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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찬솔 2014. 11. 27. 06:30

- 100% 토종소나무 숲길, 경남 진주시 광제산을 걸으며

 

바람이 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힘겹게 붙어 있는 나뭇잎마저 내놓으라는 듯 불었다. 나는 바람을 맞으러 11월 23일 길을 나섰다. 겨울 문턱에서 가을을 그저 보내기 아쉬웠다. 경남 진주에서 산청 가는 국도 3호선에서 명석면으로 빠졌다. 명석면사무소 앞에는 남자 거시기와 여자 족두리를 닮은 돌 한 쌍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쳐 10여 분 더 들어갔다. 광제서원으로 가는 길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는 ‘토종 100% 국산 소나무 숲길’이라는 광제산 등산로 시작점을 알리는 선간판이 보이는 홍지주차장에 섰다.

 

누런 황토 위 솔잎을 밟을 때마다 솔 향기가 솔솔 났다. 기분마저 상쾌하다.

 

바람과 함께 올라갈 산은 광제산이다. 광제산 주차장에서 왼쪽과 오른쪽으로 각각 2km인 순환형 등산길이다. 주차창 왼편으로 난 길을 시계방향으로 걸었다. 주차장 벗어나자 당단풍나무가 붉은색 별처럼 빛나는 훈장을 바닥에 펼쳐 보이며 먼저 반겼다. 마주 오는 이가 있으면 비켜서 줘야 할 정도로 작은 오솔길이 나왔다. 5~10여 분 걸었을까 작은 언덕을 넘자 황톳빛 흙길이다. 누런 황토 위 솔잎을 밟을 때마다 솔 향기가 솔솔 났다. 기분마저 상쾌하다. 제 살아왔던 삶대로 이리 휘고 저리 굽은 소나무들의 호위를 받는 나는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소나무의 호위가 끝날 무렵 ‘바스락바스락’ 경쾌한 소리가 나를 따른다. 한여름 융단을 깔아놓은 듯 초록으로 가득했을 광제산은 이제 소나무 아래를 지나면 온통 갈색빛의 천국이다.

 

소나무의 호위가 끝날 무렵 ‘바스락바스락’ 경쾌한 소리가 나를 따른다. 한여름 융단을 깔아놓은 듯 초록으로 가득했을 광제산은 이제 소나무 아래를 지나면 온통 갈색빛의 천국이다.

 

 

 

진주 광제서원(2012년 촬영)

 

차로 지나쳤던 광제서원으로 가는 길이 나오기 무섭게 개 짖는 소리가 저만치 들렸다. 서두를 게 없는 나는 산 아래로 잠시 내려갔다. 광제서원 입구에는 수십 년이 된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고려 초기의 건축형태를 잘 보여주는 목조건물인 서원은 처음에는 홍복사(洪福祠)였으나 1747년 홍지암(洪池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891년 중수하면서 모원재(慕遠齋)로 개칭하여 남양 홍씨 문중의 재실로 사용해왔다. 1976년 영남 유림들이 광제서원으로 격상시켜 해마다 음력 3월 10일 고려은청광록대부 상서 홍의(洪毅)와 고려금자광록대부 수상공상서 보문각, 태학사 홍관(洪灌)에게 춘향(春享)을 올린다.

 

 

다시 산을 오르자 산세는 가팠랐다.

 

다시 산을 오르자 산세는 가팠랐다. 오늘 처음 온 산도 아닌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 홍류소류지와 덕곡마을, 광제산 봉수대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올 때까지 산은 평탄한 길을 내주지 않았다. 흐르는 땀을 주머니 속 손수건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떡갈나무가 넓은 잎으로 내게 부채질을 해주었다. 흐르는 땀이 이제는 제법 춥다. 해발 420m의 광제산 정상이 나왔다. 홍지주차장에서 이곳까지 2km 거리는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소개하지만 아니다. 비록 산을 즐기지 않지만 1시간은 잡아야 했다.

 

 

광제산에서 내려다 본 풍광. 남동쪽으로 진주 시내와 망진산 봉수대, 삼천포 와룡산이 저 아래 보인다.

 

광제라는 말은 “널리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가진 광제산((廣濟山)은 백두대간인 덕유산에 뿌리를 두고 금원산, 황매산을 거쳐 집현산을 일구었고 두 줄기로 나누어져 동쪽으로 달려 나간 진주 비봉산세와 함께 서쪽으로 부드러운 형상으로 뻗어 나가 후덕한 봉우리를 이룬 산이다. 산은 남서쪽으로 내달려 진주시 이현동, 신안동, 평거동, 판문동 일대를 품에 안고 있는 숙호산으로 이어진다. 숙호산 옆으로 진양호가 햇볕에 반짝반짝 존재감을 드러낸다.

 

 

광제산 봉수대.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2004년 무너진 돌무더기를 이용하여 원형대로 복원함으로써 전국에서도 원형이 살아있는 몇 안 되는 봉수대다.

 

 

울긋불긋한 가을 햇살을 노란 이고들빼기가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허리를 숙여 바라보기 미안해서 무릎을 꿇었다. 노란빛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겨울 문턱에서 봄을 맞는 양 마음이 포근하다.

 

산은 낮지만, 주변의 풍광은 한눈에 다 들어온다. 봉수대를 빙 둘러 면사무소까지가 10km고 집현산까지가 6km란다. 약샘으로 해서 홍지주차장으로 길을 나섰다. 올라온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위험하다지만 이 내려가는 길은 안전펜스에 의지하며 한 걸음, 두 걸음 옮겼다. 머루 나무가 제 잎을 붉은 빛으로 활활 태우며 고개 숙인 나를 응원한다. 약샘을 만나러 가는 200m의 길은 돌무더기가 자주 나왔다. 봉수대를 지켰던 봉수군들이 마셨다는 약샘이 나왔다. 졸졸졸 나오는 물이 한 컵 가득 채워지기 기다리는 여유가 좋았다. 정수기의 물처럼 금방 채워지지 않는 느림의 시간은 느긋함이었다. 약샘에서 나와 다시 10여 분. 고개를 들었다. 정오를 넘긴 시간이었지만 산속의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 듯 나무에 가려 어둑어둑하다. 벌거숭이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내려앉았다. 울긋불긋한 가을 햇살을 노란 이고들빼기가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허리를 숙여 바라보기 미안해서 무릎을 꿇었다. 노란빛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겨울 문턱에서 봄을 맞는 양 마음이 포근하다.

 

 

경상남도민속자료 제12호인 운돌 한 쌍은 남자 거시기와 여자의 족두리를 닮아 자웅석(雌雄石)이라 한다.(2012년 촬영.)

 

아쉬움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하자 양지바른 한쪽에서는 보랏빛 쑥부쟁이 꽃들이 늦가을의 갈색빛 사이로 빛났다. 쑥부쟁이의 배웅을 받으며 내려가자 아스팔트 길. 자전거 한 대가 씽 하고 지나갔다. 배낭 속에서 주섬주섬 과자와 커피를 챙겨 먹었다. 숨을 고르고 차를 운전해 5여 분을 달려 명석면사무소 앞에 있던 원조 한 쌍의 돌을 찾았다. 경상남도민속자료 제12호인 운돌 한 쌍은 남자 거시기와 여자의 족두리를 닮아 자웅석(雌雄石)이라 한다. 남자 거시기를 닮은 돌의 높이가 97cm, 둘레 214cm다. 족두리를 닮은 돌은 높이 77cm, 둘레 147cm다. 다산(多産)과 풍요(豊饒)를 빌던 선돌(立石)이 우는 돌(鳴石)이 된 내력은 이렇다. 고려말로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진주성을 정비했다. 광제암 스님이 성 보수를 마치고 돌아가다 서둘러 걸어가는 돌을 만났단다. 돌에게 왜 그렇게 급히 가느냐고 물었더니 진주성을 쌓는데 밑돌이 되기 위해 간다고 했단다. 스님은 이미 공사가 끝나 소용없다고 했더니 돌은 진주성의 밑돌이 되지 못한 게 서러운지 크게 울었다. 스님은 돌의 애국심에 감복하여 큰 절을 올렸다고 전한다. 세월이 흘러 돌은 명석면의 자랑이요, 지역명이 되었다. 명석은 비바람을 피하라고 후대 사람들이 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실제 음력 3월 3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산에 올라가 풍광을 구경하는 재미 못지않게 산자락에 깃든 전설을 살펴보는 재미는 더 쏠쏠하다. 가을 산들은 짙은 갈색의 생각하는 길이다. 겨울 길목 앞에 선 지금의 광제산. 아마도 내년 봄에도 그리울 것이다.

 

▣ 등산코스

- 광제산 등산로 안내도에 따르면 등산코스와 소요시간이 나온다.

1코스: 신기마을~내율간임도~정상 3.8km 70분.

2코스: 동지만을~정상 1.7km 35분.

3코스: 홍류소류지~정상 1.8km 35분.

4코스: 용우초교~체육시설(1)~체육시설(2)~체육시설(3)~체육시설(4)~체육시설(5)~정상 9.6km 210분.

5코스: 덕곡마을~정상 3.1km 60분.

6코스: 관지마을~정상 6.7km 150분.

7코스: 명석면사무소방향~체육시설(1)~체육시설(2)~체육시설(3)~체육시설(4)~체육시설(5)~정상 9.4km. 20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