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영어로 아이와 이야기하는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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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말과 한국말 사이에서 헤매기

2012. 10. 12.

아래의 글은 이천팔년 겨울 서울에 머물면서 느낀 것을 쓴 것인데요.

사년이 지난 요즘에도 여전히 같은 현상을 보며 이글을 다시 한 번 올립니다.




                                           섣부른 영어로 아이와 이야기하는 엄마들





서울 강남 한 복판 상가에서

유모차에 앉은 두어살 어린 자녀에게 열심히 짧은 영어로 이야기 하는

젊은 엄마를 목격했다.

조기 영어 교육열이 이해는 가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남의 일 같지 않게 말리고 싶어진다.

 

 

나는 미국에서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아이들과 한국어로 말할까 영어로 할까하는 고민을 참 많이 했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한국어가 모국어다.





 

첫째 아이가 만 두살이 되어 유아원에 가게 되었을 무렵 

그때까지 집안에서 한국어만 썼으니

영어가 익숙치 않아 학교에서 적응을 못할 것이 걱정이 되었다.

 

그 땐

나 자신도 일센치도 안되는 짧은 영어로

겨우 손,발, 눈짓, 한숨까지 동원해야만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우리 아들 유아원( nursery school) 에서 필요할 때 화장실에 가고

목마르면 물 달라는 의사소통은 할 수 있어야지 

하는 마음에서 망서림 끝에 자신없이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 우리 아무개 착해라. 우유 다 마실까?' 하던 말은

'Finish your milk.'

'이젠 낮잠 잘 시간이네. 엄마랑 코 잘까?' 는

'Go to your bed.'

'어머나 예쁜 노랑 나비가 왔네.  어디 꽃이 피고 봄이 왔나보다.'는

'Look at the yellow butterfly.' 하는 식의 거두 절미한 기본적인 딱딱한 명령문과 

세세한 감정이 결여된 엉터리 외마디 내지는 토막 영어들로 바뀌었다.

 

그 뿐인가.

나자신이 발음도 어려운 영어로 말하자니 영어 시험 볼 때 처럼

목이 다 뻣뻣해지게 긴장이 되어

군대 훈련의 교관처럼 무뚝뚝하고 퉁명스런 아주 부자연스런

어투로 아이에게 말했을 것임은 불보듯 빤하다.

 

이런 희생을 치루고 아들이 유아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 아이가 학교에서 쓰는 어투가 좀 불친절하다고 교사가 노트를 보내왔다.

학교에 가서 우리애를 관찰해보니

아뿔싸! 교사에게도 친구사이에도 그저 무례하게 명령쪼다.

 

 

친구한테 가위를 달라할 때도 'Would you~' 'Could you~'  'Please ~' 등의

공손한 어두를 생략하고

'Give me ~.'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해댔다.

엄마한테 배운 영어가 그것 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아이가 공손한 영어 말씨를 쓴단 말인가!

 

모국어(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어머니가 쓰는 말로 자신의 제일 언어)는

엄마( 아빠 또는 아깃적 부터 돌보는 사람이)가

자식을 품에 넣고 젖을 먹이며, 이유식을 먹이며, 음식을 해먹이며

옷을 입히며 사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자신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속에 녹여 넣어, 개성을 지닌 자신의 아이를 길러내는 말이다.

 

어린 아이는 엄마의 언어를 통해  

엄마랑 자연스런 관계를 맺으며 자라나고 세상을 향해 눈을 뜬다.

 

어릴 적에 엄마는 나를 지켜주는 보호자인 동시에 모든 것을 아는 자랑스럽고 위대한

첫스승이기도 하다.





 

 

내가 아들과 이렇게  서툰 영어로 부자연스러운 의사소통에 버벅거리며

이런 저런 때론 상반되는 조기 이중언어 교육에 대한 의견들 속에서

갈팡질팡 갈피를 못잡고 있던 중

 

아들이 네살 때쯤 접하게 되었던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과 저자가 전혀 기억이 안나는)

한 이중언어 교육에 대한 책은 내게 무척 수긍이 가는 견해로

그 후 내가 아이들과의 소통을 전적으로 한국말로만 하게 바꾼 계기가 되었다.

책의 요지는 다중언어 교육 환경을 가진 아이의 경우,

한개의 언어(대개의 경우 모국어)에 숙달하게 되면

다른 언어를 배울 때도 그 수준에 상당하는 말을 찾아 표현하게되므로

기본적으로 우선 한 언어에 능숙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예로

'노란 봄볕이 개나리꽃처럼 화사하다'라는 말로 봄볕을 나타낼 줄 아는 아이는

제이 제삼의 언어를 배울 때도 그에 상당한 말을 찾아 표현해내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즉 모국어(제일 언어)는 언어 능력의 기본틀이 된다는 것이다.

"봄볕이 밝다'라고 표현하는 아이는 새로 배우는 언어로도 그 만큼만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자유롭지 못한 영어로 아이의 언어발달상 중요한 시기를 놓친 때였지만

나는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한국말로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숨통이 트이게 편하고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기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제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기에.

 

이제

집에서는 한국어를 쓰는 부모와 

밖에서는 영어만의 환경에서 자라 성인이 된 아이들과 나의  대화는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내 한국말에 영어로 대답하고

나는 아이들의 영어에 한국말로 답하는, 좀 이상하게 들리는 이중언어 대화로

자연스레 고정되었다.

서로 편한 언어로 이야기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서로간의 의사소통에 자유롭다.

 

 

 

 

이제 마악  엄마, 아빠, 밥을 마스터하고

삼촌, 이모, 할머니, 강아지, 달, 별, 산 ,바다, 나무 ,꽃, 하늘 ,땅, 아침, 낮, 저녁, 밤, 새벽,

푸르다, 파랗다 ,퍼렇다, 푸르스름하다, 환하다 ,눈부시다, 찬란하다, 넓다, 크다, 아름답다, 

피다. 시들다, 지다, 뜨다, 뛰다 뛰어오르다, 튀어오르다 ,솟구쳐오르다, 튕겨져나가다,

시작하다, 끝나다,

다시, 또 ,영원히, 앞으로, 늘, 가까이,  멀리 등으로

어휘를 늘림에 따라

하루하루 자신의 우주를 넓혀 나가는 세네살 어린 자녀들에게

짧은 영어로 말하는 일부 엄마들에게 묻고 싶다.

 

 

아이와 감정을 나누고, 느끼고,

아이의 세상을 이해하고,

호기심을 알아내고,

당신이 아는 세상에 대한 지식과 질서와 가치를 전달하기에,

얼마나 영어로 말하기가 자유스러운가?

 

엄마와 어린 아이의 대화를 힘들게 영어로 옥조이는  과정에서

노치는 것들은 무엇일까

 

만약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자연스럽다면

당연하게 아이와 영어로 소통해야 할 것이다.

 

엄마의 아이 사이의 언어는 

그 마음을 자유로이 담아낼 수 있게

강물흐르듯 풍성하고 자연스러워야할 것이기에.

 

 


 

 

이천팔년 삼월 십구일

서울 강남에서

 

교포아줌마(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