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8. 7. 27. 09:30


 

햇볕은 자비가 없다. 직선으로 곧장 내리꽂힌다.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른다. 태양의 열기로 달구진 땅에서 열기만큼 간절했던 바람을 찾았다. 한적한 면 소재지에 고려 민중들의 바람이 돌에 새겨진 흔적이 있다. 하동군 옥종면에 있는 하동청룡리 석불좌상(河東靑龍里石佛坐像)’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하동군 옥종면


옥종면(玉宗面)1906년 진주군 운곡면에서 하동군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진주에 속했다. 1914년 하동군 운곡면·북평면·정수면 일부를 통합한 옥동면과 가서면·종화면 일부를 통합하여 가종면이 1933년 통합하면서 옥종면이 되었다. 동쪽으로는 진주시 수곡면, 북으로 산청군 단성면, 남쪽으로 북천면, 서쪽으로 청암면과 이웃한다.

 

하동군 옥종면사무소


면사무소 입구에 들어서자 선비의 고장이라는 바위가 먼저 반긴다. 화단에 심어진 플록스 꽃이 하얗게 피워 빙수처럼 시원하다.

하동군 옥종면사무소 화단에 심어진 플룩스가 하얀 빙수처럼 싱그럽다


면사무소 길 건너에 매를 닮은 연은  바람에 장단 맞추면 허공을 가른다. 아래에 큰 돌 위에 작은 돌멩이 네 개가 업혀 작은 돌탑을 이룬다.

 

하동군옥종면사무소 길 건너에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매의 형상을 한 연이 바람이 춤을 춘다.


면사무소 한쪽에 빈 그네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네 의자를 움직여 놀아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분홍낮달맞이가 홀로 바람과 논다.

 

하동군 옥종면사무소 한쪽에 있는 흔들그네의자


면사무소와 바로 이웃하고 있는 우체국과 경계에 고려 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석불좌상이 있다. 높이 107cm, 다리 너비 97m의 석불좌상은 1954년 청룡리 마을 앞 들판에서 공사 도중 발굴되었다, 속칭 우마니들’, ‘우마니 절터라고 불리던 곳에서 주민들이 뜻을 모아 보호각을 짓고 이곳으로 옮겼다.

 

하동군 옥종면사무소와 이웃한 옥종우체국 앞에 있는 청룡리석불좌상


우마니 절터에서 발굴되어 이곳으로 옮겨왔다. 부처의 머리카락은 간단하게 표현했고 목에는 세 줄의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고려 민중의 바람을 담아 새긴 청룡리석불좌상


불상의 목에는 세 줄의 삼도(三道)가 뚜렷하지만 머리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어 얼굴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잠시 눈을 감고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운 부처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서방극락 세계의 부처인 아미타불 손 모양(手印)을 하고 있다.

 

소박한모습의 부처얼굴을 한 하동군 청룡리석불좌상


부처님의 소박함 모습에 절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았다. 그 옛날 이곳을 찾아 간절히 기원했을 사람들의 뜨거운 마음을 조용히 떠올렸다.

 

서산마애불의 온화한 <백제미소>처럼 하동군 청룡리석불좌상의 부처님도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청룡리석불좌상은 아미타불의 수인 모양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수 백 년의 시간이 흐른다. 돌을 쪼아 부처님의 얼굴을 새기며 간절히 기원했을 고려 민중의 바람을 품은 석불좌상의 옛 시간을 오늘 느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