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8. 4. 11. 06:30



 

걷다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걷기 좋은 날. 시간을 거스르는 넉넉한 곳에서 시간 사치를 누렸다.

 



 

진주시합천군의령군과 경계를 이루는 산청군 생비량면은 빛바랜 기억을 담은 동네다. 면 소재지를 들어서는 길목에도 비량의 얼이라는 식물로 만든 글자가 먼저 반긴다.

 

생비량면 유래는 신라 시대에 가계리와 화현리 사이에 사찰이 있었다. 절의 주지가 비량(比良)이었는데 넓은 자비심으로 주위 존경을 받다가 갑자기 떠나려고 하자 주민들이 떠나지 못하도록 애원하자 스님은 떠나도 영원히 남아 있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에 생()자를 붙여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보건지소에 차를 세우고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면사무소에는 부부바위(夫婦石)가 먼저 반긴다. 원래 집현산 기슭 현동마을에 있던 부부 바위를 이곳에 옮겨 세웠다. 오른쪽은 남편, 왼쪽은 부인으로 이 바위에 공을 들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도 슬며시 합장하고 예을 올렸다.

 



 

면을 돌아가는 양천강 너머로 햇살이 쏟아지고 산은 초록 초록 봄을 알린다.

 



 

정자에 널따란 소파가 놓여 오가는 사람을 쉬어가라 붙잡는다. 파출소 앞에도 덕선정이라는 정자가 놓여 여기에서도 쉬어가라 손짓한다.

 



학교 앞 천천히라고 적힌 검은 아스팔트 위에 적힌 글자처럼 마을은 에둘러 빨리 갈 사람이 없다는 듯 모두가 느긋하다.

 



 

길가에서 생비량 초등학교 정문을 바라보면 큰 칼을 움켜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당당하게 눈에 들어온다.

 



 

어느 집 옥상에는 개나리가 봄소식을 샛노랗게 전한다. 그 아래 유채꽃도 질새라 노랗게 꽃을 피웠다.

 



 

슬라브 담벼락 구멍에는 박카스 빈 병들이 하나둘씩 들어 있다. 시멘트 블록 사이로 끼워 넣은 까닭이 궁금해진다.

 



 

오만가지+α가 적힌 주위로 말 그대로 오만가지들이 자신을 알아줄 손님을 기다린다.

 

지나온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넉넉한 공간에서 느긋하게 여유를 느낀 하루다. 꽃망울이 툭툭 터지는 4, 시간마저 천천히 지나는 생비량을 거닐며 다채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