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3. 3. 25. 06:30

3월16일은 햇살에 샤워하듯 걷기 좋은 날이었다. 지리산둘레길 중 경남 하동군 서당마을에서 지리산둘레길 하동센터까지 7km가량을 걸었다. 비교적 짧은 거리라 무난하게 둘러보고 오지 않을까 싶었다. 진주환경운동연합에서 <초록걸음>이라는 둘레길 모니터링단을 모집할 때도 모니터링단보다는 단지 쉽게 걷기 좋은 코스를 잡아주면 따라나설 참이었다. 경남 진주 공설운동장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서당마을 회관앞에 사람들을 내려놓자 경남 각지에서 온 이들은 봄 햇살에 코를 벌렁거리며 한껏 들이마셨다. 이 싱그러운 봄의 기운을.

 

 

지리산둘레길을 나선 이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릿느릿 자연을 구경하고 '빨리빨리'에 주위를 돌려볼 겨를도 없이 내달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을회관에서 내려 둘레길을 나서자 마자 400여 년의 나무를 만났다. 하얀 쌀밥을 닮은 <이팝나무>다. 모두들 나무 주위에 모여 숲샘 최세현 진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의 나무에 관한 설명에 귀를 쫑긋세운다. 숲샘이라는 멋진 별칭을 가진 최세현 의장은 이팝나무 아래에서 '쉴 休'로  사람과 나무의 관계를 설명했다. 나무를 만나고 숲을 만나면 평안해진다. 이번 지리산둘레길도 쉬는 여유가 묻어나겠지 싶었다. 문득 <이밥에 소고기국>떠오른다. 당시에는 굶기를 애사로 하든 때라 쌀밥에 소고기국을 더할 수 없는 먹을 거리였겠지. 좀더 봄이 익어가면 들에 모심을 때즈음이면 이팝나무가 쌀농사 풍년을 기원하며 흐드러지게 하얀 이밥꽃을 피우겠지.

 

모두들 걷는다. 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도 1등을 쫒을 이유도 굳이 쫓아갈 까닭도 없다. 끼리끼리 봄 들판을 안으며 걷는다. 걸으며 이야기도 한 줌, 햇살도 한 줌.

 

 

마침 밭에 뿌릴 비료를 지게에 짊어지고 가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삶의 무게가 더해진 지게에 풍년농사의 바람도 실려있는 듯하다. 지금은 왠만한 곳은 모두 시멘트로 포장되어 흙을 묻히기 어렵다. 그래도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먹거리는 흙에 뿌리를 내리고 커가기에 장화 신은 할아버지의 등 뒤로 햇살이 따라간다.

 

 

해바라기 마냥 마을 이정표 앞에서 낯선 무리의 행렬을 바라보는 할머니. 연세를 여쭈었더니 "셀 수도 없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그저 "어여 따라가보소"하며 일행에서 뒤처진 나를 먼저 걱정하신다.

 

 

사람들은 긴 뱀처럼 길을 따라 미끄러지듯 걸어갔다.  사진 찍느라 뒤처졌던 나도 걸음을 재촉했다. 근데 "킥킥킥,하하하, 호호호,히히히" 하며 웃는 소리가 바람에 묻어난다. 광대나물꽃이라 불리는 '코딱지꽃' 이름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웃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코딱지가 얼마나 잡쪼름하니 맛나는데요. 안 먹어봐었요? 어릴적 많이 먹어봤는데..." 그 말에 옆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 "우웩"하는 소리와 함께 짗궂은 남자의 허리를 가볍게 때린다.

 

 

그동안 예사롭게 봐왔던 들꽃인데 코딱지꽃라는 이름을 알고 나니 더 반갑다. 봄을 알리는 매화가 팝콘 튀기듯 '톡톡톡' 여기도, 저기도 피었다.

 

 

하얀 매화에 질세라 노란 산수유도 병아리떼마냥 걷는 우리를 내려다 본다. 잠시 일행은 걸음을 멈추고 산수유 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대학나무>라는 별칭을 가진 산수유 나무는 광고처럼 남자의 스태미너에 좋은 나무라고 한다. 한때 그 열매가 대학까지 보낼 정도로 수확량도 많고 괜찮았나보다. 나도 아이 셋을 대학 보내려면 대학나무, 산수유 세 그루 심어야할까...

 

 

1시간30여 분 걸으니 벌써 점심 먹을  율곡마을이다. 원체 짧은 거리인데도 느릿느릿 자연과 벗하며 걸은 까닭에 배는 끼니 때에 맞춰 배꼽시계를 울린다. 사람들이 저를 보는지 아님 저 소가 사람구경하는지 모르겠다. 외양간에서 소는 우리를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물끄러미 바라본다.

 

 

율곡마을의 정자 <율곡정> 주변에서 각자가 싸온 도시락을 펼쳐 나눠먹었다. 숲 샘은 다시금 율곡정앞에서 밤나무 전설을 들려주었다.<나도 밤나무>와 <너도 밤나무>의 전설. 율곡 이이 선생이 어릴 적 스님 한 분이 시주하러 왔다가 선생의 관상을 보고는 호환이 있다며 3살이 되기 전까지 밤나무 100그루를 심으라고 했단다. 세월이 흘러 선생이 3살이 되던 해 스님이 다시 나타나 호랑이로 변하며 크게 울부짖으며 선생을 내 놓으라고 울부짖었단다. 밤나무 수가 모자란다면서. 그때 저만치에서 "나도 밤나무요"하며 나무 한 그루가 앞으로 나오니 호랑이는 도망갔다고 한다. 밤나무와 똑같이 생겼으나 밤이 열리지 않는 <나도밤나무>덕분에 목숨을 건진 율곡선생. 밤나무골(율곡)에서 듣는 밤나무 이야기는 감칠 맛을 더해주었다. '지리산 시인'으로 불리는 이원규 시인의 자작시도 감상했다.

 

지리산 둘레길 / 이원규

5월의 푸른 눈빛으로 그대에게 갑니다.
함부로 가면 오히려 병이 더 깊어질 것만 같아
생의 마지막 사랑마저 자꾸 더 얕아질 것만 같아
빠르고 높고 넓고 편한 길을 버리고
일부러 숲길 고갯길 강길 들길 옛길을 에둘러
아주 천천히 걷고 또 걸어서 그대에게 갑니다.

잠시라도 산정의 바벨탑 같은 욕망을 내려놓고
백두대간 종주니 지리산 종주의 헉헉
앞사람 발뒤꿈치만 보이는 길 잠시 버리고
어머니 시집 올 때 울며 넘던 시오리 고갯길
장보러 간 아버지 술에 취해 휘청거리던 숲길
애빨치 여빨치 찔레꽃 피는 돌무덤을 지나
밤이면 마실 처녀총각들 물레방앗간 드나들고
당산 팽나무 달 그늘에 목을 맨 사촌 누이가
하루 종일 먼 산을 바라보던 옛길
그 잊혀진 길들을 걷고 걸어 그대에게 갑니다.

찔레순 꺽어 먹으며 층층나무 환한 용서의 꽃길
내내 몸을 숨긴 채 따라오던 검은등뻐꾸기가
홀딱벗-고, 홀딱벗-고! 욕망을 비웃는 반성의 숲길
3도 5군 12면 100여 마을을 지나는
성찰과 상생의 지리산 둘레길
어머니의 O, 용서의 O, 사랑의 O, 오움의 O
비로서 발자국으로 850리 거대한 동그라미 하나 그리며
날마다 보랏빛 붓꽃으로 신록의 편지를 쓰는
5월의 푸른 눈빛으로 그대에게 갑니다.

그리하여 돌아올 때는 그대와 더불어
섬진강변을 걸어 이팝나무 꽃그늘 속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검은등뻐꾸기가 어허허-허 어허허-허! 놀리는 소리에
괜스레 얼굴 붉히며 슬쩍 손이라도 잡으며
상사폭포 수락폭포를 지나 그렇게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

 

 

서당마을에서 율곡마을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었다면 바람재까지는 내내 오르막이란다. 어차피 편하자고 여기 온 것은 아니지만 올라가는 걸음보다 숨이 먼저 헉헉거린다.

 

 

올라가는 사이로 멋진 농가를 보면 무릉도원이 여기인가 싶었다.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저 농가의 마루에 드러누워 한 숨 자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르막이 잠시 멈추고 능선이 나타났다. 흙은 아직 밟지 못했다. 농삿일에 사용되는 농로라 대부분 시멘트 포장길이다. 시멘트 포장길을 탓할 수 없다. 지리산둘레길은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을 잇는 이 고장 사람들의 소통의 길이었다. 우리는 그 길을 그저 즐길 뿐.

 

 

바람재 정상에 올라와 땀을 훔쳤다. 무리 중에서 아이들이 오카리나 연주로 평안을 더해준다. 바람재에서는 이제 내리막일까 싶었는데 아니다.

  

 

다시 올라야했다. 뒤돌아 보면 잠시 쉬었던 자리가 저만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멘트가 아닌 흙길이라 올라가는 길이 좀더 편했다. 푹신한 촉감이 발을 편안하게 감싸주니 좋구나 좋아.

 

 

길 사이로 차나무가 호위하듯 심어져 있다. 올라가는 길 중에도 옆으로 능선이 나 있고 작은 내리막도 있다. 우리 사는 삶도 그렇겠지.

 

 

오는 사이사이로 섬진강이 보였다. 이 오르막만 넘으면 하동읍내가 보인다는데...

 

 

매화가득한 밭 너머로 섬진강이 보인다. 강너머 전남 광양군에는 매화축제가 한창이지만 벌써 걷는 동안 매화에 우리는 취했다.

 

 

하동읍내가 내려다 보이는 곳을 지나니 이번 둘레길의 끝. 점심 먹고 중간중간 시낭송도, 오카리나 연주도 들었지만 4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리산둘레길 하동센터로 가기 전에 소나무 그늘 아래 잠시 쉬면서 기념사진 한장 남겼다. 함께 걸어준 일행이 고맙다. 가는 동안 나무와 나물, 들꽃의 이름을 알려주어 감사하다.

걷는 동안 봄바람에 상쾌했고, 사람들의 정겨운 이야기에 유쾌했다. 매화향에 가져간 막걸리 맛이 또한 통쾌했다. 누구와 걷느냐가 중요하겠지만 어디를 걷느냐에 따라 더 정겹고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울지마라, 길 위에서 길을 잃어도 그 또한 길이다.
아주 먼 옛날 우리가 오기 전에도
지리산은 그대로 여기 이 자리에 있었으며...

아주 먼 훗날 우리가 떠난 뒤에도
섬진강은 마냥 이대로 유장하게 흐를 것이니
너무 촐싹거리며 쟁쟁 바둥거리지 말자
- 이원규 시 ‘청학동에선 길을 잃어도 청학동이다’ 중에서

 

그래 지리산둘레길에서는 촐싹거리며 바둥거리자 말자...지리산 둘레길은 치유와 위안 그리고 성찰의 길이다.

좋은 포스팅이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