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시리즈 2-삼십년 만의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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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말과 한국말 사이에서 헤매기

2008. 11. 11.


몇십년 만에 반갑게 만난 친구들.

 

인생의 가장 치열하던 때를 서로 교통이 없는 채로 훌쩍 넘긴 편안한 나이에 마주 앉아서

고교 시절을 이어보았다.

 

앨범에 흑백 사진으로 남았던 우리들의 철부지 날들이 물기가 싱싱 오르며 살아났다.

 

엣 친구는 흔적이 점점 흐려지는 우리 젊은 날들의 증인들이라서 소중하다.

 

그동안 어떻게들 살았니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고....

 

한 친구는 교회의 권사라 했다.

그리곤 교회에서 맡은 임무로 얼마나 바쁜 일상인지

얼마나 많은 개인적 희생을 치루고 있는지

얼마나 몸이 고단하고 힘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럼 이쯤에서 그만 두면 어떨까?

젊은 사람들도 엄청 수가 많은 큰 교회 같은데

쉬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애.'

 

 

갑자기 썰렁해지는 분위기에 내말이 뭔가 허방을 짚은 걸 알았다.

 

얼른 옆에 있는 친구가 열심히 피해복구에 들어간다.

 

현직 권사인 친구의 리더십과 포옹력 희생정신 봉사정신등등을 열거하며

절대로 그만두어서는 안된단다. 

 

하긴 그래서 못 그만둔다며 목이 쑤욱 길어진다.

 

 

아항

 

바아부팅이 나.

 

행간을 못 읽었구나

 

 

그렇게 해서 칭송을 짜내는 거구나 자화자찬은 겸손한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니까.

 

 

삼십년만의 고향에선 이런 종류의 게임이 주위에 수도 없이 널려있다.

 

내겐 한없이 서툰 게임이다.

 

바아보!

 

고수가 되기위한

 

 

rule #1: 말은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면 절대 안된다.

 

이천팔년 십일월 십이일

 

교포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