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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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주변이야기

2021. 6. 6.

 

 

드디어

어렵게 

크리쓰랑 점심 약속을 했다.

 

뭐 해?

먹고 있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지. 

 

 

토요일 아침

늦으막하게 느긋이 브런치 하자고.

 

뭘 먹으면 안되는지

물었다.

 

쇠라도 녹이는 위장을 가졌다고 자랑하던 게 불과 이삼년 전인데

일년 반 전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항암제 투여와 수술 그리고 또  항암제 투여 후

잠시 쉬고 있는 중

 

 

기름기를 피하고

생 야채는 소화가 어렵고

맵거나 자극적인 것

딱딱한 것을 피하고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는단다.

 

 

그거 나이 든 사람들 다 먹는 거 아냐?

그렇지

 

 

한 동안

우리 집 식사 때 마다 단골 손님이었던 크리스

먹어 본 것 중 뭐 먹고 싶은 것 있느냐 함께 꼽아 봤다.

소바, 죽, 우동....

 

 

아침 부터 비가 흩뿌리고

하늘이 내려 앉는다.

해가 가리니 춥기도 하고.

메뉴는 죽 이 좋겠다.

 

 

 

흰 쌀을 찾아 불리고

치큰 국물에

당근, 샐러리, 감자, 양배추, 양파, 호박을 잘게 썰어

야채 죽을 만든다.

기름을 피하느라

끓이기 전 먼저 참기름에 볶는 과정을 생략했다.

 

닭 가슴 흰 살은

아주 얇게 저미고 잘게 썰어 소금 살짝 뿌리고

기름 대신 물 조금 뿌려

약한 불에 오래동안 살살 부드럽게 익혀

고명으로 준비하고.

 

 

 

 

 

한 때

동네 절에서 주는 모찌 때문에 

불교 신도가 될까 했을 정도로

모찌를 좋아하는 크리쓰.

색도 고운 두텁떡이 마침 있다.

 

 

 

 

 

계피가 너무 자극적이진 않을까

 

생강 계피 대추차를 엷게 끓이고.

 

식사 준비 끝

 

 

 

 

비가 와서 가든은 못 걸을테니

바깥에 나가 꽃 몇개 들여 온다.

 

한 무리의 아이리스가 지나고

이팝나무 마가렡  칼라 등 흰 꽃들이 한창이네

 

아픈 크리쓰라 무채색을 피하고

밝은 색으로 몇 개 엮었다.

 

약속한 열한시가 이십분이 넘도록 안 오네

언제나 칼 같이 시간을 지키는데.

 

전화를 하니

깜빡 잊어 버렸다고 

불야불야 달려왔다.

 

아직 혼자 운전할 수 있다고.

키모 때문에 머리가 다 탔나보다면서.

 

남편 제프는 그의 첫번째 대학원생이었던

각별했던 제자가 암으로 죽어서 오늘 장례식에 갔다고.

 

많이 야윈 모습이다.

 

남편도 합세한 우리의 브런치는 

따뜻하고 맛있고 

열띤 대화도 여전했다.

 

나는 새로 태어 난 외손자 소식도 전하고.

 

수의사인 크리쓰는

코비드로 약하고 쓸모 없는 사람들을 쓸어가게 되어서

자연의 섭리라고 했다.

1918 년 

지구 인구의 1/3이 감염되었던 스페니시 플루 때에 비하면 

지금의 상황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도.

 

국회의원의  1/5 이 죽은

코비드가 강타하고 있는 콩고 의 비참한 상황도 이야기 하고.

 

하루 하루 약물에 의존하면서도

아직

철저히 적자생존 주의자다.

가난도,

제 삼 세계의

과학에서, 의료시설에서  먼 생활도 약자 축 에 포함했다.

 

아픈 중에도 

아직

세상 돌아가는 걸 열심히 꿰고 

자신의 의견을 열렬히 투영하는 것에

 안심 했다.

 

달라진 건

나나 남편이나 

반론을 펴지 않은 것이다.

 

암에 걸린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에서 자신들을 제외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라고 하는데...

 

예전의 탁상공론의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두텁떡을 접시에 올리고 나이프와 포크로 잘게 썰어 먹는 크리스.

 

무슨 음식을 먹든 간에

포크와 나이프를 정교하게 쓰는 크리스네 부부를 대할 때 마다

남편은 

영국 사람들이 만든 테이블 매너를 놀리곤 한다.

 

'사람에겐 손가락이란 게 있어서 쉽게 집어 먹을 수 있거든'

 

사과를 접시에 올리고 포크와 나이프로 돌려 깎기해서 조금씩 베어 먹어

함께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영국 사람 이야길 또 한다.

 

 

크리스가 꺼내 놓지 않아서

병에 대한 이야기, 치료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크리쓰가 자신이 발행하는 섬의 농부들을 위한 뉴스레터에 내기로 계획했던

'휠체어에 앉아 채소를 가꾸는 뤤디'

의 이야기는 끝 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뭐든지 미루면 안 되는데

늦었네....

 

우리 둘이 한동안 말을 아꼈다.

 

누가 먼저 갈 지는 아무도 몰라.

그냥 주어진 오늘을 잘 살아내는 거지.

 

 

잠시 개인 틈에 밖에 나가 걸었다.

 

이 라벤다들이 주먹 만할 때 만났는데

벌써 이렇게 큰 포기들이 된게 기적 같아.

그러게 벌써 십오년 되었네, 우리 처음 만난 지가.

 

크리스를 꼬옥 안았다.

마른 풀포기 같이 마주 안겨왔다.

 

꽃 피면 또 와.

그래야지.

 

 

저녁

남편이 급하게 부른다.

 

여보야, 밖을 내다 봐

무지개가 떴어.

 

집 주위를 울며 도는

섬 바람을 막으려

알라스카로 떠나는 크루즈 큰 배들이

침실을 향해 들어오는 것 같아서

방풍림을 심어 십오년 간 키가 자라니

땅에서, 바다에서 뿌리를 박고 뜨던 무지개가

이젠 나무 위에 걸리네.

 

 

 

무지개 반대편

북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어

무지개보다 더 찬연하다.

 

아무렴.

무지개는

해 반대 쪽에 뜨지.

 

오늘

잘 살았네.

 

 

mozart sonata #16 C major Lang Lang

 

 

이천이십일년 유월 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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