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해찬솔 2014. 8. 28. 06:30

경남 진주시 가좌산 주제가 있는 길을 거닐며

 

아빠, 그럼 점심때 오는 거예요?”

아직 개학하지 않아 집에 있는 막내는 아내를 출근시키려고 나서는 내게 재차 묻는다.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현관문을 나서면 그래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폭우로 여러 명이 죽거나 다친 어제와 달리 826, 햇살이 고왔다.

 

아내를 직장에 내려다 주고 나는 곧장 차를 몰았다.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연구소에서 운영하는 가좌시험림. 가좌시험림 입구에서 왼편으로는 진주시의 걷기 좋은 길에 선정된 가좌산 등산로 청풍길이 나온다. 오른편으로 살아 있는 나무도감처럼 넉넉한 길옆으로 각종 나무 이름들이 도감 책을 여미듯 서 있는 길이 있다. 오늘은 좌도, 우도 아니고 가운데로 곧장 들어갔다. 가좌시험림 안에도 각종 나무가 이름표를 들고 서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연구소에서 운영하는 가좌시험림.

 

복사꽃을 닮은 협죽도가 먼저 이름표를 보이면 반긴다. 가져간 포켓용 나무도감 책을 출석부 삼아 시험림 안에 있는 나무 이름표와 하나씩 찾는 즐거움이 재미났다. “당단풍, 배롱나무, 삼나무, 편백, 붉나무···.” 이렇게 출석을 부르다 문득 한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나 역시 좀 전에 아침을 먹고 나왔기에 까마귀 밥이라는 이름을 가진 까마귀밥나무가 예사롭지 않았다. 즙이 많은 빨간 열매는 가을에 익고, 겨울을 넘기면서 수분이 빠져 쪼글쪼글해지지만, 이듬해 봄까지 달려서 까마귀 말고도 배고픈 산새들의 양식이 되어준다. 블루베리와 닮았다.’(<우리 나무의 세계> 김영사) 나무 한번 바라보고 도감 한번 읽었다.

 

 

1983년 서울대 농대에서 재래종과 도입종 간 교배종으로 만든 무궁화의 한 품종인 한얼단심’.

 

나무도감과 함께 출석을 부르면서 시험림 깊숙이 들어왔다. 하얀 꽃잎의 한가운데 붉은 기운 사이로 노란 꽃 수술이 길다랗게 도드라져 보이는 무리가 있다. ‘한얼단심우리나라 무궁화다. 1983년 서울대 농대에서 재래종과 도입종 간 교배종으로 만든 무궁화의 한 품종이다. 홑꽃을 꽃잎이 얇고 둥글게 활짝 피어 단심이 작고 방사맥도 극히 짧은 게 특징이다. 7월부터 10월까지 100일 동안 매일 새로운 꽃이 핀다고 무궁화라는 꽃 이름을 가진 것처럼 지금이 한창이다. ‘한얼단심옆으로도 붉은 꽃잎이 아름다운 무궁화도 있다. 여러 무궁화가 일편단심(一片丹心)인 양 여름 태양을 향해 서 있다. 보는 자체만으로도 뜨거운 열정을 느끼게 한다.

 

 

 

 

 시험림을 나와 입구 왼편의 청풍길로 들어섰다. 부드럽고 맑은 바람이 분다는 청풍(淸風)을 먼저 온전히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한번 꺾이고 두 번 꺾인 굽이굽이 나무테크 길을 하얀 멍멍이도 뒤따른다.

 

가좌산은 구간별로 주제가 있다. ‘청풍길, 대나무 숲길, 어울림 숲길, 물소리 쉼터, 맨발로 황톳길, 고사리길주제 파악하기 좋은 길들이다. 시험림을 나와 입구 왼편의 청풍길로 들어섰다. 부드럽고 맑은 바람이 분다는 청풍(淸風)을 먼저 온전히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한번 꺾이고 두 번 꺾인 굽이굽이 나무테크 길을 하얀 멍멍이도 뒤따른다. 사람과 함께하는 반려견에게도 숲은 함께하기 좋은 길인 모양이다. 혼자 걷는 길이 심심하지 않다.

 

 

가좌산 주제가 있는 길 중 하나인 대나무 숲길

 

바로 올라가지 않고 천천히 돌아가는 길은 힘들지 않다. 10분 정도 걸으면 능선이 나온다. 능선이 나오는가 싶게 대나무 숲이 펼쳐진다. 산림과학원 조사로는 대나무는 지구온난화의 주범 탄산가스를 다른 나무보다 훨씬 더 많이 흡수한단다. “사각~사각~” 바람 한 점 대나무 숲길을 가로질러 지나가자 소리가 흔적으로 남는다.

 

 

 

숲에서 만난 거미는 어제의 폭우에 밤새 자신의 거미집을 지켜내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쉬고 있는지 아주 곤하게 자는 듯 보인다.

 

대나무 숲길을 지나자 편백 숲길이 이어진다. 저 아래에서 올라온 지 500여 미터가 되었을까? 왕복 10차선 큰길을 쌩쌩 달리는 차들이 지나는 소리도 슬쩍슬쩍 바람에 묻어온다. 긴 의자에 잠시 배낭을 내려놓았다. 준비해간 커피를 마셨다. 씁싸래한 원두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리도록 고개를 하늘로 들었다. 텀블러 사이로 나처럼 휴식을 취하는 거미를 보았다. 혹시 어제의 폭우에 밤새 자신의 거미집을 지켜내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쉬고 있는지 아주 곤하게 자는 듯 보인다.

 

 

 

산림의 공익적 기능을 소개한 선간판이다. 산림의 공익 기능 평가액은 2010년 기준으로 109조 원이란다.

 

능선을 걷자 갈림길을 자주 만난다. 우리 인생길도 갈림길처럼 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갈림길 한쪽에 선간판이 있다. ‘산림의 공익적 기능을 소개한 선간판이다. 산림의 공익 기능 평가액은 2010년 기준으로 109조 원이란다. 국민 한 사람당 연간 216만 원의 산림복지 혜택을 누린다고 한다. 최근 산림청에서 산림환경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국민 실천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해 시행되는 '()자 사랑해'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산림에 대한 선진 의식과 산림 내 위법행위로부터 준법의식과 솔선수범을 유도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산림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아는 우리는 불법 산림훼손 근절에 모두 힘써야겠다.

 

맨발로 걷기 좋은 황톳길이 나왔다. 신발을 벗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황톳길 지나자 고사리길이 나온다. 고사리가 살기 좋은 환경인지 숲은 점차 햇살이 들어오지 않아 그늘이 깊다. 고사리길을 나오자 전망대 나타났다. 진주시의 상징 새인 백로떼를 멀찍이서 관찰할 수 있다. 다음에는 쌍안경이라도 가져와야겠다. 백로떼가 여기서 둥지를 꾸미고 새끼를 키우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총연장 3.3의 가좌산은 순환 형 코스다. 높이 116.8m의 가좌산은 나지막하다. 가좌산의 반환점 이정표 앞에서 돌아온 길만큼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았다.

 

1시간여 걸었을까 이번에도 갈림길이다. 그런데 이번 갈림길에는 반환점이라는 표지판이 이정표 옆에 있다. 벌써 시험림에서 올라온 지 1.4km가 지났다. 지나온 길은 길지 않다. 그럼에도 주제가 있는 다양한 숲길을 만나 지루하지 않았다. ‘반환점이라는 표지판의 선명한 글자가 자꾸 눈에 밟힌다. 내 나이가 내 인생의 반환이라 그런가. 반환점 표지판 앞 긴 의자에 앉았다. 배낭에서 물을 끄집어 한 모금, 한 모금 마셨다. 목구멍을 시원하게 타고 내려오는 물과 함께 지나온 삶이 한 편의 영화처럼 번개처럼 지나간다. 오늘 자 신문을 펼쳤다. ‘부산·경남지역 물 폭탄으로 곳곳이 침수를 겪고 산사태가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여기 이곳은 초록빛 물결이 일렁이며 저 아래 사람 사는 동네의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게 한다.

 

갈림길에서 돌아가지 않았다.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 석류공원이다. 진주 시가지 동부 지역을 한눈에 내려 볼 수 있다. 푸른 하늘에 구름이 둥실둥실 떠간다. 남강은 폭우의 흔적을 황토물로 폭우의 흔적을 기억하고 있다. 2시간여 기분 좋게 길을 걸었다. 총연장 3.3의 가좌산은 순환 형 코스다. 높이 116.8m의 가좌산은 나지막하다. 싱그러움이 넘쳐나는 진주시 최고의 걷기 좋은 길이다. 걷는 내내 푸른 초록빛을 가득 담는 길이다. 8월 한 달 눅눅한 날이 잦았다. 오늘처럼 오랜만에 햇살이 반짝 드는 게 그래서 고맙다. 숲길은 눅눅한 마음을 말려준다. 희망을 말려주는 숲길은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