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8. 9. 12. 07:00



 

그저 쉬고 싶었다. 불볕이 에워싼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집을 나와 진주에서 하동으로 가는 일반 국도를 따라 길을 나섰다. 진주 시내를 벗어나자 4차선 길은 배롱나무들이 진분홍빛으로 농익어가는 여름을 만끽하고 있다.

 


진주에서 하동 가는 일반 국도 중간에 있는 사천시 곤명면 정곡사거리

 

진양호가 시원하게 모습을 드러낼 무렵이면 사천시 곤명면 정곡리에 이른다. 정곡리(正谷里)는 그릇점이 있어 점골이라 불리던 곳이 정곡이 되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완사, 사창, 신기, 곡내를 합쳐 정곡리가 되고 곤명면에 편입되었다. ‘정곡리보다는 완사가 더 친근한 이 지역 사람들에게 정곡 사거리는 잠시 고민하게 만든다.

 


진주에서 하동 가는 일반 국도 중간에 있는 사천시 곤명면 정곡리에 있는 완사전통시장 주위에는 피순대집을 비롯한 맛집이 많다.

 

완사에서 진주시 수곡면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면 피순대와 소고기로 유명한 오일장(15) 완사시장이 나온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일 없듯이 이 근처를 지나는 이들에게 여기는 전통시장이기도 하지만 맛집이 즐비한 동네이기도 하다.

 


사천시 곤명면 완사지역 비닐하우스

 

오늘은 맛집을 지나쳐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드넓은 딸기로 유영한 지역답게 비닐하우스들이 밭에 가득하다. 비닐하우스에 잠시 눈길을 주자 신기문화마을 이정석이 나온다.

 


사천시 곤명면 정곡리 신기문화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작은 개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자 마을회관 앞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반긴다. 마치 여름방학이면 찾아간 시골 외가 동네 어귀에 언제나 넓은 품으로 우리를 반겨주던 나무를 닮았다.

 


사천시 곤명면 정곡리 신기문화마을 회관 앞에는 수령 45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다.

 

남쪽으로 45도 정도 기울어진 느티나무는 수령이 450년이 넘은 보호수다. 높이가 15m, 나무 둘레가 5.4m 정도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지도에도 표시된 나무라 한다. 나무 아래는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름에도 오한이 들 정도로 시원해 주민들이 무더위를 여기에서 잊고 지낸다고 한다.

 


사천시 곤명면 신기마을에 있는 느티나무는 모든 것을 자식에게 내어준 어머니처럼 제 속을 다 내어준 모습이 한편으로 애잔하다.

 

아낌없이 내어준 나무는 연륜에 비해 앙상하다. 모든 것을 자식에게 내어준 어머니처럼 제 속을 다 내어준 모습이 한편으로 애잔하다. 아낌없이 내어준 나뭇결에 잠시 앉았다. 나무는 내게 빨래한다는 완사(浣紗)의 유래가 깃든 옥녀봉 전설을 들려주었다.

 


사천시 곤명면 신기마을에 있는 수령 450년이 넘은 느티나무는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지도에 표시할 정도로 중요한 지점이다.

 

베 짜는 솜씨가 훌륭하고 용모도 아름다운 옥녀라는 아가씨가 있었다. 아가씨가 베를 짜서 덕천강에서 씻고 있는데 지나가던 민 도령이 한눈에 반해 청혼을 했다. 과거 급제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는 옥녀의 말에 민도령은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했다. 옥녀도 민 도령이 과거급제할 것을 알고 미리 옷감을 준비했지만 고을 사또가 지나가며 옥녀를 탐했다. 옥녀는 강에 빠져 죽었다. 이후 벼랑 끝을 지나는 혼인행 차는 어깁없이 화를 당해 이를 위로하기 위해 옥녀봉과 완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사천시 곤명면 신기마을에 있는 수령 450년이 넘은 느티나무에서 열 걸음 정도 뒤에는 진녹색 나뭇잎이 찬란하게 빛나는 젊은 나무가 서 있다.

 

전설을 떠올리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덜어냈다. 열 걸음 뒤쪽에는 더 가지도 많고 진녹색 나뭇잎이 찬란하게 빛나는 젊은 나무가 서 있다. 나무 밑동은 사람들이 편해지자고 만든 마루에 둘러싸여 있다.

 


사천시 곤명면 신기마을 회관 근처에 있는 나무 밑동은 사람들이 편해지자고 만든 마루에 둘러싸여 있다.

 

아쉬움을 달래며 융숭한 녹색 잎들의 넉넉한 그늘에서 번잡한 마음을 달랬다.

 


녹색 잎들의 넉넉한 그늘이 번잡한 마음을 달랜다.

 

외할머니처럼 모든 것을 주는 넉넉한 대접을 받았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다.

 


사천시 곤명면 신기마을 회관 앞에는 외할머니처럼 모든 것을 넉넉하게 대접하는 나무가 있어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