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선생 발자취

해찬솔 2020. 7. 29. 07:48

다시 남명이다4-함양 남계서원과 거창 포연대를 찾아서

 

남명 발자취를 찾아 나선 길,
여름의 뜨거운 열정만큼이나 시원한 풍경을 만나다

코로나19에 사라졌던 일상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코로나19 덕분에 일상의 아름다움이 무엇이었던지 얼마나 소중했던지 일깨우는 요즘이다. 모두 힘든 시기이다. 길어지는 여름, 일상 속에서 번잡한 마음을 벗어나고 싶어 남명 조식의 발자취를 길라잡이 삼아 시원한 계곡을 찾아 나섰다.

 

소동파의 적벽가를 떠올리는 적벽산

진주를 떠나 산청에 이르면 신안면이라는 행정지역명보다 원지라는 이름이 더 친근한 동네가 나온다. 단성은 물론이고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지만 경호강과 양천강이 한 몸을 이뤄 남강으로 흘러간다. 경호강이 양천강과 한 몸을 이루기 전에 야트막한 벼랑인 적벽산이 나온다. 경호강 강둑을 거닐면 아름다운 적벽산 풍광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중국 시인 소동파처럼 적벽부 뱃놀이를 모방해 강에 배를 띄우고 적벽산의 경치를 즐기다 파직당한 사또가 있었다는 전설처럼 고요하고 아늑한 풍경을 두 눈에 꾹꾹 눌러 담았다. 지금은 벼랑에서 떨어지는 바위 등을 방지하기 위한 피암(避巖)터널 공사가 한창이라 그때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배운 바를 실천에 옮긴 선비를 만나다- 남계서원

 

적벽산과 이어진 중절모를 닮은 백마산을 지나면 산청 읍내가 나온다. 산청읍과 생초면을 지나면 함양군 수동면이다. 수동면 소재지를 살짝 벗어나 안의면 쪽으로 내달리다 차를 멈추고 시동을 껐다. 멈춘 곳은 1552(명종 7)에 창건한 남계서원(灆溪書院)으로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을 모셨다. 1566(명종 21)'남계(灆溪)'라는 이름으로 사액 됐는데 '남계'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남계서원은 풍기 소수서원, 해주 문헌서원에 이어 창건된 아주 오래된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서원 중 하나. 서원 홍살문 앞에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찾았을 때는 한시 백일장 준비로 그늘막 설치 등으로 분주했다.

 

외삼문 누각인 풍영루(風詠樓)를 지나면 강당인 명성당(明誠堂)을 중심으로 동재인 양정재(養正齋)와 서재인 보인재(輔仁齋)가 있다. 공부하여 현명해지면 성실해진다는 뜻을 가진 명성당은 전면 네 칸 규모로 남계(藍溪)’서원(書院)’을 따로 두 개의 편액을 걸었다. 서재 앞에는 애련헌(愛蓮軒), 영매헌(咏梅軒)이라고 이름 붙인 누마루가 있다. 누마루 앞에는 각각 네모진 작은 연못이 있다.

 

강당을 돌아 곧장 사당으로 향했다. 좁다란 계단을 올라 사당에 이르면 아름드리 배롱나무 두 그루가 내삼문 문 앞에서 분홍빛으로 환하게 반긴다. 사당에는 일두를 주벽(主壁)으로 하고, 좌우에 정온(鄭蘊, 15691641)과 강익(姜翼, 15231567) 위패가 각각 모셔져 있다. 일두 정여창은 배운 것을 실천하는 지행일치(知行一致)를 실현한 선비로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갑자사화(甲子士禍)에 다시 연루되어 부관참시 당했다가 중종 때 신원 회복되고 광해군 2(1610) 문묘에 배향되었다. 사당 앞에서 잠시 예를 올리고 내려와 주위를 천천히 거닐었다.

 

더러움 속에서 피어나지만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네모진 연못에는 노랗고 붉고 하얀 수련들이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은은하게 향내를 뿜어내고 있다. 불교에서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연꽃을 조선 선비들도 사랑했다. 선비들은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周敦頤1017~ 1073)가 말한 더러움 속에서 피어나지만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꽃처럼 살고자 했다.

 

남명도 연꽃을 닮고자 했다. ‘꽃봉오리 늘씬하고 푸른 잎 연못에 가득한데/ 덕스런 향기를 누가 이처럼 피어나게 했는가? / 보게나! 아무 말 없이 뻘 속에 있을지라도/ 해바라기 해 따라 빛나는 정도만은 아니라네. - ‘연꽃을 읊다(詠蓮)<경상대학교 남명학 연구소 <남명집> 중에서>’

 

대한민국 역사의 아픈 흉터 거창사건추모공원

 

남계서원을 나와 다시금 지나온 길로 향했다. 수동면 소재지를 막 벗어나 거창군 남상면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어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에 이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신원면으로 갈라지는 길목이다. 신원면으로 가는 길은 돼지 곱창처럼 구불구불하다. 길가 표지석이 눈길과 발길을 이끈다. 거창사건 합동 진상규명 조사단 방해 장소라는 안내표지석이다. 거창사건 은폐를 위해 국군이 공비로 위장, 조사 나온 국회의원들에게 총격을 가해 조사도 모사고 되돌아가는 만행을 저지른 곳이다.

 

산과 산으로 둘러싸인 신원면 소재지에 이르자 벽면 가득 하얀 국화 세 송이를 그린 벽화가 눈길을 끈다. 면 소재지를 지나면 거창사건 추모공원이 나온다. 거창사건은 1951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 제11사단 소속 군인들이 마을 주민을 집단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거창사건추모공원 내 영령들을 하늘로 인도한다는 천유문(天羑門)을 지나면 18m 위령탑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곧장 향했다. 위령탑 왼편에는 무릎 꿇은 군인들 조형물과 오른편에는 희생당한 양민들의 상징물이 있다. 과연 그들은 만행을 반성하고 사과했는지 묻고 싶다.

위령탑 뒤편에는 탑 건립에 부치는 글이 새겨져 있다. 기억하라, 여기 이곳은, 칼바람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 거창사건의 현장이다.”라고 시작한 글은 “~하늘이시여 용서와 화해를 내리소서. 길손들은 여기 이곳을 그냥 무심코 지나지 마시라. 무언가 생각들을 좀 해 보시라.”라고 끝맺는다. 공원 내 묘역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때 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무고한 신원면민 719명의 넋이 묻혀 있다. 내 머리 위로 태양 열기는 그날을 잊지 말라 뜨겁게 죽비처럼 내리쬔다. ‘()’를 알고 제대로 실천했다면 감히 국민을 향해 총질을 할 수 있었을까?

 

몸을 씻고 마음을 씻다 거창 포연대

 

추모공원을 나와 합천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원한 물소리가 조금 전의 암울하고 무거웠던 마음을 잠시 잊게 한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자 시원하고 맑은 기운이 와락 안긴다. 경쾌한 물소리에 시동을 껐다. 하얀 물줄기가 콸콸 쏟아져 흐르는 신선폭포에 이르자 튀는 물방울들이 뺨을 어루만진다. 전설에 따르면 매년 정월 대보름 자정이면 신선이 나타나 목욕하고 쉬어간다는 신선폭포 덕분에 내 몸의 묵은 찌꺼기도 한꺼번에 씻기는 듯 개운하다.

신선폭포를 지나 2분여 정도 더 내달리면 야트막한 언덕인 포연대(鋪淵臺)가 나온다. 포연대에는 소진정(遡眞亭)이 세워져 있다. 우천 도재균이 조상을 기려 1920년에 절벽 위에 세운 정자다. 정자에서는 감악산에서 흘러나온 푸른 계곡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앞을 가린다. 눈을 감고 두 귀를 열면 시원한 물과 함께 계곡의 싱그러움이 펼쳐진다. 덩달아 속세에 찌든 번뇌가 사라진다.

소진정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자 하늘을 찌를 듯한 빗돌이 서 있다. 빗돌에는 남명이 포연에 와서 지은 시 냇물에서 목욕하고서(浴川)’가 새겨져 있다. 남명이 49세 때 제자들과 거창 감악산을 유람하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곳에서 목욕했다고 한다. ‘사십 년 동안 더렵혀져온 몸/ 천 섬 되는 맑은 못에 싹 씻어버린다. / 오장 속에서 만약 티끌이 생긴다면 / 지금 당장 배 쪼개 흐르는 물에 부쳐 보내리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에서 옮긴 <남명집> 중에서>’

소름이 돋는다. 마친 차가운 물세례를 받은 듯 닭살이 솟구친다. 추석이 지난 뒤라 물은 차가웠던 당시, 남명은 몸을 씻으며 마음도 씻었다. 남명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길에서 여름의 뜨거운 열정만큼이나 시원한 풍경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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