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해찬솔 2018. 2. 27. 21:56




자형 덕분이다. 눈을 보기가 좀체 어려운 따뜻한 남쪽 나라 ‘경남 진주’에 사는 까닭에 눈이 잦은 호남으로 떠나는 나들이를 자형은 반대했다. 1월 15일부터 16일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누나와 남동생, 그리고 내가 떠나는 1박 2일은 결국 승용차를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진주에서 순천으로 기차를 탔다. 떠나고 싶은 시각에 맘대로 떠나는 승용차가 아니라 정해진 시각에 출발하는 기차라 일정이 구속받지만, 오히려 운전대를 놓으니 동생이나 나는 홀가분했다. 순천역에 도착에 택시를 타고 드라마세트장을 향했다. 합천 드라마 세트장과 비교해 작지만, ‘달동네’를 주제로 만든 덕분에 어머니는 옛 추억을 떠올리는 기회였다. 어머니는 내 어릴적 기억도 가물가물한 당시를 갑자기 말문이 트인 사람처럼 쉼 없이 들려주었다.



드라마세트장을 나와 다시 순천역에서 전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전주라는 가는 길은 눈이 아직 녹지 않아 하얀 설국이 펼쳐져 눈을 처음 보는 아이처럼 누나는 연신 창너머 풍경을 스마트폰에 담기에 바빴다. 어머니는 기차여행의 별미였던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건넸다. 마치 소풍나온 기분이었다.



도착한 전주역에서 곧장 숙소로 이동해 짐을 먼저 풀었다. 짐을 풀고 홀가분한 기분에 근처 한옥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20대 젊은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인증사진을 날리는 풍경에 어머니는 그것도 구경이라 좋아하신다. 걸음이 불편한 어머니를 관광용 오토바이에 태워 마을을 여기저기 돌아보고 경기전을 찾아 조선 태조 이성계 어진을 관람했다.



드디어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동생과 나는 쾌재를 불렀다. 어머니와 누나와 달리 남동생과 나의 이번 여행 주 목적지는 전주 막걸리골목이었다. 언론 등에 많이 소개된 막걸리집으로 향했다. 이미 관광객을 위한 차림표에서 한상을 주문하고 저녁을 겸해 막걸리를 마셨다. 한상 가득 나오는 차림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만큼이나 풍성했다. 가족과 함께 부담 없이 마시는 술이라 두 주전자를 마시고도 쉽사리 취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어머니를 먼저 숙소를 모셔다드리고 유명하다는 전주 가맥(가게 맥주)을 마시러 나섰다. 가게 안은 가맥을 마시기 좋게 여러 테이블이 놓여 있고 여기저기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도 황태포에 맥주를 마셨다. 자정을 넘겨서도 우리 남매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해장 겸해 전주 콩나물국밥 집으로 가려고 했다. 어제 어머니와 누나가 싸온 주전부리가 많이 남아 그것으로 요기를 했다. 전주박물관을 관람한 뒤 전주비빔밥으로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신과 함께’라는 영화도 봤다. 우리 가족은 최고의 사치인 시간 사치를 누렸다. 온전히 우리 모두를 위해 넉넉한 시간이었다.


1박 2일, 조금은 느려도 괜찮은 가슴이 시키는 길을 나선 나들이였다. 누구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 속도로 떠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