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 속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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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말과 한국말 사이에서 헤매기

2008. 10. 30.







<진공 속의 고독>




오래 전에 

후배가 적적할 때 읽으라고 보내 준 
한국의 큰 스님 법정이 법정이 쓴 

‘버리고 떠나기’란 책이 있었다.

내가 칠십년대에 한국을 떠나온 후로 유명해진 스님이라 전혀 초면으로 책을
대하니 그의 사회에 알려진 이미지나 사회적인 업적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로
저자와 독자로, 일대 일로, 인간 대 인간으로 벌거벗고 마주앉아 나누는 대화처럼 
선입견없이 책을 읽어내려갔다.


숲 속에서 무소유로 인연에 연연치 말고 욕심없이 
혼자 살기 가 그 저자가 의도한 주제였다고 기억된다.


그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건 아니다 싶어 고개가 가로 져어졌다. 



이 분은 정말 절대 고독을 아는가


그가 산사에서 홀로 군불을 지피고 밥을 해먹고 장작을 패고 밭을 매고
후박나무 그늘아래에서 명상을 한다한다.

그리고 글을 쓰고 책으로 내고

가끔 지인들이 들른다고 했다.
그가 밝힌 지인들의 명단은 주로 국내외 명사의 이름들이었다.

유명한 도승이라니 아는 사람들도 명사들만일 수도 있으리라.


나 같이 이국에서 외롭게 사는 사람에게 무슨 마음의 울림이 있을까 하고 아무리 
책을 읽어내려가도 무연, 무소유의 위로보다는 넓은 공간을 홀로 즐기다가
외로우면 언제나 속세를 찾아와 책을 내고 사람들 속에서 마음을 풀고 가는
사치스런 삶의 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건 홀로가 아니다.


주위에 아무와도 닿지 않는, 
닿을 기약이 없는 그런 상태가 홀로 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독한 고생에 속하는 것이다.



* * *

참,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내겐 절대 외로움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불통의 외로움

말로 소통하던 사람에겐 결핍 중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의 하나가 
언어의 결핍이다.




이웃들 속에서나 
군중 속에서도 언뜻 이렇게 내 주위에 대해 터엉비게 느끼던 이유는
나의 잔뼈를 키운 풍토와 정서와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 
그 무엇보다도 언어 부재의 머엉함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처음 십여년이 그 귀가 멍멍한 진공상태의 극치였다.
사람들에 둘러싸인 모임에서도 나는 곧잘 절대 홀로일 때가 많았다.


소음이던 영어는 세월이 감에 따라
귀를 파고 들어와서 머리속으로 이해는 되었지만
귀에서 가슴으로 전해져 살갗에 전율을 일으키고 머리칼을 서게하고 
파안대소하고 눈물이 되기에는 그 전해지는 파장이 짧고 미미했었다.


언어는 
차가운 금속성 도구들 처럼 의사소통의 전달 그 이상의 역할을 못했었다.


한국에서
마악 성장한 싱싱한 언어들을 가지고
기복이 큰 젊은 날의 희로애락을 농탕지도록 구가하고도 남아
말의 유희를 즐기고도 남아 싫증이 날 때면
침묵과 시어로 자기 표현과 의사소통을 축약하며 
언어의 한없는 풍부함 속에서 살던 이십대


어느 날
이국에서 뚝 끊겨버린 나의 언어는
내 속에서 밀봉 질식되고 나는 불통의 먹먹함 속에서 
절대 외로왔다.


죽어가는 입과 귀와 머리, 심장, 미소, 눈물, 소름, 피부를 살려내기 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어린애로 돌아가 영어의 옹알이부터 다시 배웠다.


짧고 가난한 나의 새 언어는 
나를 바꾸었다.


대화에서
말을 아끼고
직선적으로 말하며
말장난을 못하며
항상 의사전달에 급급했고
있는 나 를 그대로 나타냈다.


그리고 그 태도가 나의 언어생활에 , 사고 방식에 고착이 되었다.


지금은 영어에도 어느 덧 피가 돌고 살이 올라
언어가 감성들을 자극하고 
말없이도 표정으로 알아듣고 대답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 생기긴했지만

나의 가난한 언어 습성은 여전하다.



한편 언제부턴가
나는 무슨 이유에서든
홀로인 사람들을 견디지 못하고 곁에 다가가는 습성이 생겼다.


그들은 예외없이
좋은 친구가 되곤한다.


이건
나의 이민 생활의 고독함이 조용히 가져다 준
소중한 축복이다.


절실히 외로워 본 사람에겐


그 어느 누구라도 

사람인 것만으로

소중하고 

반.갑.다.


2001년 

교포아줌마



교포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