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사과 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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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얽힌 글

2006. 8. 8.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딸이 왔습니다.
음악이랑 라디오를 친구삼아 열여섯 시간을 혼자 운전해 왔습니다.

‘ NPR(National Public Radio) 에서 한국 과학자 황에 대한 뉴스 보도를 들었는데
왜 한국사람들이 그 일을 국가적 수치로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되요.’

‘그 사람 개인의 잘못인데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BBC뉴스에서 들은
‘국가적 영웅(national hero) 이었다가 이제는 한국의 수치(national shame)가 된
황교수가 차라리 어디로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슴좋겠다’는 
한 한국 젊은이의 인터뷰 내용을 전하면서 딸이 의아해합니다.

왜 코리아 전체가 그 일로 상심하는지요?

‘쾌거의 과학적 업적의 영광을 전국민이 다 함께 공유했기 때문이란다.’


마침 위성으로
외딴 우리 동네에 까지
평일 하루에 두번 방송되는 MBC 뉴스에서는
‘하느님이 한국사람들에게 좋은 머리를 주셨는데
나쁘게 썼다’며 울먹이느라 말끝을 못 맺으시는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이 나옵니다.

자식의 잘못에 고개를 떨구어 자책하는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난자 제공의 비윤리성이 문제되었을때
IMF 때 결혼 금반지 빼듯 
‘난자’를 기증하고 앞으로 아낌없이 기증하겠다며
성원을 했던 국민들이나


몇년간 지구촌의 톱기사를 심심챦게 제공해 온 황교수와
같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삼십년 가까이 외국에 산 저나 

한가족의 마음으로

이제는 과학자로서의 생명도 끝난 그의 현실을 차마
직시하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아서
이리저리 주변에다 대고 
‘책임의 소재’를 분산시키며
서로 원망하고 등을 비비며
마음을 달래는 노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취주의로 정제되지 않거나 부풀려진 보도에 만연했던 언론
견제하지 못했던 과학계
잘못된 판단으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한 정부등등…

이렇게 한동이로 구르다
결국 또 예의 ‘조상 탓’으로 
책임의 소재를 불분명하게 
흐지부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 *

미국은 요즘 
보수 공화당 로비이스트인 잭 아브라모프(Jack Abramoff)에 연루된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금품수수 부정부패 스캔들로 시끄럽습니다. 
부시 정부이후 심심챦게 불거져 나오는 공화당의원들의 부정, 부패사건에 대해 
공화당이나 부시 정부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몇개의 썩은 사과들( a few bad apples)이라고 
자신들을 실수한 사람들과 철저히 분리, 보호, 방어합니다.

개인이 이룬 업적에 대한 영예나
과오로 인한 책임이나
철저히 개인에게 돌리고 감수케하는

개인주의의 모습입니다.

월남전 베테랑으로 팔선의 존경받던 
공화당 하원의원 랜디 커닝햄(Randy Cunningham)은
방위 산업 업자로 부터의
뇌물수수와 탈세 혐의가 밝혀진 후 기자회견을 갖고
즉각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제가 법을 어긴 것입니다.
저의 과오를 숨기고 
나와 
나를 위해 일해 준 
직원들의 명예를 더럽혔습니다.

이 일로 저는 그간의 나의 
명성과 
재산-
무엇보다도 중요한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의 ‘신뢰’를
잃게 될 것입니다.’

'The truth is I broke the law,
concealed my conduct and disgraced my office.

I know I will forfeit my reputation, my worldly 
possessions-most importantly the trust of
my friends and family.'


신뢰를 잃게 되었다는 부분에서
노익장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황교수 사태와 성격은 다르지만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부정한 것이 거짓말로 탄로났을 때 철저히 
잘못된 행동과 거짓말을 한
클린턴에게 책임을 돌렸지 
미국 국민들이 그일로 수치를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통령같은 높은 직위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보통 사람들의 수준으로 떨어질 때엔 
내놓고 농담이나 패러디로 만들어 웃어 넘깁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이고
만인은 다 평등하다고 믿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낳고 자라 성인이 되어 
과학을 공부하는 딸은 
황교수 사건을
썩은 사과 한개(one bad apple)를 골라내면 된다고
간단하게 황교수에게 원천적인 책임을 돌립니다.

‘그래도 한국 언론과 과학계 자체내에서 조작을 밝혀냈다니
떳떳하고 잘된 일 아녜요?’


한동안 어수선하고 공허한 마음이다가
딸과 이야기하고 나니 
웬지 사태가 한결 가볍게 밝게 느껴집니다.


이 위안이 얼마나 오래갈진 모르겠지만
딸과 나의 생각 차이가
아주 멀게 느껴진 하룹니다.




2005년 12월 24일 

교포아줌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