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9. 2. 27. 06:30



 

시간이 흐르면 그날의 기억은 점점 잊혀갑니다. 그날의 외침도 가끔 잊기도 합니다. 그날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흔적, 흉터가 있습니다. 올해 부마항쟁 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지만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역사의 현장이 창원 마산합포구 바닷가에 있습니다.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안대로 220(신포동 147-6)가 그곳입니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김주열 열사

 

김주열(金朱烈19431960)

전라북도 남원(南原) 출생. 남원 금지중학(金池中學)을 졸업하고, 1960년 마산상고(馬山商高현 용마고)에 입학.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해방 불명 되었다. 411일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주검에 퍼렇게 이끼가 낀 상태로 발견되었다. 처참한 주검의 사진은 전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경악게 했다. 2항쟁으로 불타올라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부패한 독재자 이승만은 4.26일 하야 성명을 내고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다.

 

찾은 날은 하늘도 흐렸습니다. 미세먼지 탓에 하늘에 해가 떠 있어도 회색빛으로 우중충한 날이었습니다. 바다오 하늘도 잿빛이었습니다. 너머에 있는 마창대교도 빛을 잃었습니다.

 


창원 마산중앙부두에서 바라본 바다

 

바닷가에 주차한 차들 사이로 빈 곳이 나온다. 주차를 할 수 없도록 경계 봉이 박혀 있는 담장에는 노란 바탕에 산인 듯 바다인 듯 검붉게 일렁이는 사이로 사물놀이 하는 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벽화

 

벽화의 한가운데에는 맑은 물속에서 해맑은 젊은 학생이 검은 교복을 입고 오른손에는 최루탄을 막고 반갑게 왼손을 들어 인사를 건넵니다. 바로 김주열 열사입니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벽화에 그려진 김주열 열사

 

벽화 끝에는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점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315 숫자 아래 표지판에는 민주혁명의 횃불로 부활한 김주열 열사로 시작하는 안내문이 적혀 있습니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점 표지판

 

벽화 너머 열린 문을 들어서면 추모의 벽이 정면으로 마주하고 왼쪽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277호인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라는 선간판이 있습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277호인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안내표지판

 

먼저 활활 타오른 해를 닮은 둥근 원에 최루탄이 박혀 있고 ‘~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운동 관련 장소가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이곳이 처음이라는 글이 덧붙여 있습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277호인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안내표지판 위에는 활활 타오른 해를 닮은 둥근 원에 최루탄이 박혀 있다.

 

추모의 벽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습니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추모의 벽

 

열사의 약력을 중심으로 좌우에 열사를 기리는 시가 적힌 표지판이 있다. 3·15의거와 4·19혁명 민주 영령 186위의 사진이 촘촘히 새겨진 표지판이 함께한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추모의 벽에서 바라본 마산중앙부두 앞 바다

 

‘1960411/ 마산합포구 신포동 중앙부두//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그는 우리 앞에 와 역사가 되었다/ 처참하게 눈이 멀어/ 역사의 눈이 되었다// ~ ~! 지리산을 넘어 달려온/ 순결한 우리의 아들/ 자유의 아버지/ 그는 다시 이곳에서 부활하는 역사의 눈이다//’

 


처점한 모습올 발견된 김주열 열사 주검

 

<김주열, 그는 역사의 눈이다(이동재 작)>‘을 나지막하게 읊는데 심장이 꽝꽝 울립니다. 잠시 고개 숙여 예를 올리고 나오는데 들어온 입구 담벼락에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외침이 물결처럼 일렁입니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추모 공간 벽화

 

외침의 일렁 앞에는 눈에 최루탄이 박힌 열사가 보입니다. 그러나 맞은편 담벼락에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해맑은 열사가 이 바다를 바라봅니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추모 공간 벽화 속 김주열 열사

 

’~남원의 아들이면서 마산의 아들, 한반도의 아들아/ 한 어머니의 아들이면서 칠천만 가슴 속에서/ 섬진강 매화로도 피어나고/ 지리산 진달래로도 피어나고/ 언제나 현재형이면서 미래형으로/ 살아 있는 아들아//‘

는 복효근 시인의 <다시 너를 부른다>라는 추모 시처럼 언제나 현재형으로, 미래형으로 우리를 지켜봅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 인양지는 우리에게 오늘날 이 땅의 민주주의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님을 드러냅니다. 민주주의 과정 속의 흉터입니다. 고마운 흔적입니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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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님...
그 이름을 어찌 담담히 부를수 있으리요....
이제 민주주의는 남은자들의 책임이며 의무입니다....
오래도록 잊지않고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부디 마음 놓으시고 극락왕생 하옵소서....열사님
저역시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제가 사는 이곳은 부산이기에
열사님의 흔적을 찾아 갈수는 있지만
너무나 아픈 이름을 쉬이 부르지 못함과 마찬가지로
차마 그곳엘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ㅠ ㅠ
마음으로 함께하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