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해찬솔 2014. 7. 8. 06:30

 

 

 

장마철이라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다. 파란색은 없고 수묵화처럼 짙고 옅은 회색빛만 감돌았다. 높다란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었다. 숲을 이룬 아파트들은 자신들의 회색빛 민낯을 페인트로 화장해서 겉으로는 아주 밝고 명랑했다. 이런 아파트 숲 한가운데에 청동기 유적지가 있다니 놀라웠다. 쉬는 날, 내가 사는 경남 진주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우주를 향한 나무, 솟대가 먼저 반긴다.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우주를 향한 나무, 솟대가 먼저 반긴다. 나무 꼭대기에는 하늘과 땅을 오가며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새가 회색빛 하늘 너머 우주를 향해 있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솟대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안고 마을 앞에 서 있었다. 지금 시각을 거슬러 먼 길을 떠나는 내게 손짓한다.

 

 

경남 진주 신흥 주택지 한가운데 있는 평거동 유적지.

 

솟대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진주 평거동 유적지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진주 평거 3택지 개발 사업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진주시 평거동 532번지 일원(약 97,000㎡)에 자리 잡고 있다. 2005년 2월 1일 발굴 조사에 착수, 2009년 1월 22일 조사를 완료했다.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 조사된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유구는 신석기 시대 후기의 의례유구인 원형석축유구를 포함한 3기, 청동기 시대 전기 마을 유적의 대형 수혈 건물지, 청동기 시대 후기 매장 유구군의 대형묘역시설과 성토 층을 갖춘 매장유구 등 476기, 삼국시대 취락관련 유구 211기 등 총 690기와 밭 12개 층 129개면 면적 약 15,000여 평에 이른다.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우리 사람들 주요한 터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밭도 있고, 무덤도 있다. 마을회관에 해당하는 건물도 있고 원룸 같은 단출한 갈대로 만든 집도 재현되어 있다.

 

솟대를 지나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삼국 시대 밭의 자취가 나온다. 확인할 수 없는 씨앗이 출토되었고 탄화(炭火) 보리도 나왔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위해 보리를 심은 것은 아닐 터. 요즘은 건강에 좋다고 보리 혼식하지만, 이들은 건강을 위해 보리를 키운 게 아닐 것이다. 삼국 시대의 경작터를 재현한 플라스틱 보리밭을 뒤로하고 돌아서면 갈대로 만든 집들이 나온다. 갈대를 엮어 만든 집들 내부는 구들을 설치하고 부뚜막과 아궁이를 서쪽 벽 중앙에 설치했단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몸 누울 집 한 채 있으면 마음은 아주 든든하지 않았을까.

 

 

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의 도로 흔적.

 

당시의 도로 흔적이 보인다. 그저 길바닥에 길다랗게 엄지손가락만큼 파인 흙길이 당시의 도로란다. 유적지 옆으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고속도로에 비할 정도가 아니다. 일정 경로를 사람과 수레가 반복해서 지나가면서 흙을 다진 모양이다. 자연제방 위에서 경작지를 관통한 길을 따라 사람들이 일터로 나갔으리라.

 

 

 

곡식 저장건물에는 쥐를 막기 위해 땅에서 올라가는 중간쯤에 쥐막이판를 기둥에 사용했다.

 

다락건물이 보인다. 복원된 건물에는 사다리를 타고 출입하도록 했다. 통풍이 잘되도록 한 건물은 또한, 쥐를 막기 위해 땅에서 올라가는 중간쯤에 쥐막이판를 기둥에 사용했다. 한톨의 식량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력을 생각하니 오늘 아침에 먹은 밥 한 톨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유적지 내 무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청동기와 철기 시대 사람들은 살았을 때보다 죽었을 때 더 많은 말을 한다. 죽은 자는 자신의 무덤과 함께 각종 도구와 장신구들로 우리에게 말을 한다. 다만, 우리가 그 말을 흔적을 제대로 살피지 못할 뿐이겠지만. 죽은 자의 말을 흔적을 살펴볼 요량으로 유리 너머로 복원된 무덤을 한창 바라보았다.

 

 

<진주 평거동 유적 디오라마>

 

어느덧 유적지 한가운데 섰다. <진주 평거동 유적 디오라마>가 당시의 시대를 재현해 보여 주고 있다. 신석기 시대 석축 흔적도 보이고, 청동기 시대 주거지들도 보인다. 마을로 내려오는 짐승을 잡기 위해 주거지와 밭 주변에 땅을 파고 바닥에 뾰족한 나무를 꽂아 둔 함정도 보인다. 원형과 타원형, 장방형의 삼국시대 주거지들도 보인다. 주거지내부에는 취사와 난방을 위한 아궁이와 구들 등이 있었다고 한다.

 

 

진주 평거동 유적지

 

주택지 한가운데에서 옛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로운 삶의 흔적을 되돌아볼 기회였다. 다만, 이곳은 건물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밖에서 볼 수밖에 없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인테리어를 하며 살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 당시를 재현한 일종의 모델하우스 같은 곳이 이곳에서 승용차로 불과 20여 분 거리에 있다.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고자 마을 주위에 파놓은 도랑(환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3천 년 전 청동기시대의 마을이 진주 대평면 대평리에 국내 유일의 청동기문화박물관으로 우리 곁에 있다. 청동기문화박물관 상설전시장에는 토기류 150여 점과 석기류 250여 점, 옥 50여 점 등 약 500여 점 출토된 진품들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입체 영상관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대평마을 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3D입체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야외전시장에는 발굴을 근거로 복원된 대평마을 축소모형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가옥인 움집 3동과 고상창고, 목책, 무덤군과 밭 유적을 전시해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진주 평거동 유적지는 말이 없다. 인간과 하늘을 연결해주던 솟대처럼 우리의 관심이 멈추지 않는다면 오늘 신흥 주택지에서 만난 유적지는 당시의 시대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