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시리즈-삼십년 만의 서울, 한국말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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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말과 한국말 사이에서 헤매기

2008. 12. 12.


친지들을 초대해놓고 장을 봤다.
수퍼 마켙에서 이것 저것 사는 중에 
물탱크에서 쑥쑥 헤엄치는 오징어들도 지나치며 본다.
'음, 살아있는 오징어네.'
 
장 다 보고 계산대에 가려는 데 방송이 나온다.
'생선부에 지금 오시면 생물 오징어를 두마리에 이천오백원에 특별 판매합니다.'
 
아까 본 그 생물 오징어라니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을 곁들면 맛있겠다는 생각에
생선부로 가서 물탱크 가리키며 생물 두마리 주셔요하니 담당자 아저씨 씩씩하게
건져내며 회쳐 드릴까요 하기에 아니요 데치게 반으로 갈라서 껍질 벗겨주셔요 했다.
 
손질한 것을 건네주는데 다리들이 꿈틀꿈틀대서 꺅 놀래고.
 
근데 가격은 만원이라 떡 붙어 있다.
 
아니 이천오백원 아니에요? 
아 그건 생물이에요. 이건 산 오징어지요.
생물이 살아있는 거 아네요?
아니 이 아줌마, 이봐요. 생물은 죽은 거예요!(눈을 부릅뜨는 아저씨 무섭다)
생물이 죽은 거라뇨?(나도 질세라)
죽은 건데 절이지않고 얼리지않고 산 걸 그대로 죽인 게 생물이에요.
생물 오징어는 산 오징어랑 달라요. 
이것봐요. 생물낙지, 생물전어, 생물갈치 다 죽은 거쟎아요?(기가 차다는 듯이, 고래고래)
 
생물이 죽은 거라구요?(이 무슨 해괴한 괴변이람)
 
*   *   *
삼십년 전 처음 미국 갔을 때 요구르트 처럼 시게 발효된

비스킽 구울 때 쓰는 버터밀크(butter milk)를 
빠다 라는 단어에 으음 고소하겠구나 침 흘리고 샀다가
뭉글뭉글 시큼털털한 맛에 썩었다고 두 번이나 호통치며 바꾸러 갔던 일도 
생각난다.
*   *   *
언어는 뜻이나 발음도 중요하지만 생활속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실용적으로 쓰는 것에 중요하다는 것이 또 절감된다.
 
나처럼 한국에서 낳고 자라 한국말을 정확히 알고 잘 표현한다고 자신했던 사람이
삼십년만에 장보러 가서 (사실 미국 가기 전에는 살림을 산 적이 없으니)
생물, 건어물, 간절이의 문맥에서 파악해야하는 생물 오징어를 이렇게
보기좋게 실수해서 싱싱하게 물쏘며 헤엄치던 '살아있는' 생물아닌 오징어를

두마리나 쓸데 없이 죽였다.

 

에이그

영어도 못하고 한국말도 못하고.


 
이천팔년 십이월 십삼일
 
서울 한귀퉁이에서
매사에 사오정이 되는 띨띨이
교포아줌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