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강자봉 2019. 2. 7. 10:56


어떤 모성애






장 정 희

고성군자원봉사센터 봉사자

2017년 강원여성문예경연백일장 수필부문 차상수상

수필문학신인상

한국문협 강원고성지부 회원

다문화가정을 사랑하는 모임 회장

 

 

 

 

자원봉사센터에서 정리수납 공부는 유익했다.

 

매일 집안을 치우면서 베테랑이 되어야 할 주부가 정리수납 수업을 받으며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 같아 조금 면구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으며 이런 정리수납 방법도 있었구나! 할 정도로 도움도 되고 좋았다. 복습을 하느라 서랍장을 모두 꺼내 놓으니 옷이 방안 한 가득이다. 수업 받은 데로 차곡차곡 개어 넣었다. 정리수납 교육 덕분에 우리 집 정리 정돈이 잘 되었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정리 수납 공부가 끝나자 센터에서 어려운 환경에 있는 가정의 수납을 위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였다. 지도강사와 함께 봉사를 희망한 사람들은 깊은 산골에 혼자 살고 계시는 할머니 댁을 방문 하였다. 추운 날씨인데도 밖에서 강아지와 함께 서성이고 계신 할머니를 보았다. 추위에 떨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줄 알았는데 우리들이 집안에 들어서도 본 체 만 체 하며 집 앞의 양지바른 곳에서 웅크리고 무표정하게 앉아 계셨다. 집 주변은 각종 농자재가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어르신 방을 치워도 되나요?” 하고 물어보았더니 고개만 끄덕일 뿐 대답이 없다.

 

들어가는 현관의 신발에는 강아지 털들이 잔득 묻어 있었다. 방안에 들어가니 이부자리는 개지도 않았고 냄새가 나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는 두 개 조로 나누어 한 조는 방안을 치우고 한 조는 부엌을 치우기로 하였다.


방에서 강아지 세 마리와 함께 생활을 하고 있어 강아지 오물 냄새로 코를 들 수 없었다. 모두가 말을 하지 않을 뿐 추운 겨울인데도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정리를 시작하였다. 정리수납 교육을 받은 것과는 상관없이 모두 치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엌은 언제 식사를 하셨는지 끊여 드신 흔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엇을 드시고 계신 걸까? 냉장고를 열어보니 장아찌 종류와 고추장만 있었다. 싱크대 위의 밀가루와 설탕봉지는 쥐가 구멍을 뚫어 먹을 수가 없어 버리기로 했다. 싱크대 물은 얼었는지 쫄쫄 한 방울씩 나와 설거지를 할 수가 없어 준비해 가지고간 물 티슈로 대충 닦으며 정리를 시작하였다. 무조건 버릴 수는 없기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물건은 옆의 창고에 넣어 두고 나왔다.

 

며칠 지나면 또 어지러 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할머니는 치우든 말든 별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강아지와 대화를 하는지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중얼 중얼 하셨다. 삶의 의욕을 잃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에 사는 분의 말씀이 아들이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방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식을 잃은 큰 충격으로 슬픔에 빠져 삶의 의욕을 잃은 것 같다. 오직 방에서 강아지와 함께 생활을 하신다고 한다. 혼자 남은 할머니는 그 충격과 상실감으로 우울 증상이 온 것 같다. 아들은 어머니를 두고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충격 속에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아 본 사람은 살점 같은 자식에 대한 한결 같은 마음일 것이다. 자식의 성장하는 모습은 부모의 기쁨이다. 부모는 죽음을 마다 않고 자식을 위해 언제나 온 정성을 다 쏟으며 살아간다. 그걸 안다면 할머니 아들도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추운 겨울날 마당 앞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먼 산만 멍 하니 바라보는 할머니 모습이 생각난다. 이젠 돌아올 아들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을 그리워하는 할머니는 힘겨운 외로움을 강아지에게라도 위로 받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가 이사를 가지 않고 그 집에서 계속 살고 계신 것도 사랑하는 아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좀 더 기억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어머니를 혼자 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들이지만 그 아들을 그리워하며 혼자 추운 겨울을 지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자원봉사를 하며 여러 가지 활동으로 보람을 느끼지만 지난 번 그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 애처로운 모성애가 눈물겹다는 생각이 든다.

 

개울가에 얼었던 시냇물이 녹듯이 따뜻한 봄이 오면 할머니 마음에도 새 봄이 찾아 와 아픈 흔적을 하나하나 지우며 조금씩 평온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