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크리쓰를 보내며

댓글 12

농장주변이야기

2021. 11. 28.

 

아무개야

내 사랑 크리씨가 오늘 이른 새벽에  떠났어.

지난 육십년 간 나의 빛 이었으며 연인 이었어.

내일 토요일 크리씨를 보내는  촛불 모임을 오후 네시에 가지려고 해.

와 줄 수 있어?  

 

어제 낮에 받은 제프의 폰 메씨지다.

 

크리스마스에 태어나서 본명이 크리스틴인  크리쓰

제프는 애칭으로 크리씨가 부르고

이웃들은 크리쓰 라  하고.

 

그러지 않아도 엊그제 바바라랑 크리쓰가 크리스마스 생일을 맞게 될 수 있을 거야.

크리스가 누군데.... 했었는데.

이년 조금 더 전에 말기 췌장암 진단을 받고

열심히 투병 했다.

 

이젠 마른 눈인 줄 알았는데

굵은 눈물이 후두둑 아이폰 위로 떨어진다.

 

 

 

 

오늘 토요일

어제 밤 부터 비가 억수처럼 퍼 붓는다.

온 동네가 다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에 있는 크리스랑 제프네 농장에

낯익은 동네 사람들이 이 어두운 오후에 비를 맞으며 모여왔다.

 네 시 경이 되니 비가 완전히 그쳤다.

 

 

크리쓰네 아랫 집에 사는 페니

그 어려운 시간 동안 크리쓰를 돌보고

그 시도 때도 없이 많은 병원 길을 동행해 주었던.

초를 건네준다.

 

누가 크리쓰 아니랄까봐.

자신이 떠나고 난 후

언제 어디서 누구들을 불러 촛불 모임을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빈틈없이 계획하고 준비해 놓고 떠난 크리쓰.

 

 

 

페니가 데크에서 큰 소리로 시작을 알리고

우리는

제프 가 처음 붙인 촛불을 차례로

불 붙여 주고  받으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더러는 아는 얼굴들

 만나서 반갑다고.

그리고 이웃, 친구 크리쓰가 떠나서 아쉽다고.

더러는 함께 눈 가를 소매로 훔치고.

 

 

오지랍이 넓기도 했던 크리쓰

섬에 사는 다양한 각 종의 사람들이 다 모였네.

남편 제프와 함께

영국에서 훈련된  수의사들로

아프리카 사파리

남미의 밀림, 가축농장

서남 아시아의 밀림 속의 동물들 을 돌보느라

지구를 두루 돌아다니며 일 해서인지

사람 만나는 일엔  벽도 없고 거침이 없었다.

 

 

순서도 없이 자발적으로 누구든지 원하는 대로

크리쓰를 추모 하고

남편 제프를 위로하는 말들을 나누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 십칠년 전 우리가 이 섬에 처음 이사 온 이후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가 크리쓰 야.

동네 파머스 마켓에서 만났는데 첫 눈에 딱 내 친구로 보여지더라.

나랑 친구할래?  그리고 나서

우린 친구가 되었어

크리쓰는 누구에게나 가깝게 다가갔어. 마치 물 처럼 자유롭고 경계가 없이.

그리고  사람들의 연결고리 였어.

서로 필요할 것 같은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알아서 만나게 해 주고 이어주고.

누군가에게 남는 물건이 누구에게 필요한 지 잘 알고 있었고.

크리쓰를 알게 된 건 내겐 참 행운이야.

......

 또 그녀와 내게 있었던 우스운 에피소드를 나눈 것 같다.

 

바람 소리에

더러 들리기도 하고 끊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우린 말로 울며, 웃으며

크리쓰를 다시 잠시 살려내 보았다.

허공에 흩어지는 말, 말, 말들.....

 

커뮤니티 (공동사회)가 있어야 사람이 잘 살 수 있다는 걸 굳게 믿었던,

전 세계를 떠 돌아 다니며 언제나 외로운 나그네 였을, 

그래서 가는 곳 마다 누구 와도 친구가 된 크리쓰

 

몽골의 전통 가수들을 초대 해 숙식을 제공하며

동네 작은 교회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어 섬 사람들에게 

몽고 들판의 바람소리 같은 노래를 들려준 것, 남미의 피리 연주가들을 비롯해서

크리쓰가 우리 섬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간 것은 미처 헤아릴  수 가 없다.

 

어둠에 깊어지고 촛불들은 더 밝아지고

바람이 좀 더 세게 불기 시작한다.

 

크리쓰와 제프를 미시간주에서 이 곳 시애틀 지역 으로 오게 했다는

부부의 오랜 친구가 

자, 그럼 우린 크리쓰를 위해 노랠  불러야겠지?

누군가 

 for She is a jolly good fellow를 시작하고

우리 모두 다 함께 불렀다.

for she is a jolly good fello Nobody can deny

(그녀는 유쾌하고 좋은 사람이야, 아무도 부정할 수 없어!)

 

좋은 친구 크리쓰

잘 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길.....

 

 

크리쓰네 집 에서 이백미터 쯤 떨어진 곳에 세워진 높은 철탑 수신대에 봄이면 물수리(osprey)들이 찾아와 둥지를 짓고 새끼를 낸다. 독수리들 보다 더 높이 난다고 모든 새들의 친구인 크리쓰가 애지중지 하는 새들이다. 내년 봄에도 또 오겠지.

 

 

이천이십일년 십일월 이십칠일

내 친구 크리쓰를 보내며

교포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