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21. 8. 28. 11:28

그날의 함성이 들려오는 의병박물관

 

‘의무병’이 아니라 ‘의병’입니다!!!

 

의병, 의무병 아닌가요?”

농담이 아닙니다. 몇 해 전 20대에게 들은 말입니다. 의병(義兵)옛날에 나라를 지키려고 백성들이 스스로 일으킨 군대(보리 국어사전)’를 뜻합니다. 민중 스스로 외적에 대항해 싸운 구국 민병인 셈입니다. 동북아 국제전쟁(임진왜란)과 구한말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국권 상실 전후의 의병 활동이 가장 활발했습니다. 의병의 고장, 전쟁 당시 전국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의령에 의병을 알기 쉽게 기록한 의병박물관이 있습니다.

남해고속도로 의령군북 나들목을 빠져나와 의령으로 들어서려면 남강을 건너야 합니다. 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가면 맞은 편에서 의령 관문을 상징하는 문과 너머로 우뚝 솟은 탑 위에 백마 탄 붉은 옷의 장군상을 마주합니다.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 동상입니다. 1592년 음력 413, 동북아 국제전쟁이 발발하고 채 열흘이 지나지 않은 422일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忘憂堂 郭再祐, 1552~1617) 장군은 먼저 개인재산을 털어 군비를 마련하고 사노비 10여 명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바다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육지에는 곽재우 장군과 의병이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한 셈입니다.

 

반경 8km 이내에는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는 전설 품은 솥바위

오른편 야트막한 언덕 위로 정암루(鼎巖樓)가 있고 옛 정암교 아래에는 삼각형 달팽이가 기어가는 형상의 강에서 솟은 바위가 보입니다. 바위의 형상이 다리 달린 솥()을 닮아 정암(鼎巖)이라 불립니다. 물에 잠겨 있는 바위 부위가 솥의 발처럼 3개의 발이 달려 있습니다. 정암바위 또는 솥바위라 불리는 바위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반경 8km 이내에는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삼성과 엘지, 조흥 그룹 창업주인 이병철구인회조홍제가 이 바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출생해 사람들의 믿음이 더욱더 굳건해져 전해옵니다.

 

이곳은 정암진(鼎巖津)이라는 나루터였습니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이 이끄는 의병들이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진격하던 일본군을 섬멸한 정암진 전투가 벌어진 곳입니다. 다리를 건너 오른편에 차를 세우고 솥바위와 관문공원을 둘러보면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피땀을 흘린 선조들의 넋을 가슴에 담을 수 있습니다.

기분 좋게 주위를 거닐고 다시금 차를 몰아 읍내로 향합니다. 의령천을 따라 가다 보면 27m 높이 의병탑이 보입니다. 배롱나무들이 진분홍빛으로 반기는 근처에 차를 세웠습니다. 횃불을 상징하는 의병탑 기둥에는 18개의 둥근 고리가 있습니다. 홍의장군 곽재우와 휘하 장수 17명을 상징합니다. 넋을 모신 충익사(忠翼祠)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름드리나무가 가득한, 작은 수목원 같은 충익사

 

충익사 주위는 작은 수목원 같습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많습니다. 높이 8.5m, 둘레는 3m인 충익사 모과나무 나이는 500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밖에도 200년 넘은 나무들이 많습니다. 뽕나무며 모과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나무들이 잠시 숲속에라도 온양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극락세계를 염원한 상여 모양의 충의각(忠義閣)가 보입니다.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우리나라 전통 목조건물입니다. 1910년 만들어진 다포팔작식 목조건물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17장수 등 18 장군의 이름 등을 기록한 명판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충의각을 지나면 충익사가 나오지만, 코로나19로 기념관과 함께 닫혀 있습니다.

 

가야 전사가 시간을 거슬러 박차고 나와 우리에게 가야시대로 이끌어

 

기념관 뒤로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의병박물관과 이어져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관문공원에서 보았던 백마 위에 붉은 옷을 입은 홍의장군 곽재우 조형물이 반깁니다. 조형물 뒤편으로 뜻을 모아 의병을 일으킬 당시를 묘사한 창의도(倡義圖)’가 에워싸고 있습니다.

먼저 왼쪽 고고 역사실로 들어갔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의령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경산리 2호분에서 출토한 말갖춤 복원 모형은 잠시 우리에게 시간을 거슬러 박차고 나와 가야시대로 이끕니다.

 

복원 모형에서 벗어나면 걸음과 눈길이 다시금 머무는 곳이 있습니다. 의령지역에 출토된 국보와 보물인 수레바퀴 모양 토기와 연가 칠 년이 새겨진 부처, 보리사지 금동여래입상이 한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물론 진품은 아니고 복제품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기보다는 출토된 의령에 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맞은편에는 의령지역의 인물로 악사 우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륵의 출생지를 둘러싸고 여러 지자체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우륵이 왜 의령 사람인지를 찬찬히 설명합니다. 전시실 끄트머리에 이르면 한지(韓紙)의 고장 의령을 알려주는 전시물과 함께 독립운동 투사 백산 안희제 선생의 유품들이 걸음을 붙잡습니다.

 

“임진왜란이란?”

 

맞은편 의병유물전시실로 들어서자 의병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임진왜란이란?” 물음에서 시작하는 전시실은 왜란의 원인과 전개 과정 등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라 불렀던 동북아 국제전쟁을 일본에서는 분로쿠게이초노에키文祿慶長문록경장의 역), 중국에서는 항왜원조(抗倭援朝)로 달리 부르며 당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곽재우 장군을 도와 일본군과 싸운 18명의 장군 이름들이 징검다리처럼 벽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름 너머로 무명씨로 이들과 함께 싸운 의병들이 보이는 듯합니다.

 

전시실에서는 의병이란 우리 민족 특유의 애국, 애족 정신으로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어나 외세에 대항한 민군(民軍)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전시실 가운데에 홍의지기(弘義之氣)라는 전시 공간이 있습니다. 의를 부르는 붉은 북소리라는 입체 영상실로 향했습니다. 입체 파노라마 영상물을 시청하고 나와 정암진 전투를 재현한 전시물에서 잠시 그날의 함성을 듣습니다.

전시실을 끄트머리에는 전쟁 당시의 조선, , 일본 3국 국력 비교표가 나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둘러싼 한··일의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풍문으로 들었소, 이건희 닮은 중교리 석불좌상

 

박물관을 나오자 뜨락에 있는 무심한 듯 펼쳐진 돌들이 보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무덤이었던 고인돌입니다. 돌이 돌로 보이지 않는 유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중교리 정곡초등학교 뜨락에 있다가 옮겨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호인 중교리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입니다. 연꽃잎이 표현된 지름 60cm가량의 연화대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석조여래좌상이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닮았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오히려 마치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듯이 석불은 여느 이웃 할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어디를 향해 걸어도 넉넉하고 아늑한 풍경

넉넉한 그늘과 시원한 풍경이 걸음을 이끕니다. 주위는 평화롭습니다. 박물관을 에워싼 남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가 보입니다. 주위는 온통 진녹색 물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 푸릅니다. 숲속으로 들어가도 좋고 근처 구름다리 쪽으로 산책해도 좋습니다. 어디를 향해 걸어도 보약 한 첩을 마신 듯 넉넉하고 아늑한 풍경이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아 경남도민일보에 2021827일자에 실렸습니다.

 

경남도민일보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70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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