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20. 2. 5. 07:11




공부 쉽게 하는 방법 찾아 조선 시대 학교에 가다-사천향교

 



사천향교

 

공부. 누구는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공부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학창시절의 아이들에게는 학교 공부는 힘겹고 짜증 나는 일상일 수 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자녀들에게 말하기 이전에 공부 쉽게 하는 방법을 찾아 조선 시대 학교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사천읍 내 주택가 근처에 있는 사천향교(泗川鄕校)를 찾았습니다.

 


사천향교 앞에 있는 인성교육원

 


사천향교 앞 인성교육원 뜨락에 세워진 공자 상

 

남향으로 산자락에 있는 향교 위로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햇살을 안내를 받으며 향교로 향하려는 데 걸음을 공자 동상 앞에서 멈췄습니다. 유학, 유교라고 하는 동양의 성인으로 존경받는 분을 잠시 올려다보았습니다. 선생께서 일생 말씀하신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라는 ()”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습니다.

 


사천향교

 

홍살문이 푸른 하늘로 날아갈 듯 빛나게 솟아 있습니다. 홍살문 지나자 마치 조선 시대 공부하는 학생이 된 듯합니다. 향교는 오늘날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국립학교입니다. 유교 사상을 근본으로 삼은 조선은 고을마다 하나의 향교(11)를 설립 공자의 유교 상을 가르쳤습니다. 최상위 국립대학은 성균관입니다. 서원은 지역 유림에 의해 건립된 사립 교육기관으로 성현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친 곳입니다.

 


사천향교 안내도

 

정면 3, 측면 1칸 규모의 솟을삼문인 외삼문(外三門) 옆으로 1421(세종 3)에 건립된 향교에 관한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45(인조 23) 현재의 자리로 옮겨 중건했는데 이후에도 몇 번의 중수를 거쳤다고 합니다.

 


사천향교 외삼문 옆에 작은 비석에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새겨져 있다.

 

안내판 옆으로 작은 비석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새겨져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인 사단(四端)입니다. 어짊과 의로움, 예의와 지혜. 유학의 고갱이가 압축되어 가슴 속으로 다가옵니다.

 


사천향교 풍화루

 

외삼문을 바로 왼쪽으로 담장에 기댄 정면 3, 측면 2칸 규모에 팔작지붕의 풍화루(風化樓)가 보입니다. 보통 풍화루가 외삼문을 겸하는 향교들과 다른 구조입니다.

 


사천향교 외삼문을 지나면 맨 가운데에 대성전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온다. 경사진 지형에서 건물을 배치하면서 대성전과 명륜당, 풍화루, 홍살문이 일직 선상에 이르는 구조에서 벗어난 구조다.

 

보통 강당인 명륜당을 가운데 두고 동재와 서재를 좌우에 둔 여느 향교와 배치가 다릅니다. 아마도 경사진 지형에서 건물을 배치하면서 대성전과 명륜당, 풍화루, 홍살문이 일직 선상에 이르는 구조에서 벗어난 모양입니다.

 


사천향교 명륜당

 


사천향교 치성재

 

곧장 치성재와 명륜당 가운데로 난 돌계단을 올라 사당인 대성전으로 향했습니다. 내삼문(內三門:대성문)이 닫혀 있습니다. 대성전 뜨락에서 민낯의 아름드리은행나무가 반깁니다. 문은 잠겨 있습니다. 까치발로 담장 너머를 바라보며 예를 올립니다.

 


사천향교 대성전 뜨락에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

 

담장 안 은행나무가 아쉬워하는 나에게 담장 너머로 황금빛 나뭇잎과 은행알들을 담장 너머로 보여줍니다. 농염하게 익어 담장 너머로 떨어진 가을 흔적이 햇볕에 샤워 중입니다.

 


사천향교 대성전으로 향하는 계단

 

명륜당 툇마루에 앉아 논어첫 구절을 떠올립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배우고 늘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기쁘지 않은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사천향교 대성전에서 바라본 향교와 읍내 전경

 

햇볕이 허허한 마음을 채워줍니다. 잠시 쉼표를 찍습니다. 몸과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사천향교에서 오래된 것에서 현재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