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해찬솔 2015. 3. 17. 22:48

 

 

햇살 좋은 날이었다. 16일 휴무를 맞아 진주시립 연암도서관을 찾았다.  책을 반납했다.

 

 

진주성의 촉석루의 숨은 내력

 

진주는 신라 시대부터 서부 경남의 행정을 관할하는 주요 도시였다. 1603년 창원의 경상우병영이 천하 요새인 이곳으로 이전했다. 목사와 우병사가 각각 머무는 이원적 지방체제가 지속되었다. 18955월 병영이 해체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갑오개혁 이후부터 일제강점기까지 40년간 관찰부 청사와 경남도청이 위치했다.

 

한국전쟁 때 미 공군의 공습으로 촉석루를 비롯해 진주시가지가 불타는 사진은 가슴 아픈 생채기로 남는다.

    

 

책 속의 자료 사진에도 분명히 촉석루 누각만 있는게 아니였다.  진주성과 촉석루를 안다고 했더니 아는게 아니였다.

촉석루가 창건된 이후 누각 한 채만 덩그렇게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아니다. 촉석루는 여러 부속 누각을 거느린 기묘한 건물 구조와 배치로 독자적 특성을 갖추고 있었다. 본래 촉석루는 본루 외에 서각(西閣)으로 쌍청당과 임경헌(관수헌), 동각(東閣)으로 능허당과 청심헌이 있었다. 동아시아국제전쟁(임진왜란) 전까지 ‘22네 채 부속건물을 거느린 으리으리한 규모였다. “읍하는 형국이라는 본루와 속루의 짜임새 있는 배치였다.

    

촉석루 한시는 900편이 넘고, 작가도 650여 명이 이른다. 산문을 포함하면 휠씬 늘어난다. 고려 말 이후 유명한 누각으로 명성을 떨친 촉석루.

 

끝으로 저자는 명승지 진주에 도착하면 응축된 역사문화도시에 흠뻑 빠져들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진주와 친연성이 각별한 퇴계나 다산이나 매천을 우리 곁으로 불러내는 일이 중요하다. 진주의 대표적 문화콘테츠를 선정해 도시 공공디자인 개념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문화 기획을 다방면으로 실천하고 범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전국 최초로 종합예술제인 개천예술제를 개최할 정도로 저력이 있는 진주를 역동적인 문화도시로 만드는 데 긴요한 일이 될 것이다.”라고 제언했다.

 

아마도 이 책을 서점에서 살 예정이다. 밑줄치며 다시 읽고 싶기 때문이다.

    

조일전쟁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란 없었다.”고 말문을 연 저자는 조선이 개국한 지 딱 200년째인 1592년에 있었던 사건은 임진왜란이 아니라,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근대 수백 년 간 동양에서 일어났던 전쟁 중 가장 대규모이자 작렬했던 동아시아 국제적인 조일전쟁이라고 정의 내렸다. 역사학자도 아닌 저자는 미국 동포다. 독학하며 공부하고 연구했다. 이른바 돌직구가 시원시원하다.

 

조일전쟁에는 3개국에서 50만 명이 넘는 대병력이 투입되었고, 현재전까지 쓰이는 거의 모든 첨단무기가 동원되었으며, 전쟁의 결과로 20만 명 이상의 전사자가 생겼고, 희생된 조선인 총수는 거의 2백만 명에 이른, 참혹하기 짝이 없었던 대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한국전쟁과 함께 우리나라 역사사 있었던 전쟁 중 가장 큰 두 개의 전쟁 중 하나인데, 이런 대전쟁에 대한 명칭을 왜란이라 함은 말이 안 된다. 이 전쟁의 모든 정확한 정황은 전쟁의 참혹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과 그 계승자들에 의해서 모조리 왜곡되었다.

 

조선이 초장에 박살난 원인은 전쟁이 일어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애써 골치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않은 무능한 임금 선조(조선 14)와 당파 싸움에 코를 쳐박은 한심한 신료들 때문이었다. 조일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비겁하기 짝이 없었던 선조는 두 달 만에 의주까지 도망쳐 명에 망명을 빌었다.

 

조선을 살린 것은 명의 원군과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당시의 통치자였던 비겁한 소인배 선조나 당쟁으로 썩어 빠진 관료들의 계승자들이 전쟁이 끝난 후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어야 했기 때문에 사실을 전할 수 없었다.

 

조일전쟁은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이라고 했다.

 

2323연승으로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해전 연승 신화를 하나씩 추적하여 거품을 제거했다.

이순신 장군은 육군의 을지문덕 장군과 함께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군이자 조일전쟁의 영웅임에는 틀림없으나 단지 현대에서 덧씌워진 우상의 더께들을 벗길 때라고. 거북선이 실제 전쟁에서 큰 위용을 자랑하지 않았다. 거북선에 조선 수군의 이미지가 덧 씌여져 있다.“고 했다.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저자 이철은 강원도에서 태어난 집 뒷산에 올라 저너머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호기심은 역사로 이어져 지금의 책을 펴냈다. 나역시 그런 궁금증으로 이 책을 펼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다.

 

국사 시간에 밑줄치며 외웠던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이 내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조선시대의 백과사전으로 알려진 <지봉유설><성호사설>을 중심으로 쓴 책이다. 이중에서 오늘도 담뱃값 인상으로 애연가들에게 볼멘소리가 나오는 요즘에 들으면 눈에 확 띄는 구절이 있다.

 

자녀에게 담배를 가르치다편이다.

 

<지봉유설>식물부에서 으로 분류했다. <성호사설>도 해로움보다는 담배를 둘러싼 풍습을 적었다.

 

"어른이 담배를 피우려 하시거든 반드시 담배를 담뱃대에 담아서 불을 붙여 드려야 한다."

 

양반가문의 예절을 위해 쓴 <사소절>에 나오는 글이다.

 

담배는 일본에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급속도로 퍼졌으며 그 대상도 남녀노소와 상하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아이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서로 마주 앉아 담배를 피워 댔으니 일부 양반 사대부들이 보기에는 유교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서 어른과 어린이의 윤리와 존귀한 자와 비천한 자의 질서가 모조리 사라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담배가 그런 질서를 망가뜨릴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질서를 망가뜨리는 이유가 담배에 있는 것이다. 하늘이 장차 담배를 통해 어른과 어린이, 존귀한 자와 비천한 자의 등급을 무너뜨리고 뒤섞어 뒤죽박죽의 세계를 만들려는 의도를 가진 게 아닌지 모르겠다"<무명자집> <연경, 담배의 모든 것>에서 재인용.

 

일부 양반 사대부들은 맞담배가 신분질서를 위협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흡연을 강력히 비난하고 반대의 목소를 높였다. 이런 양반 사대부들의 노력은 끝내 결실을 맺었다. 흡연 풍습은 규범화되어 훗날 한국 사회에서 엄격한 흡연 예절이 탄생했다고 책에서는 적고 있다.

 

신분질서를 지키지 위해 나온 엄격한 흡연 예절이 술과는 달리 맞담배를 허용하지 않는 현실에 가슴 아프다. 또한, 양반들이 동북아국제전쟁(조일전쟁, 임진왜란)으로 무너진 자신들의 허망한 위세를 지키고자 예의범절을 엄격히 제한한 사실이 슬프다.

 

이외도 <징비록> 두 권도 반납했다. 드라마 영향 탓이다. 아내도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도서관에서 나는 다시 5권의 책을 빌렸다. 책을 고르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 많은 책 중에서도 내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역사와 진주에 관한 이야기 책이었다.

 

 

이번에도 <징비록>을 다시 빌렸다. 아내가 다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논개>와 <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는 오직 '논개'때문에 빌린 책이다. <지리산 역사문화사전>은 '지리산'덕분에 손이 갔다 <식물의 인문학>은 봄기운이 싱그러운 요즘의 식물에 관한 내 관심이었다.

 

책 반납일은 3월 31일이다.

역사에 대해 아는건 정말 좋은거예요
잘보고 갑니다^^
그렇죠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