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8. 4. 13. 06:30



 

오가며 보지 못했다. 산청군 신안면 원지에서 신등면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지마고개를 넘으면 어서 오십시오 신등면이라는 큼지막한 글자만 눈에 들어왔다.

 



 

뒤편에 새로 만든 돌 장승의 반기는 모습도 겨우 보았다. 향토사학자 손성모가 쓴 <산청의 명소와 이야기> 책을 읽고 사연을 알았다. 사연을 알자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곳이 눈에 들어왔다.

 



 

10m 정도 왔던 길을 돌아가자 오른편에 정려각이 보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오른 역사의 현장이다.

 

'정려각은 충신과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정려비와 정려기(표창 내용을 기록한 나무)을 보호하는 건물이다. 여기 정려각은 포산(苞山, 현재의 현풍) 곽씨(郭氏) 정려(旌閭).

 



 

류문호(柳文虎)의 처인 곽씨 부인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곽준(1550~1597)의 따님이다. 곽준은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안음 현감으로 있으면서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가등청정(加藤淸正, 가토 기요마사)의 대군을 맞아 두 아들과 사위인 류문호와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곽씨 부인은 친정 식구들과 남편이 장렬한 최후를 맞자 통곡을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친정아버지께서 전사하셨어도 따라 죽지 못한 것은 남편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남편마저 전사하였으니 어찌 차마 살 수 있겠는가.”

 

 

 

곽씨 부인도 높은 성벽에서 뛰어내려 순절했다. 이 사실에 나라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동계 권도 선생이 비명에다 부자녀 일가 삼상 출효열 만고가치(父子女一家三綱忠孝烈萬古柯則)’이라 새겼다.

 

한 집안에서 다섯 사람이 연이어 순사(殉死)한 사실이 알려지자 1598년 선조 임금은 한 집안에서 세 가지 근본 윤리를 바로 세웠다(일문삼강一門三綱)’는 말과 함께 정려(旌閭) 하도록 했다.

 



 

정려각 뒤 나뭇가지에 이슬이 알알이 맺혀 그날의 역사를 들려준다.

 



 

정려각에 숨은 이야기를 알자, 500여 년 전의 역사가 눈 앞에 펼쳐진다. 공간에 담긴 역사를 읽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