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5. 3. 24. 06:30

 

꼭꼭 숨겨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로 유명한 경남 산청 단성면 성철 스님의 생가터에 세운 겁외사에서 작은 길 하나 건너면 만나는 묵곡 생태숲’. 등잔 밑이 어둡다고 사람들은 겁외사에서 성철 스님만 뵙고 그냥 지나간다. 숲의 진가를 아는 이에게는 더없는 보석이다. 이 숲은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성철 스님의 생가에 세워진 겁외사(경남 산청군 단성면).

 

23, 겨울의 생채기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었다. 그런데도 옹기종기 모여 가져온 밥을 먹는 시골 아낙들의 얼굴은 해맑았다. 경남 산청 겁외사 맞은편 좌판을 벌이고 가져온 농산물을 파는 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올망졸망한 좌판 사이로 지나 넓은 들판으로 걸었다. 묵곡 생태숲. 숲이라고 하기에는 들판에 가깝다. 잔디밭이 더 넓다. 저 너머로 신안면 적벽과 백마산이 주위 산에 가려서 얼핏얼핏 보인다. 바람이 차지만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따사롭다.

 

 

 

 142,000에 조성된 산청 묵곡 생태숲은 바람막이 숲과 지리산 상징숲, 참나무숲, 습지생태원, 초지생태원, 피크닉장, 어린이 놀이시설, 잔디광장, 주차장, 비지 터 센터, 산책로 등으로 꾸며져 있다.

 

광장이 나왔다. 회전하는 로터리 화단에서 한 바퀴 돌다 남으로 걸었다. 흙길이 폭신폭신하다. 내 몸무게만큼 쑥 들어갔다가 다시 복원하는 모양새가 재미나다.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 길을 걸었던 내 발이 흙길을 즐긴다. 잠시 신발을 벗었다. 양말도 벗었다. 흙을 밟았다. 흙과 잔디. 까칠한 듯 부드러운 흙이 발을 간지럽힌다. 입가가 꼬리를 물며 위로 살며시 올라간다. 소나무들이 정겨운 도민의 숲이 나왔다. 숲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알차지 못하다. 몇 년의 시간이 더 지나면 푸른 기운이 가득할 듯하다.

 

'묵곡 생태숲'201145일 문을 열었다. 남강댐 상류 지역의 수자원 보호와 겨울철 거센 모래바람을 시달려야 했던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2006년부터 2010년 말까지 5년간 9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한 산림청 생태숲 조성사업으로 거듭난 곳이다. 142,000에 조성된 묵곡 생태숲은 바람막이 숲과 지리산 상징숲, 참나무숲, 습지생태원, 초지생태원, 피크닉장, 어린이 놀이시설, 잔디광장, 주차장, 비지 터 센터, 산책로 등으로 꾸며져 있다.

 

 

하트 모양의 묵곡 생태숲 내 습지 생태원

 

하트 모양의 습지 생태원이 나왔다. 하트 연못에 봄이 영글면 사랑도 영글까? 혼자 온 내가 괜스레 아내가 보고 싶다. 숲이라는 이름과 달리 눈에 가리는 게 없는 이곳은 시원시원하다. 뚝방()으로 올랐다. 뚝방길이 길다랗다. 뚝방길에서 남강 쪽으로 바라보자 내 발자취에 놀랐는지 하얀 날갯짓으로 날아올라 가는 새들이 보인다. 남강의 지류인 경호강이 산청을 휘휘 감아 돌아 이곳을 지난다. 이곳을 지나 진양호에서 또 다른 남강의 지류인 덕천강을 만나 남강으로 한몸이 되어 흘러간다.

 

 

뚝방길에서 남강 쪽으로 바라보자 내 발자취에 놀랐는지 하얀 날갯짓으로 날아올라 가는 새들이 보인다.

 

긴 의자에 앉았다. 따사로운 햇살을 친구 삼아 가져간 보온병에 든 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좋구나, 좋아~” 절로 흥겨운 탄식이 나온다. 아무도 없는 이 숲은 온전히 내 것이다.

 

 

생태 숲 내 묵곡초등학교(1964~1989) 교적비.

 

묵곡초등학교 교적비가 나왔다. 묵곡초등학교는 196431일 단성초등학교 묵곡분교로 개교해 196631일 묵곡초등학교로 승격했다. 198922023회 졸업생을 끝으로 단성초등학교에 통합되어 폐교되었단다. 경호강 솔밭 숲 속에 아담하게 자리했던 묵곡초등학교의 옛터에 모교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이 여기에 비를 2009년 세웠다. 내가 거니는 이곳이 한때는 이 동네 아이들의 배움터요, 놀이터였다니 걸음걸음이 조심스럽고 고맙다.

 

 

식물이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자태를 뽐내는 듯하지만, 사실은 죽을지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꽃을 피우는 셈이다.

 

노란 산수유가 푸른 하늘에 빛난다. 산수유 노란 꽃망울이 아름답다. 그러나 노란 꽃망울 너머에 절박함을 느꼈다. 꽃은 스트레스의 산물이다.”<식물의 인문학>(박중환 지음, 한길사 펴냄)에 나온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모든 식물은 타고난 유전적 약점이 있다. 약점은 주로 기온과 햇빛의 변화에 드러난다. 개나리, 산수유, 매화, 목련은 급상승하는 기온에 민감해서 이른 봄에 개화한다. 이런 식물은 한겨울에도 날씨가 따뜻해지면 스트레스를 받아 꽃을 피운다.’고 한다. 식물이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자태를 뽐내는 듯하지만, 사실은 죽을지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꽃을 피우는 셈이다. 새 생명은 위기의 산물이다. 봄꽃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저렇게 열심히 살아남으려는 열정을 보았다.

 

 

묵곡 생태숲은 해바라기하기 좋은 곳이다.

 

노란 산수유 곁을 지나자 빨간 남천 열매들이 탐스럽다. 남천 사이로 작은 새들이 내 등장에 놀랐는지 포드득 포드득작은 날갯짓으로 숨는다. 뚝방길 옆으로 난 길게 쭉 뻗은 길이 좋아 다시 신을 벗었다. 잔디밭에 이르러 신을 신었다. 탁 트인 풍광이 차가운 바람마저도 시원하게 느껴지게 한다. 긴 의자에 앉았다. 다음에는 책이라도 한 권 들고 와 해바라기 하며 읽고 싶다.

 

 

하늘 향해 순을 드러낸 버드나무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듯 하늘을 향한 몸짓에서 열정을 보았다.

 

강으로 흘러가는 작은 개천이 나왔다. 다리를 건넜다. 버드나무가 하늘 향해 순을 드러냈다. 불꽃이 활활 타오르듯 하늘을 향한 몸짓에 조용히 다가가 열정을 훔쳐보았다. 이들의 열정을 나만 훔쳐보지 않았다. 천하대장군과 천하여장군 돌비석도 입을 앙다물고 눈을 부라리며 봄을 보고 있었다. 어린이 놀이터와 롤러스케이트장이 나왔다. 아마도 근처 어린이집에서 소풍이라도 오면 그만일 곳이다. 아이 손잡고 온 가족이 놀러 오면 더 좋을 곳이다.

 

 

천하대장군과 천하여장군 돌비석도 입을 앙다물고 눈을 부라리며 봄을 보고 있었다.

 

묵곡 생태숲은 누구의 시선도 없이 연인과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데이트 장소다. 산에 올라갈 시간 없이 바삐 살아온 이들에게도 이곳은 넉넉히 치유의 시간을 내줄 것이다. 해바라기를 하기 좋은 곳이라 어르신들도 나들이로 딱 이다. 다만 숲이 아직 울창하지 않아 그늘막이 될 것이 적어 햇볕 탈 걱정이라면 모자를 챙기면 좋겠다.

 

 

인근 가볼 곳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겁외사도 있고 목화시배 유적지가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는 시천면이 20분이면 갈 수 있다. 시천면 가는 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뽑힌 남사예담촌이 자리 잡아 시간 밖으로 여행 떠나기 그만이다. 또한, 시천면에는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인 기념관과 산천재, 덕천서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