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해찬솔 2011. 5. 2. 09:09

“저희들은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돌을 던져 저희를 쫓아내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꿈같은 나라에서 1961년 4월24일 천사가 나타나 저희를 인간으로 대해주었습니다. 손을 잡아주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며, 용기를 주셨던 분. 그분이 바로 엠마 원장님이었습니다.”

 

한센인들과 반백년을 함께한 엠마 프라이징거 원장님의 팔순잔치가 4월 29일 있었습니다. 한겨레신문에 관련기사가 게재되었네요.
한국의 테레사와 같은 분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아참 그리고 한센병은 완치가 가능한 피부병입니다.

또한 절대 유전되지 않는 병입니다.

한겨레신문 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475756.html

 

팔순 맞은 ‘한센인들의 엄마’
엠마 프라이징거 원장
“저희들은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돌을 던져 저희를 쫓아내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꿈같은 나라에서 1961년 4월24일 천사가 나타나 저희를 인간으로 대해주었습니다. 손을 잡아주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며, 용기를 주셨던 분. 그분이 바로 엠마 원장님이었습니다.”

‘한센인의 엄마’ 엠마 프라이징거(79·사진) 릴리회 명예회장의 한국 봉사 50년 겸 팔순 기념미사가 지난 30일 경북 칠곡군 한티순교성지 피정의 집에서 천주교 대구대교구장인 조환길 대주교의 집전으로 열렸다.

소록도 등 전국에서 모인 900여명의 한센인들은 옥색 치마에 파란색 저고리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프라이징거 원장을 ‘엄마’라고 부르며, 100살 넘도록 건강하게 살며 자신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프라이징거 원장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날 주한 대사를 보내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1932년 오스트리아 엡스 티롤에서 태어난 프라이징거 원장은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4년간 간호사로 일했다. 한센병 환자를 돌보다 자신도 한센병에 걸려 선종한 다미안 신부의 전기를 읽고 감명을 받은 그는 그 뒤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애초 그는 에티오피아로 가려 했으나,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했던 한국인 신부와의 인연으로 방향을 바꿨다. 61년, 29살 때였다.

애초 2년간 한국에서 봉사할 예정이었던 그는 경북 고령 은양원, 의성 신락원 등 한센인 마을에서 어느덧 반백년 세월을 보냈다. 고국을 떠나올 때 결혼을 약속한 연인도 있었지만, 결국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며 돌봐줄 사람은 내가 아니어도 되지만, 한국의 한센인들은 내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에 그들을 두고 돌아갈 수 없었어요.”

65년 오스트리아 가톨릭부녀회의 지원을 받아 칠곡에 가톨릭피부과병원도 연 그는 원장 겸 간호사로 일했다. 70년에는 한센병 환자를 후원하는 릴리회 설립에 참여해, 지금까지 여기에 몸담고 있다. 한센인들은 ‘엠마 엄마’에게 ‘복이 많은 여성’이라는 뜻의 ‘복녀’라는 한국 이름도 지어줬다.

프라이징거 원장은 기념미사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인데 과분한 축하를 받았다”며 “누구나 자기 자신을 위해 살면 행복은 항상 자기 밖에 있지만, 남을 위해 살다 보면 행복은 어느새 자기 안에 있게 된다”고 말했다.

 

출처 : 한겨레신문 5월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