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해찬솔 2014. 4. 4. 06:30

 

- 국가인권위 발행 <천차만별>을 읽고

 

 

우리 사회를 차별 없는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의 하나로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차별시정 10년 기념 에세이 <천차만별>. 실생활 속 수십 가지 사례 속에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단어가 있다. ‘한센인은 정보화 교육 받을 수 없어요중에서 나온 한센병 환자한센인, 두 단어가 가장 선명하게 들어왔다.

 

내가 근무하는 경남 산청 성심원은 한센인 생활복지시설이다. 또한, 글 속의 소록도는 한센인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일제강점기는 물론 1960년대까지 강제로 끌려온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한센병은 완치가 가능한 피부병이다. 우리는 과거 한센병에 걸려 완치한 분들도 2000년부터 예전 나병환자라는 말에서 오는 거부감을 순화시키기 위해 한센인으로 부른다. 이분들은 한센병력이 있을 뿐이다. 감기 걸렸다가 나았다고 우리 자신을 감기인이라 하지 않는다. 한센인이라는 호칭 마저도 사라지는 날 한센이라는 낙인 속에 스며든 이분들의 애환과 한도 사라지지 않을까.

 

국립국어원은 2012이성애중심적인 언어가 성소수자 차별을 낳는다며 사랑에 관한 정의를 어떤 상대의 매력에 이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꾸었다. 사랑과 함께 연애,애정,연인,애인도 바꾸었다. 그러나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일부의 재수정 요구에 지난 1, “남녀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뜻풀이를 돌려놓았다. 이성애는 정상이고 성소수자의 사랑은 비정상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단어 속에 깃들어 잇다.

 

 

우리가 장애인을 친근하게 장애우라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환자(患者)’를 완곡하게 이르는 말로 환우(患憂)’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친구면 친구지 굳이 친구를 장애와 비장애로 구분해야할 필요가 있는가. 장애우라는 말을 장애인 스스로 호칭할 수 없다. 장애우라는 단어는 남이 나를 불러줄 때만 가능한 피동적이고 수혜적인 느낌을 배여들 게 한다. 심지어 장애를 가진 아버지를 일컬어 자식이 장애우 라고 할 수 없다.

 

불과 30여 년 전에 우리는 시각장애인을 봉사, 장님, 맹인, 소경이라 불렀다. 특정 신체기능의 작동여부에만 주목한 나머지 우리와 같은 사람이길 거부했다. 그래서 우리는 1980년대부터 순화해서 부른다.

 

장애우, 불구자, 장애자 장애인 / 정상인, 일반인 비장애인

농아자 청각 및 언어장애인 / 정신병자 정신장애인

맹인 시각장애인 / 불구 지체장애인 / 정상아, 정상아동 비장애아동

 

우리가 장애인을 달리 장애우라며 친구라고 호칭하는 까닭이 전혀 친구로 대하지 못한 죄책감을 숨기기 위한 것은 아닌지.

 

다름은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야 한다. 세상은 바꾸는 첫 걸음은 관심이다. 관심의 시작은 올바른 호칭에 있다.

이 글은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오마이뉴스와 함께 합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6686
안녕하세요.s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