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20. 3. 9. 07:02




이 어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힘을 얻는 의령 곽재우 생가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忘憂堂 郭再祐, 1552~1617) 장군 생가

 

어수선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다가오는 총선 등으로 나라 안팎으로 바쁘게 흘러가는 때.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문득 영웅이 그립고 더욱더 보고 싶습니다. 위기에 구한 조선을 구한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忘憂堂 郭再祐, 1552~1617) 장군을 찾아 의령 유곡면 세간리 생가로 향했습니다.

 


의령 곽재우 생가 근처에 있는 현고수(懸鼓樹)

 

의령읍 내에서 신반, 대구 쪽으로 향하다 작은 하천(유곡천) 하나 건너자 맞은 편에서 우뚝 솟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반깁니다. 의병들 모집할 때 북을 내걸었다는 현고수(懸鼓樹)입니다. 전체 높이는 15m, 가슴 높이의 둘레는 7m 정인데 나이는 50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422일에 이 느티나무에 북을 매달아 놓고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을 시켰다는 유서 깊은 나무입니다. 세월의 흔적에 지지대를 의지하고 있지만 늠름한 기상이 당차 보입니다.

 


의령 곽재우 생가 안내도

 


의령 곽재우 생가에 있는 장군 동상.

 

현고수를 본 뒤 물러 나와 생가로 향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먼저 붉은 옷을 입고 하얀 말을 탄 장군의 동상이 보입니다. 주차장 한쪽에는 북을 울릴 수 있는 누각이 있습니다.

 


의령 곽재우 장군 생가 근처 공원에는 말 조형물을 비롯해 그네 등이 있어 온 가족 나들이 장소로 그만이다.

 


의령 곽재우 장군 생가 북을 맨단 누각

 

널따란 잔디 광장 주위에 말 조형물이 있어 말에 올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위에는 그네 등도 있어 온 가족 나들이로도 좋습니다.

 


의령 곽재우 장군 생가 주위에 있는 당시 장군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장군이 쓴 시를 적은 팻말들이 있다.

 

동상 앞 장군이 쓴 시를 적은 팻말들이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시 한 수를 천천히 읊조리며 장군의 심정을 헤아립니다.

 


의령 곽재우 장군 생가 앞 <세간리 은행나무>

 

생가로 향하던 걸음을 다시금 뒷걸음칩니다. 커다란 은행나무를 한눈에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 높이는 21m, 가슴 높이의 둘레는 10.3m로 하늘 향해 힘껏 서 있습니다. 은행나무 곁에 손을 얹고 잠시 눈을 감습니다. 평온해집니다.

 


의령 곽재우 장군 생가

 

나무를 지나 생가로 걸음을 옮깁니다. 복원한 생가는 장군의 외가입니다.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처가살이가 당연했고 남녀 구분 없이 조상의 제사를 돌아가며 지내고 재산을 분배받는 때라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의령 곽재우 장군 생가 사랑채 마루에서 바라본 풍경

 

솟을대문을 지나 사랑채에 향했습니다. 볕이 따사롭게 드리운 툇마루에 앉아 담 너머를 봅니다. 따뜻한 기운이 밀려옵니다. 평화롭습니다. 이 평화를 위해 장군과 함께 불의에 저항했던 이름 없는 조선 민중의 기개를 엿봅니다.

 


의령 곽재우 장군 생가

 

의병박물관에서는 의병을 우리 민족 특유의 애국, 애족 정신으로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어나 외세에 대항한 민군(民軍)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의령 곽재우 장군 생가 안채

 


의령 곽재우 장군 안채 뒤편 푸르른 대나무들.

 

사랑채를 나와 안채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장독대에 드리운 햇살이 곱습니다. 안채 뒤편 대나무 사이로 전해져오는 사각사각소리가 정겹습니다.

 


의령 곽재우 장군 생가 안채 마루에서 바라본 풍경.

 

안채 대청마루에 앉아 너머 은행나무를 봅니다. 은행나무를 휘휘 감아 돌아오는 봄바람이 건네는 인사가 정겹습니다.

 


의령 곽재우 장군 생가에서 어수선한 요즘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얻는다.

 

코로나 19를 비롯해 어수선한 요즘의 세상과 다른 평온이 가득한 풍경이 두 눈 가득 들어와 가슴에 꾹꾹 담깁니다. 이 어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힘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