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해찬솔 2021. 3. 4. 05:16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진주박물관 특별전 <쇄미록>

 

“좋은 시절에 평소 서로 어울려 젊은이와 어른이 한데 모여 놀면서 술에 취해 떠들던 일을 이제는 다시 하지 못할 것이다.

매번 이것을 생각하면 어찌 슬프고 안타깝지 않겠는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나타낸 말이 아니다. 꿈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임진왜란 때 쓴 오희문의 일기 <쇄미록> 15931115일 내용 일부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 2021년 8월 15일까지 특별전시하는 <오희문의 난중일기 쇄미록>을 봄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31일 찾았다.

 

임진왜란 당시 54세였던 오희문은 연안 이씨 집안의 아내와 43녀의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가족은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 임천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큰아들이 강원도 평강현감으로 부임하여 옮겼다. 전쟁이 끝나 유랑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서 93개월간의 일기 기록도 끝났다.

 

박물관 기획전시실을 들어서면 먼저 오희문 일가에 관한 안내가 먼저 발걸음을 붙잡는다. 초상화와 묘지명, 해주 오씨 직계도 등을 통해 집안 소개를 거쳐 본격적으로 오희문의 일기를 통해 16세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전시다.

오희문의 후순들의 모습을 종합하여 복원한 오희문의 초상에서 고단한 시간을 보낸 이의 노고가 깃들어 있다.

 

한양-장수-충주-임천-평강-한양. 9년에 이르는 시간 속에 전쟁 속에 겪은 개인의 회노애락이 일기 속에 담겨 있다.

 

<임진왜란, 그 고난의 기록>이라는 영상물은 가시나무를 배경으로 전쟁 중 겪은 고난을 드러낸다.

가시나무 덤불을 지나 본격적으로 전시실로 다가서면 임진왜란을 기록한 <징비록>, <금계일기>, <간양록> 등을 만난다.

 

당시의 기록을 지나면 “<쇄미록>은 왜 쇄미록인가?” 을 시작해 심층분석한 <쇄미록>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먼저 쇄미록의 쇄미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떠돌아다니며 쓴 기록이라는 중국 <시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오희문이 당시의 처지를 표현했다.

 

93개월간의 주요 일정을 지나면 숫자로 보는 쇄미록이 나온다. 쇄미록은 3,368일의 기록일 수와 함께 519,973자로 적혀 있다.

당시 말 1마리가 닭 33마리, 50, 소금 500말에 이른다는 물품 가격 비교는 오늘날 물가를 떠올려보게 한다.

 

전쟁 중에도 죽음과 탄생은 교차했다. 기록 속에 등장하는 죽음 대부분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했지만, 대기근으로 굶주린 이들도 많다. 이런 와중에도 새 생명은 태어났다. 오희문의 손자들이 태어난 셈이다.

 

임진왜란, 그 고난의 기록은 처참하기 이럴 바 없다. 더구나 양반의 신분으로 노비를 거느린 오희문이 이 정도였다면 조선 민중의 처지는 말해 무얼 하겠는가.

 

그림으로 보는 <쇄미록>은 글자가 그림으로 튀어나와 상상의 나래를 돕는다.

1601227일 다시 집으로 돌아온 오희문은 종이도 다 되어 그만 쓰기로 한다며 일기를 마무리했다.

 

4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 사람의 일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늘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끝으로 오희문의 그날은 일기 속 주요 장면을 파노라마 영상으로 담아 펼쳐 보인다.

 

파노라마 영상을 끝으로 전시장을 나서게 된다.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오늘은 어떻게 기록될까요?” 묻는 마지막 전시물의 글귀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도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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