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경담 2015. 11. 4. 19:54

 

 

 

문 : 깨달은 사람은 더 이상의 업이 없습니다. 그는 그의 업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그의 육신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답 :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깨달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까?

 

진인이 무엇을 하며 왜 어떤 일을 하는지, 그대가 왜 마음을 써야 합니까? 그대 자신을 돌보십시오.

 

 

 그대는 지금 자신이 육체라는 느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진인도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인이 자기(진아)도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던가요?

 

 

그대에게는 진인도 다른 사람들처럼 육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육체로써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자신은 자기에게 육체가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불에 타버린 밧줄은 밧줄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묶으려고 하면 밧줄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진인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다만 겉모습일 뿐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육체라고 생각하는 한, 이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대의)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때때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진인의 육체는 발현업의 힘이 다 소모될 때까지는 남아 있다가,

 

그것이 소진된 뒤에 사라집니다.'라고,

 

 

이점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비유가, 시위를 떠난 화살의 비유인데,

 

즉 그 화살은 계속 날아가서 과녁을 맞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진인이 발현업을 포함한 모든 업을 초월했으며,

 

육체나 그것의 행위에 의해서 구속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존재한다.'로서 항상 빛으로 발하며,

 

물리적 공간 안에 국한되지 않고, 또한 아무 한계없이 도처에 두루하는,

 

그러한 의식의 공간에 끊임없이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 사람(진아를 자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일점의 발현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천국을 성취한 사람에게 운명이란 없다.'고 하는 옛 속담의 참뜻입니다


(마하르쉬 말씀) 

 

 

 

에고의식 차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부처의식 차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헤아리기는 어려움이 있다 하겠습니다.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 동일시라는 에고의식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데,

 

무수한 생을 반복하면서 형성된 에고의식이 극복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수행이 따라야 한다 하겠지요.

 

 

때가 되면 부처의식이 저절로 열린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부처의식 안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핵심은 부처의식 차원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내용이 될 수 있겠지요.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자기의식의 개화가 직접적인 힘을 받는다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의식은 자신이 받아들이고 명상하는 차원을 흡수하기 마련이고,

 

그러면서 부처의식으로 깨어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하겠습니다.

 

 

부처의식 차원으로 깨어나는데, 내면 주시자 상태 유지가 많은 도움이 된다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차원을 벗어나게 하는데 효과적인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 존재의식에 거하는 자각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 방식이라는 것이지요.

 

부처인 순수 의식이 육체와 결합되며 반영된 현상이 자기 존재의식이므로

 

'나'라는 자기 존재의식은 현상 세계에 나투어진 부처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존재한다.'는 자기 존재의식에 거하는 상태(내면 주시자 상태)를 통해서

 

순수 의식 차원의 빛(신성, 참된 지혜)이 발현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꾸준히 부처의 빛이 발현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부처의식 차원에 대한 통찰이 열리는 시기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을 직접적인 방식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상 세계에 나투어진 부처를 통해서 부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된다 하겠습니다.

 

 

모든 수행의 수행 주체는 자기 존재의식이라 하겠지요.

 

자기 존재의식의 작용이 있어야만 이런저런 수행이 가능하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그자의 실체를 바르게 깨닫는 것이 참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수행하는 그자의 실체를 깨닫고, 그자 안에 거하는 노력을 계속하다 보면

 

부처의식 차원의 문을 열게 된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마다 자신들의 세계가 있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람과의 만남과 친분이란,

 

자기 안에 또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고 만드는 내용이라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알고 있지 못하던 세계가,

 

그 사람을 통해서 자기 안에 만들어지게 된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과의 인연이란, 자기 삶에서 참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저자의 세계를 간접 경험하는 내용이라 하겠지요.

 

자기 계발 쪽에서는 성공 관련 책을 천 권 정도 읽어주게 되면,

 

그 사람은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많아진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성공과 긍정적 마음가짐, 실천적 태도 등에 대한 세계를

 

자기 정신세계에 충분히 흡수시킨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기 의식 세계 자체가 성공과 긍정적 마음가짐, 실천적 태도 등에 익숙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 인생도 성공과 긍정적 마음가짐, 실천적 태도에 익숙한 인생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성공 관련 책 천 권 정도 읽는 노력은,

 

자기 의식 수준을 바꾸는 자발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성공하고 싶으면 그 정도라도 자신을 도우라는 것이지요.

 

 

제가 표현하려는 핵심은, 수행을 하든 책을 읽든 다양한 경험을 겸해서 하든, 

 

스스로의 세계를 새롭게 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발적인 노력이 충분히 따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부처를 믿는 믿음 안에서 노력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의 문이 차원을 달리해서 열리게 된다 하겠습니다.

 

 

 

 

 

* 개인적인 표현입니다. 도움되는 내용이 있으면 마음에 담아가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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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마하명상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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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인 노력이란 쉬우면사도 어려운 뜻 인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