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8. 12. 28. 08:49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은 있다. 일부러 시간을 잡아놓은 듯한 함안 산인면 모곡리 장내마을, 고려동(高麗洞)이 그곳이다. 올 한해의 끝자락 고요한 시간 속으로 떠났다.

 


일부러 시간을 잡아놓은 듯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함안 고려동(高麗洞)

 

남해고속도로 산인요금소 인근에 자리 잡은 마을은 고즈넉하다. 마을 한가운데에 기와집 여러 채가 담장을 맞닿은 채로 있다. 기와 앞에는 장승이 해맑게 반기고 빨갛고 파랗고 초록빛 솟대가 햇살에 샤워 중이다.

 


함안 장내마을 고려동유적지 앞에 있는 솟대

 

장승과 솟대를 지나자 작은 개울이 나온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에는 고려교(高麗橋)’라 적혀 있다. 불과 1m도 되지 않는 개울을 건너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듯 순식간에 600여 년 전 고려 시대로 시간 이동을 한다.

 


함안 장내마을 고려교(高麗橋)’라 적힌 너머가 고려동이다.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는 성균관 진사(進士) 이오(李午)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로 하고 지금의 장소에 거처를 정하고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이오는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 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했다고 한다. 여기서 담안또는 장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함안 장내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 안내도

 

이오는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았다.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했다. 자손들은 1960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선조의 유산을 가꾸며 살았다.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져 온다.

 


함안 장내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는 성균관 진사(進士) 이오(李午)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로 하고 지금의 장소에 거처를 정하고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다리 건너 기와집은 효산정(曉山亭)이다. 효산 이수형의 유적으로 조선 고종 때 부자지간의 도리를 수차례 상소를 올려 10여 년간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귀양이 풀린 후 효산정을 짓고 후배 양성에 힘썼는데 교류하던 흥선대원군과 그의 아들 이재면이 보낸 편지를 모은 백운래홍첩(白雲來鴻帖)이 전한다. 편지 봉투에 하늘 흰 구름 사이를 나는 기러기 한 마리와 숲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기러기가 서로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그림이 그려진 데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함안 장내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 내 효산정(曉山亭)

 

걸음 때마다 슬쩍슬쩍 담장 너머가 보인다. 고즈넉한 담장을 따라 걷다 배롱나무를 만났다. 백일동안 붉게 핀다는 배롱나무꽃은 떠나간 벗을 그리워한다는 꽃말처럼 선대의 유지를 잊지 않겠다는 후손들의 다짐인 양 오늘도 당당하게 서 있다.

 


함안 장내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 내 자미단에 있는 배롱나무

 

배롱나무 곁을 지나 종택으로 들어갔다. 솟을대문마다 태극기가 걸려 있다. 종택은 한국전쟁 때 불타고 이후 복원한 것이다. 종택에는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반기는 모양새다.

 


함안 장내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 내 종택 입구

 

솟을대문 오른편에 배롱나무가 내다보이는 곳에 자미정(紫薇亭)이 있다. 마루에 앉아 담장 너머 배롱나무를 바라본다. 나무 위로 햇살이 층층이 쌓여 뜨거운 여름에 다시 만날 때를 기약한다.

 


함안 장내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 내 자미정(紫薇亭)

 

배롱나무에 한 눈이 팔린 내게 담 너머 대나무들이 바람에 사각사각 노래를 들려준다. 그 사이로 볕이 곱게 드리운다.

 


함안 장내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 내 자미정(紫薇亭)에 앉아 있으면 담 너머로 대나무들이 바람 장단에 맞춰 노래를 사각사각들려준다.

 

뒤편에 정원이 있다. 작은 연못이 있는데 물이 없다. 물이 차고 꽃 피는 계절이면 정원이 생기가 돌고 운치를 더할 모양새다.

 


함안 장내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 안채


정원을 나와 안채 사이를 거닐다 복정(鰒井) 앞에서 걸음을 세웠다. 이오의 현손인 이경성과 그의 부인 여주 이씨의 효행이 얽혀 있다. 우물 앞 안내문에 따르면 이경성은 노모를 모시기 위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부인은 지극정성으로 시어머니를 모시던 중 어느 날 전복회가 먹고 싶다는 시어머니 말에 우물 앞에서 기도를 올리자 우물에서 전복이 나와 드렸다고 한다. 6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물어도 물이 마르는 일이 없다고 한다.

 


함안 장내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 안채 옆에 있는 복정(鰒井)

 

우물 옆으로 사당이 있다. 다시금 돌아 나와 신발을 벗어 종택 마루에 서자 신발을 벗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듯한 기분이 든다. 주위의 풍광이 아늑하게 두 눈에 들어온다.

 


함안 장내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 안채 마당

 

종택을 나와 담장을 따라 주위를 걸었다. 전통과 현대가 기분 좋게 공존하는 모양새가 정겹다. 까치발을 하면 안이 들여다보일 만큼 낮은 돌담이 느린 걸음으로 오래오래 머물게 한다. 일상은 바삐 흘러가지만 여기는 시간마저 느릿느릿 다르게 흐른다. 정겨운 정취 속에 잠시 잊었던 내 안의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일상은 바삐 흘러가지만 함안 장내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는 시간마저 느릿느릿 다르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