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해찬솔 2013. 12. 17. 12:46

여자의 젖가슴처럼 봉긋봉긋하다. 진주의 산들은 다 그렇다. 진주의 진산(鎭山)이라는 비봉산은 부드러움의 절정이다. 진주시내를 둘러싼 산들은 200m 이내다. 비봉산이 138.5m, 선학산 134.2m. 높다고 해야 진주 외곽에 있는 집현산 572m. 지리산이 남해를 향해 내달리다 남강을 만나 숨고르기 하며 진주를 낳은 모양이다. 비봉산(飛鳳山)은 시내에서 20여 분 거리에 위치에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하다. 비봉산 남쪽에 진주시가지가 발달하였고, 비봉산 산복도로 아래에 비봉루가 있고 서쪽으로 옛 가마못이 있고 동쪽에 의곡사, 연화사 등이 있다. 또한 비봉산은 진주고와 진주여고를 품고 있다. 체육 수업시간에 산에 올라갔다 온 적도 있다. 산 정상에서 야호하면 아래에서 시끄럽다고 메아리 울리던.

    

 

12월 13일 산에 올랐다. 진주고와 진주여고를 연결하는 뒤쪽으로 편도 1차선 산복도로가 있다. 나무로 만든 산책길이 최근 만들어져 있다. 산책로 주위로 야외 헬스기구와 긴 의자 등의 편의시설이 있다.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올라가기 쉽다. 그래도 산이다.

 

 

 

올라가는 길은 일부 가파르기도 하다. 얼굴에 땀이 흐른다. 손으로 쓰윽 닦으니 정상이다. 비봉산은 그렇다. 비봉산은 올라오는데 불과 20여 분이면 끝이다. 긴 등산코스가 봉산사에서 출발, 비봉산 정산을 거쳐 말티고개 넘어 선학산 정산까지 1시간 30, 왕복 3시간이다. 넉넉하게 안아 주는 엄마 품 같은 산이다. 산에서 바라보는 진주시내와 진주성이 내려 보인다. 동북아 국제전쟁(조선은 임진왜란이라 낮춰 부른)때 이 정상에 횃불이 올랐다. 진주성 내에서 왜적과 싸우는 이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햇불이 높게 타올랐다.

 

비봉(飛鳳)이라는 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산에는 봉황이 있었다. 옛날 대봉산(大鳳山)이라 불렸다. 조선 건국 무렵 이성계를 도운 무학대사가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나는 대봉산 정기를 끊기 위해 산에 있는 큰 바위를 깨자 봉황이 날아갔다고 한다. 이후 대봉산은 비봉산으로 바뀌었다. 날아간 봉황을 다시 부르기 위해 알자리가 있어야한다며 산 맞은편 주택가에 봉알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이 봉알자리는 가야시대의 무덤이다. 주택지 한 가운데에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전설 속에 옛 사람들의 바람을 느껴보자. 또한 남강에 봉황이 좋아하는 대나무를 심었다. 대숲의 흔적이 촉석루 맞은편에 남아 있다.

 

 

산 내려오면서 봉산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봉산사는 진주 강씨 시조인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 장군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 강이식 장군은 고구려 영양왕 9(598) 임유관 전투와 영양왕 23(612) 살수 대전에서 을지문덕 장군과 함께 수나라 130만 대군을 무찔러 나라를 구한 인물이다. 봉산사 옆으로 가마공원이라는 분수대를 낀 작은 공원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한가로이 세월을 초나라와 한나라의 장기로 낚고 있다.

 

 

이곳은 옛 가마못연못이 있었던 곳이다. 봉원중학교와 상봉주공 2차 아파트,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불과 20여 년 전 이곳에서 낚시하고 얼음 썰매 탔던 옛 흔적을 찾기 어렵다. ‘가마못의 옛 이름도 서봉지였다고 한다. 봉황이 이 연못에서 목을 축이고 쉬어갔다는 전설이 있다. 무학대사는 비봉산의 맥을 끊고 여기 서봉지가마못이라 바꾸었다. 날아간 봉황이 다시 오지 못하게 이곳을 펄펄 끓는 가마솥과 같은 의미를 가진 가마못으로 이름을 바꾸었단다. 비봉산은 이렇게 진주시민들의 마음과 가슴 속에 실타래처럼 얽혀 함께 한다.

 

비봉산 밑 산복도로로 가려는데 개인 주택에 커다란 눈 부라린 황소 조각이 눈에 띈다. 소 그림을 즐겨 그리는 우촌 선생의 화실이다. 진주 소싸움의 명성처럼 황소는 한판 겨눌 요량인지 눈을 부라리고 발을 뒤로 제낀 채 뾰쪽한 뿔로 여차하면 들이밀 태세다.

    

 

황소 조각을 뒤로 하고 이른 곳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9호인 비봉루. 비봉루는 고려시대 말 절개 곧은 유학자였던 포은 정몽주(1337~1392)가 머물렀던 이곳을 기념하기 1940년 세운 다락딥 형상의 누각이다. 비봉루에서 바라보는 시가지 풍광도 아름답다. 비봉산과 비봉루가 어우러진 풍광도 아름답다. 지금까지 진주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으로 이용하고 있다.

 

응답하라, 비봉산아~ 우리가 날아간 봉황이 되면 안 되겠니?”

날아간 봉황을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가 봉이 되자.

이 글은 경상남도 감성뉴스 인터넷신문<경남이야기>와 함께 합니다. http://news.gsnd.net/?p=42134
잘 읽고 갑니다 ㅋ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