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경보령이 났다.
태평양 바닷물 덕에 얼지 않는 우리 동네에
며칠 째 비 대신 눈이 와 쌓이고 얼고
오늘 밤엔 강풍이 분다.
벽난로 굴뚝 위를 휘감아 돌며 부는 바람이
제법 세다.
* * *
바람이 무서운 줄
이 집에 이사하고 나서 처음 알았다.
남 으로 뻥 터져서
겨울엔 서남쪽에서 불어오는 칼날 같은 바람에
앞 문을 한 번 열었다 닫으려면 온 몸을 써야했다.
집을 도는 바람 소리는
별 별 괴성을 밤 새 지르더라.
이사 하고 며칠 안 되어
옆 집 사는 죤 웨인 같은 거구의 여인이 울타리에 기대어서 말을 걸어왔다.
이 집에 이사 온 사람들은 무슨 연유 에선지
얼마 안 살고 이래저래 불행해져서 이사 나가곤 했다' 고.
-그래? 처음 이사 온 이웃에게 하는 이야기 치곤 별로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네.
그런데 나는 집(House)이 사람을 만든다고는 믿지 않아.
사람이 집(Home)을 만들지.
-그거 용감한 생각 이네. 글쎄 두고 볼 일 이야.
며칠 후
두 집 건너 사는 이웃이 와서 또 말을 건넸다.
지난 십년 간 이 집에서 살고 이사 간 사람들 중에
아이들도 낳고 잘 살다 가 이사 가 지금도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이혼이 세번 있었던, 이혼하는 집 이라는 소문은 사실 인데
한 여자가 이 집에서 두 번 이혼 했기에 사실은 두 번 이나 마찬가지라고.
요즘 세상에 이혼은 아주 흔한 일 아니냐고.
나중에 안 일은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언제 이사 나가는지 날짜를 세고 있었다고.
아마, 바람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아무도 나무 한 그루 안 심어
집만 빈 벌판에 뎅그랗게 바람을 맞았으니.
갖 가지 크고 작은 나무들을
처음 몇 년 동안
둘 이서 천 그루도 넘게 심었다.
한편
갖 가지 모양의 연 들을 구했다.
바람을 갖고 놀자
그래서 바람과 친해 지자고.
어떤 날엔 열 개 이상 되는
커다란 연 들을 하늘에 띄워 놓기도 했다.
바람이 한 방향에서 불 때는 연을 날릴 수 있는데
사방에서 걷잡을 수 없이 부는 날엔
몸의 중심이 흐뜨러지는지
기분 마저 불안해졌다.
연도 못 날리게
바람이 중구난방 으로 시끄러운 날엔
일찌감치 배 타고 뭍 에 다녀오곤 했다.
섬에는 바람이 많다는
그 당연한 걸 섬에 이사오고 나서야 알았네.
* * *
어언 간 열 여덟 해.
앞 뒤로 크게 자란 나무들은 센 바람들을 잘게 부순다.
처음의 그 집을 밤새 돌던 바람은
언젠 가 부터 없어졌다.
오늘 처럼 굴뚝을 세게 때리는 바람 에도
따뜻한 차 한 사발 두 손에 모아 쥐면
겨울 바람이 뭐 이 정도는 되지... 한다.
어디선가 잔 나무 가지 많이 부러지고
새 들도 깊은 곳에 깃들어 잠을 설치겠다.
이런 밤엔
부엉이도 지붕 위에 올라 와 앉지 않고
들 쥐들도 땅 속 깊이 숨어 있겠다.
다 들 무사하길.....
한대수 바람과 나
이천이십이년 일월 일일
당연한 겨울 바람이 조금 세게부는 밤에
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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