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해찬솔 2012. 9. 21. 09:03

 

 

경남 진주 <노리터>에서 뜻이 맞는 분들과 한달에 한번 진주지역역사공부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9월20일은 <진주농민항쟁>에 관해 공부하는 시간이었는데 사정이 생겨 참석을 못했습니다. 교재<1862년 진주농민항쟁>(지식산업사 출판사)를 읽으면서 그리고 지난 8월30일 KBS역사스페셜 <모두가 난을 생각한 지 오래다>를 시청하면서 생긴 궁금증을 물어보고 의견을 구하고  싶었는데...

네가지 물음에 아시는 분 또는 의견을 구합니다.

 

참고로  진주농민항쟁은  아래와 같습니다.

 

진주농민항쟁 1년 전인 1861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 백낙신이 진주로 부임한다. 그는 여러차례 비리를 저질러 파면을 당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수십년간 지속된 가혹한 수탈로 농민들의 고통과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백낙신의 가혹한 통치와 수탈은 진주농민항쟁의 도화선이 된다. 농민들은 합법적 민원 절차이 의송 등을 통해 조정에 수차례 호소했지만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1862년 2월18일(음력)무장봉기에 나선다

조선의 지배층은 민란을 수습하기 위해 삼정(군정,전정,환곡)운영의 개혁안을 담은 '삼정이정절목'을 내놓는다. 이 개혁안은 1894년 갑오개혁 때에야 일부 반영돼 봉건질서를 깨고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는 구실을 하게 된다. 당시 주모자들은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 한겨례신문 2012년8월30일자 -

 



■ 1862년 진주, 항쟁의 불길이 타오르다


▲ 19세기 진주 지도 ▲ 1862년 당시, 농민항쟁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삼남지역

(사진출처 KBS역사스페셜http://www.kbs.co.kr/1tv/sisa/historyspecial/view/preview/index.html)

 

1. 왜 진주에서 항쟁이 일어났느냐?

   (교재에서 말한 물산이 풍부하고 반 체체의 인사들이 모인 지리산이 인접한 까닭과 남명조식의 실천유학 등이 이유일까요?)
 

2. 주모자인 유계춘 등은 '효수(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는 형벌)'로 생을 달리했는데 항쟁이란 곧 반역으로 멸문지화는 둘째치고 자신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나섰을까요?

 

 3. 항쟁을 준비하면서 초군(나무하는 사람) 등을 조직적으로 움직였는데 왜 농민들은 쉽게 해산을 했을까요? 해산뒤에 분명 보복이 있을거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4. 제가 배울떄는 <진주민란>이라고 배웠는데 요즘은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는지 궁금합니다.
 

어제 꼭 의견을 구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을 담아 여기에 질문을 올립니다.

개콘의 네가지처럼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여기 저의 <진주농민항쟁>에 관한 네가지 질문에 여러분의 의견을 답글로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