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21. 12. 28. 06:12

유치환이 편지 5천 통 보낸 곳, 통영중앙동우체국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이다. / 오늘도 나는 / 에머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1908~1967)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처럼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 몰라도 사랑했으므로 우리는 진정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행복을 찾아 통영 도심을 걸었습니다.

통영은 유치환을 비롯해 김상옥, 김춘수, 박경리와 같은 많은 예술가의 흔적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통영 도심 앞 통영중앙동우체국은 유치환 시인이 5천여 통의 편지를 보낸 곳입니다.

 

도심의 번잡함은 잠시 내려놓고 길가 모퉁이에 작은 쉼터에서 숨을 골랐습니다. 우체국으로 향하는 일방통행 입구입니다. 오가는 시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있는 쉼터에는 청마 흉상이 있습니다. 옆으로 작은 시비<향수>가 함께합니다.

 

나는 영락한 고독의 가마귀/ 창랑히 설한의 거리를 가도/ 심사는 머언 고향의/ 푸른 하늘 새빨깐 동백에 지치었어라//~희망은 떨어진 포켓트로 흘러가고 / 내 흑노 같은 병들어 / 이향의 치운 가로수 밑에 죽지 않으려나니 / 오오 저녁 산새처럼 찾아갈 고향길은 어디메뇨//”

 

덕분에 일상에 찌든 몸과 마음은 시심(詩心)으로 가득합니다.

 

일방통행 길을 따라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가면 중앙동우체국이 나옵니다.

정문 계단 옆에는 빨간 우체통과 함께 유치환의 <행복> 시비가 있습니다. 시인은 지인들에게 무려 5천여 통의 편지를 이곳 중앙동우체국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행복>이라는 시 역시 청마가 쓴 5천 통이 넘는 편지 중 하나입니다. 연인 정운 이영도(1916~1976)를 향한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이영도를 처음 만날 당시, 유치환은 38세로 통영여중 국어 교사였습니다. 이영도는 21세에 남편과 사별한 뒤 딸 하나를 키우며 통영으로 시집온 언니 집에 머물며 통영여중 가사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유치환은 장년에 이영도를 만나 20여 년 동안 식지 않는 뜨거운 사랑을 나눴습니다. 육체적인 사랑이 아닌 순수하고 정신적인 연애를 뜻하는 플라토닉(관념적) 사랑이었다고 합니다. 유치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을 거둘 때까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눴던 것 같습니다.

 

한때 통영중앙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유치환의 친일 논란으로 무산되었습니다. 만주에서 발간된 친일 성향의 한국어 일간 신문인 만선일보(滿鮮日報) 194226일자에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제목으로 실린 유치환의 산문에 잘 드러나기도 합니다.

 

'오늘 대동아전(大東亞戰)의 의의와 제국(帝國)의 지위는 일즉 역사의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비류없이 위대한 것일 겝니다. 이러한 의미로운 오늘 황국신민(皇國臣民)된 우리는(중략)... 오늘 혁혁(赫赫)한 일본의 지도적(指導的) 지반(地盤) 우에다 바비론 이상의 현란한 문화를 건설하여야 할 것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지어진 커다란 사명이 아닐 수 업습니다.'

 

유치환이 살아온 시인의 삶을 단순히 한 단면만 볼 수는 없습니다. 아름다운 시 너머의 친일 성향을 분명 인지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중앙동우체국에서 흘러나옵니다.

 

사랑 이야기에서 벗어나 북쪽으로 몇 걸음을 더 옮기면 삼도수군통제영이 나옵니다. 탁 트인 풍경이 가을을 물씬 느끼게 합니다.

또한 이곳에 공영유료주차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앙동우체국 근처는 주차하기 어렵습니다. 이곳에 차를 세우고 가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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