수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적으로 증가하여 결국은 모두가 망한다고 한 맬서

스라는 사이비 경제학자가 있었다. 그런데 과학의 발달로 100 억이 넘어도 기하로 죽는 사람은 없었단다. 우리

도 그 예전에 어떤 문제있는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원전을 폐기시켰단다.  다른 나라들은 보온병이나 개인소화

기만한 원전발전의 추진으로 우주를 여행하는데 우리는 그런 과학을 무시해서 못 가는 것이란다. 그것이 이시

대에 살아가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다."

 

                                                                - 아직도 꺼지지 않는 도서관의 불빛을 사랑하는 전갈의 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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