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9. 12. 13. 05:56





그날의 함성을 되뇌는 창원읍민 만인운동비

 


창원 의창구 소답동 두럭공원

 

올해는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3월 전국에서는 그날의 함성을 되뇌는 다양한 행사와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주택가에 있는 의미 깊은 유적을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 있습니다. 창원 의창구 소답동 주택가에 있는 작은 두널공원 내 창원읍민 만인운동비(昌原邑民萬人運動碑)가 그렇습니다.

 


창원 의창구 소답동 두럭공원 내 한쪽에 창원읍민 만인운동비(昌原邑民萬人運動碑)가 있다.

 

창원향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습니다. 주택들이 모여 있는 모퉁이 사이로 있는 공원이라 예사로 넘기기 쉬운 곳이지만 이곳은 1919323일과 42일 창원 읍에서 열린 3·1독립만세운동을 기리는 기념비가 한쪽에 세워져 있습니다.

 


창원 두럭공원 아담해 한걸음에 다 둘러볼 정도다.

 

공원은 아담합니다. 한걸음에 다 둘러볼 정도입니다. 지압 보도를 깔아 운동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고 앞에는 두럭어린이공원이라는 팻말도 붙어 있습니다.

 


창원 두럭공원에 깔린 지압 보도

 

작지만 공원 한쪽에 심어진 메타세쿼이아가 하늘 높이 솟구쳐 있습니다. 사막 속 달곰한 휴식을 안겨주는 오아시스 같습니다.

 


창원 두럭공원

 

공원 한쪽에 직사각형의 화강석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습니다. 앞면에 창원읍민만인 운동비라는 비명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 만세운동과 건립 취지 등을 간략하게 새긴 창원읍민 만인운동비(昌原邑民萬人運動碑)입니다.

 


창원 두럭공원 내 있는 창원읍민 운동비와 안내판

 

사진7. 창원 두럭공원 내 창원읍민 운동비

운동비 앞 안내판은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는 가운데, 창원지역 주민인 김태순과 박화열 등은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1919323일 창원 장날을 기해 당시 220분경, 시장 한 가운데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자 시장에 모인 6,000~7,000여 명의 사람들이 호응하여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시위가 고조되어가자 일본 헌병 경찰이 진압에 나서 30여 명이 검거되었다. 이후 42일 장날을 기해 만세 시위운동이 다시 일어나자 주재소 헌병과 마산헌병분견소 헌병들은 무력으로 진압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라고 당시의 역사를 알려줍니다.

 


창원 두럭공원 내 창원읍민 운동비 화강석에 검은색 화강석 판을 붙인 단순한 형태다.

 

1985년에 세운 기념비는 화강석에 검은색 화강석 판을 붙인 단순한 형태입니다. 형태는 단순하고 보잘 것 없지만, 비문에 담긴 내용은 값지고 잊지 말아야 할 역사입니다.

 


창원 두럭공원 내 창원읍민 운동비 뒷면에 새겨진 그날의 함성

 


창원 두럭공원 내 창원읍민 운동비

 

“191931일 서울에서 터져 나온 우렁찬 만세의 함성은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 이곳 천주산 기슭 유서 깊은 창원 읍에도 진동했다. 자유는 강산의 어둠 속에서 눈을 떴고 독립은 겨레의 가슴 속에 별처럼 빛났다. 때는 기미년 323일과 42일 두 차례에 걸쳐 장날에 모인 수천 명의 애국 동포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 우리는 님들의 고귀한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높푸른 정신을 받들어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온 시민의 뜻을 모아 여기 이 비를 세운다.”

 


창원읍민 운동비가 있는 창원 소답동 우럭어린이공원

 

찬찬히 비문을 읽습니다.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날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창원 소답동 주택가 모퉁에 있는 아담한 두럭공원에는 1919년 그날의 함성을 기리는 창원읍민 운동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