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9. 4. 1. 06:30



 


함안 칠북면 영동리 회화나무

 

겨우내 메말라 퍽퍽했던 가슴을 다시 촉촉하게 해줄 봄입니다. 어디로 가도 좋을 때입니다. 겨우내 묵은 찌꺼기를 버리고 오기 좋은 때이기도 합니다. 내 안의 묵은 찌꺼기를 토해내고 위안받기 위해 선비나무를 찾아 함안 칠북면 영동리 회화나무로 향했습니다.

 


함안 칠북면 영동리 회화나무

 

먼발치에서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도 모습이 고결합니다. 칠북면 소재지를 지나 영동 일반산업단지를 지나자 저만치에서 얼굴을 드러냅니다.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를 찾아온 이를 반기려는 지 ‘V’자 형태를 이루며 새들이 축하 비행을 하며 지난다.

 

찾아온 이를 반기려는 지 ‘V’자 형태를 이루며 새들이 축하 비행을 합니다.

 


함안 칠북면 영동마을 표지석 옆에는 큼지막한 천연기념물 제319호 함안 칠북면 영동리 회화나무안내판이 찾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영동마을 표지석 옆에는 큼지막한 천연기념물 제319호 함안 칠북면 영동리 회화나무안내판이 찾아가는 길을 안내합니다.

 


함안 칠북면 영동리 회화나무

 

개울을 가로지르는 영동교를 지나자 회화나무를 두 눈에 담을 수 없습니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 전체의 모습이 다 들어옵니다.

 


함안 칠북면 영동리 회화나무는 1482(성종 13) 성균관 훈도를 지낸 광주 안씨(廣州安氏) 안여거(安汝居)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심은 것으로 전한다.

 

수령 약 500년의 회화나무는 1482(성종 13) 성균관 훈도를 지낸 광주 안씨(廣州安氏) 안여거(安汝居)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심은 것으로 전합니다.

 


매년 음력 101일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 아래에서 동제를 지낸다.

 

마을을 지켜 주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 매년 음력 101일 나무 아래에서 동제(洞祭)를 지내 왔다고 합니다.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 앞에는 나무를 소개하는 안내판 옆으로 또 다른 안내판이 나란히 있는데 안여거의 후손인 회재 안종창(1865~1918)이 쓴 괴정기(槐亭記)에 관한 글이다.

 

나무를 소개하는 안내판 옆으로는 또 다른 안내판이 나란히 있는데 안여거의 후손인 회재 안종창(1865~1918)이 쓴 괴정기(槐亭記)에 관한 글입니다. 당시 마을 주민들의 생활상과 회화나무를 사랑하는 이유를 담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대나무와 달리 구불구불한 회화나무 가지가 구불구불 제멋대로라 꺾이지 못하는 선비의 기개를 상징한다며 좋아했다.

 

회화나무를 여기 사람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좋아했습니다. 특히 조선 시대 선비들이 더욱 아끼고 많이 심었습니다. 회화나무의 특징은 대나무와 달리 구불구불한 나뭇가지인데 구불구불 제멋대로라 꺾이지 못하는 선비의 기개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선비의 품위를 상징하는 까닭에 선비만 키울 수 있는 선비나무’, ‘학자나무였기 때문입니다.

 


선비나무, 학자수 불린 회화나무는 선비의 품위를 상징하는 까닭에 선비만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 나뭇가지에 앉아 쉬는 새.

 

조선 시대 정승이 되면 임금이 선물하는 나무가 회화나무였고 선비가 벼슬에 오를 때, 하직할 때 주고받은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회화나무는 한자로 괴화(槐花) 나무로 표기하는데 발음이 중국 발음과 비슷한 회화로 부르면서 회화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홰나무를 뜻하는 ''()자는 귀신과 나무를 합쳐서 만든 글자로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집 마당에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집 마당 회화나무를 보며 선비 정신을 다짐했을 겁니다.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 나뭇가지들이 서로 얽혀 있다.

 

선비를 닮고 싶은 마음에 한걸음 성큼 다가서자 나무에서 휴식 중이던 새들이 부산을 떱니다.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옮기더니 제가 한 걸음 더 다가서자 나무 곁을 떠나 근처 전깃줄 등으로 자리를 비켜줍니다.

 

높이 20m, 가슴 높이 둘레 5.82m, 뿌리 둘레 8.7m, 수관 폭 24m 정도라고 하는 나무는 마치 어르신이 지팡이를 짚듯 세월의 무게를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썩은 부분은 바르는 약으로 치료한 흔적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 수피

 

나무에 손을 얹고 지그시 눈을 감습니다. 지나는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고 지납니다. 나무 테크에 앉아 캔 커피를 마십니다. 달짝지근한 맛에 더해 나무가 주는 분위기가 녹아들어 더욱더 담곰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 나무의 옹이를 만집니다. 아파도 내색하지 않는 선비를 닮은 회화나무에게 저는 제 묵은 마음의 찌꺼기를 토해냅니다.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 옹이. 아파도 내색하지 않는 선비를 닮았다.

 

세월의 풍파는 이겨낸 나무는 드넓은 하늘 마음을 닮았습니다. 구불구불 유연하게 사방으로 뻗은 가지는 끝없이 토해내는 우리의 푸념을 받아줍니다.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 근처 정자

 

“~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들을 떨쳐 낸다. / 내 마음보다 훨씬 먼저 화답이라도 하듯이 / 햇살이 따스하게 그 온몸을 감싸 안는다 /나도 저 의젓한 회화나무처럼 /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제자리에 서 있고 싶다./ 바람이 아무리 흔들어 대도, 눈보라처쳐도 / 모든 어둠과 그림자를 안으로 쟁이며 / 오직 제자리에서 환한 아침을 맞고 싶다.”

 

이태수 시인의 환한 아침에 나오는 회화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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