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7. 12. 8. 07:00


나만의 은밀한 정원같은 합천 내천 못재

 

제대로 보내고 싶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7, 그렇게 그냥 저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한 해 동안 고생했다고 보듬고 싶었다. 1127, 은밀한 비밀 정원에서 의식을 치르듯 한해를 돌아보고 쉬다 왔다.

 

경남 합천군을 가로지르는 황강은 율곡면 농공단지에서 에둘러 한번 돌아 쉰다. 낙민삼거리를 지나 내천리에 이르러 한 번 더 굽이 쉰다. 덩달아 운전하는 나 역시 강과 속도를 맞춘다.

 


합천 내천마을에는 내천 못재를 비롯해 청계서원과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가 있다.

 

황강이 낙동강과 만나기 전 잠시 너른 들판이 펼쳐진 곳에서 강과 헤어졌다. 농촌건강장수마을 내천리라는 이정석 옆에는 청계서원,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 이정표가 덕지덕지 함께한다.

 


합천 내천마을 벽화

 

마을에는 벽화들이 이미 가버린 가을 기억을 떠올린다. 감나무에 올라가 감하나 따려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아이. 벽화 속 아이는 감을 따서 무사히 나무 아래로 내려가 맛나게 먹었을까. 괜스레 걱정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는 엉터리다. 잘잘못을 명확하게 기록해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생가를 복원하기 위해 들어간 세금이 아깝지 않다.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는 엉터리다. 가난한 농민의 집이었다는 안내판 내용과 다르다. 시멘트 담장과 마당 한 가운데 향나무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더구나 안내판에는 ‘~퇴임하자마자 정치적 공경을 받아 모두 4년 넘게 유폐 생활과 옥고를 치렀으나, 평화적 정권이양의 전통을 세워나가기 위한 진통으로 여겨 모든 어려움을 감내했다는 문구는 어이 없게 만든다. 잘잘못을 명확하게 기록해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생가를 복원하기 위해 들어간 세금이 아깝지 않다.

 


남명 조식 선생의 벗인 우옹(愚翁) 이희안(李希顔)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 명종 때 건립된 청계서원.

 

마을을 옆으로 난 산으로 가는 길로 향했다. 작은 저수지를 지나자 청계서원(靑溪書院)이 나왔다. 남명 조식 선생의 벗인 우옹(愚翁) 이희안(李希顔)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 명종 때 건립되었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전치원(全致遠), 이대기(李大期)를 함께 배향하고 있다.

 


합천 지산 정상 부근에서 황강 너머로 바라본 풍경

 

서원 잠시 둘러 본뒤 다시 산으로 향했다.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지산(池山) 정상 부근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찬바람마저 맑다. 산 아랫마을과 풍광을 두 눈에 담는다. 정상부근은 넓따란 잔디밭이다. 인근 주민들이 씨름으로 친목을 여기서 다졌다고 한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이 여기에 주둔해 맞은편 백마산성에 진을 친 의병과 접전을 벌였던 곳이라 한다. 현재는 팔각정이 있는 지산공원으로 만들어져 더욱 친근한 유원지가 되었다.

 


합천 내천 못재로 가는 길

 

바람개비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진액을 다 뽑아내고도 아직 붉은 나뭇잎을 차마 떨구지 못한 단풍나무의 마중을 받으며 들어선 길은 꽃길이다. 소나무 갈비가 푹신하게 받쳐주는 길 위에 붉은 단풍잎이 놓여 잠시나마 신선인 양 나를 땅 위로 붕 띄운다.

 


숲 속에서 하늘이 뚫린 곳에 연못이 나온다. 내천 못재다.

 

숲 속에서 하늘이 뚫린 곳에 연못이 나온다. 내천 못재다. 못재는 화산이 폭박하여 생긴 화구호라고 전해 오지만 자연함몰로 생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 일종인 순채에서 무색투명한 액체가 주렁주렁 열리는 5월 단오쯤이면 피부병에 특효약이라 인근 환자들이 와서 따먹는다고 한다.

 


내천 못재 긴 의자에 앉아 눈을 살짝 감자 지친 내 일상이 가려진다.

 

알록달록 긴 의자에 앉았다. 가져간 캔커피 뚜껑을 따악따는데 소리에 놀랐는지 푸드덕푸드덕 꿩이 날아간다. 커피 한 모금에 하늘 한 번 바라본다. 눈을 살짝 감자 지친 내 일상이 가려진다.

 


합천 내천 못재 바람개비

 

4백여 평의 작은 연못을 사부작사부작 걸었다. 걸으며 숲의 기운을 담았다. 걸음을 옮길수록 그리운 건 가족이다. 은밀한 내 비밀의 정원에 다음에 꼭 함께하고 싶다.

 


합천 내천 못재는 나만 알고 싶은 비밀 정원이다.

 

다시금 긴 의자에 앉아 가져간 책을 읽는다. 숲이 푸르고 공기가 맑으니 기운이 덩달아 맑아진다. 무성했던 초록을 등지고 민낯으로 반기는 숲속에서 계절의 깊이를 느낀다.

 

나만 알고 싶은 비밀 정원에 햇살이 숲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숲의 한낮은 고요하다. 풍요롭다. 비우기 위해 찾았던 내게 새소리, 바람 소리가 가슴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