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5. 4. 4. 06:30

경호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바람이 불어오는 마을경남 산청 성심원.

 

바람맞고 싶었다. 지친 일상을 훌훌 던져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325일 걸었다. 맑은 거울을 닮았다는 경호강은 언제나 바람이 시원하다. 진주에서 산청으로 가는 국도변과 함께하는 경호강에는 햇살 좋은 날이라 초록이 가득한 나뭇잎이 해바라기하고 있다. 유채꽃이 작은 밭두렁 사이사이 피어 바람에 한들거린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는 작은형제회에서 운영하는 한센인과 중증장애인의 생활복지시설이자 마을이 있다. 성심교를 건너자 행정명 풍현마을성심원이 나온다. 이곳은 지리산 둘레길 6코스(수철마을~어천마을)가 지난다.

    

지리산 둘레길 6코스(수철마을-어천마을)가 지나는 성심원 경호강변에는 봄 햇살이 새순에 가득 담겼다.

 

시계방향 교육회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스팔트 길 사이로 왼편에 몇 해 전에 심은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서 있고 오른편에 경호강이다. 50m 거리에 갈림길이다. 경사진 왼쪽으로 교육회관, 수도원, 성당이 오른쪽으로는 경호마을이란다. 시멘트가 한가운데에 있는 숲길이다. 길 사이로 초록빛 싱그러운 작은 나뭇잎이 햇살에 보석처럼 빛난다. 경호마을 입구는 성모상이 반긴다. 오른편으로 300m 더 가면 지리산 둘레길 산청센터와 게스트하우스 안내판이다. 그대로 직진하면 가축분뇨처리장을 지나 내리를 거쳐 내리저수지, 선녀탕을 지나면 산청읍으로 간다. 산청읍 지나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종점인 수철마을이 나온다.

    

화장실 건물은 한껏 빨대로 물을 마시는 얼굴이 한가득인 그림 그려져 있다.

 

오른편 경호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밭두렁 아래에 추운 겨울을 이겨낸 광대나물이 선보랏빛으로 걸음을 세운다. 중국에서는 보개초(寶蓋草)라고 부르는 데 보물(부처)을 싸고 있는 풀이라는 뜻이다. 꽃이 마주하는 작은 꽃잎에 싸여 있는 모양새다. 허리를 숙여 살펴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선보랏빛 꼬마의 색채 마술이 끝나자 하얀 매화가 기다린다. 매화 향에 취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가시로 온몸을 두른 엄나무가 나왔다. 아직 새순이 나오지 않았다. 봄철에 연한 새순을 살짝 데쳐 양념 해서 먹으면 독특한 맛과 향이 나는 새순 생각에 입가에 침이 꿀꺽 넘어간다. 엄나무 지나자 부추가 밭에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낯선 사람의 출현에 개들이 짖는다. 둔덕 아래에는 박 암브로이시오 수사가 밭에 거름을 주고 있다.

    

산청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 흔들의자는 지친 일상에서 벗어난 나를 위로한다.

 

농사짓는 수도자를 지나자 선홍빛 진달래가 저만치 손짓한다. 진달래 아래에 나에게 와서 쉬어라라는 글과 함께 프란치스코 성인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벽화를 지나자 빨대로 물을 마시는 얼굴이 큼지막하게 그려진 화장실이 나온다. 화장실 건물에 빨대로 물을 마시는 벽화라···. 생뚱맞은 듯 낯선 풍경에 입이 벌어지고 하얀 이를 드러내게 했다. 팝콘처럼 적정 온도가 오면 하얗게 튈 준비를 마친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에 흔들의자가 놓여 있다.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이다. 교육회관은 가톨릭 신자들이 일상의 모든 일을 피해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기도하는 곳이다. 벚나무 아래에 허리에 닿을 높이의 프란치스코 성인 동상이 있다. 낮은 곳으로 향한 성인의 삶 자체가 동상의 크기도 낮게 만들었을까···. 곧 있으면 이곳에도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 UhUh ) 둘이 걸어요~(벚꽃엔딩)’ 노래가 울려 퍼질 모양새다. 교육회관 한 모퉁이에는 동백나무가 아직은 자기만 바라보라는 듯 붉디붉은 꽃을 훈장처럼 달고 있다.

    

산청 성심원 대성당 뒤에 있는 납골묘원. 이곳에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의 시신을 마치 잠든 아기처럼 무릎에 가로질러 뉘인 피에타조각상이 한센인들의 영원한 안식처를 내려다보고 있다.

 

기지개를 켜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 나왔다. 대성당 뒤에는 납골묘원이 있다. 떠난 이를 기억하는 살아 남은 자들이 영원히 시들지 않는 조화(造花)로 기리고 있었다. 맨 위에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의 시신을 마치 잠든 아기처럼 무릎에 가로질러 뉘인 피에타조각상이 있다. 조각상은 한센인들의 영원한 안식처를 내려다보며 신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는 듯하다. 조각상 아래에는 한센인들의 보금자리 성심원을 후원하는 미라회창설자, 강복녀 루시아가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지리산 둘레길 게스트하우스 쉬는 발걸음’ .

 

묘원에서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옛 성심원 수녀원 자리에 지리산 둘레길 게스트하스(쉬는 발걸음)가 있다. 지리산 둘레길 산청센터가 1층에 자리 잡고 2층은 둘레 꾼들의 숙소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바라보는 성심원. 대성당 앞 벚나무 사이로 밭에서 일하고 돌아가는 성당 종지기 아저씨가 보인다. 대성당 앞에는 수도원이 보이고 그 아래로 수녀원이 나온다. 수녀원에서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남자 어르신들의 생활 주거 공간인 프란치스코의 집이다. 프란치스코의 집 옆으로 큰 층 건물이 나온다. 경증과 중증의 장애를 가진 한센인과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요양원이다. 요양원 앞 성모 동산을 지나면 넓은 잔디 운동장이 나온다. 운동장 사이로 노인전문주택인 가정사 4개 동이 남녘으로 줄 맞춘 듯 서 있다. 가정사 뒤편으로 성모동굴이며 십자봉, 기도의 집이 나온다.

    

프랑스 루르드 성모동굴을 본뜬 성모동굴로 가는 길.

 

프랑스 루르드 성모동굴을 본뜬 성모동굴로 걸음을 옮겼다. 소나무들이 좌우로 길다랗게 늘어선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이다. 이곳 성심원 어르신들도 부활절을 앞두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묵상한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성모동굴에서 잠시 땀을 훔치고 다시 걸어 나와 삼거리 앞에 섰다. 성모동굴 위쪽은 십자봉으로 가는 길이다. 너무 가파른 길이라 건강한 사람도 2~3시간이 걸린다.

    

지리산 둘레길 6코스 중 난코스인 가파른 아침재로 가는 길과 어천마을로 둘러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개울 위 다리 건너자 반기는 진달래를 구경하며 긴 의자에 앉았다.

 

노인전문주택 가정사뒤쪽으로 걸었다. 햇살에 무를 말리는 정경이 여느 시골 마을과 다름없다. 가정사 끝자락에서 별처럼 반짝이듯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의 별꽃들이 반긴다. 별꽃 무리를 지나자 머위꽃이 기다렸다는 듯 아는 체를 한다. 하얀 목련 뒤로 하고 경호강 변으로 걸었다. 가파른 아침재로 가는 길과 어천마을로 둘러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개울 위 다리 건너자 반기는 진달래를 구경하며 긴 의자에 앉았다. 걸어온 길과 살아온 길을 돌아보았다.

    

어천마을로 가는 지리산 둘레길 순화길은 벼랑 사이로 어른 한 명 지나갈 오솔길이다.

 

산수유를 닮은 노란 생강나무도 저만치 모습을 드러낸다. 걷는 길은 좌우에 진달래길이다. 진달래길이 멈춘 곳에 벼랑이다. 벼랑 사이로 어른 한 명 지나갈 오솔길이 나온다. 편백 숲이다. 나무 울창한 숲. 푸른 상록수에 가려 한낮인데도 길은 다소 어둑하다. 나무에 가려 하늘이 작다. 길은 오르락내리락. 무덤가에 노란 양지꽃이 피었다. 무덤을 지나쳐 미끈하게 하루 높이 솟은 나무 사이로 난 흙을 밟으며 걸었다. 푹신한 흙이 시멘트와 아스팔트에 지친 발을 평안하게 한다. 푹신한 흙이 시멘트와 아스팔트에 지친 발을 평안하게 한다. 대전에서 온 산악회에서 나무에 매단 리본이 정겹다. ‘구름 나그네바로 이 길을 걷는 내가 구름 나그네다. 지나온 성심원이 보인다. 어천마을까지는 왕복 1시간 정도다.

    

지리산 둘레길 경호강변은 또한 성심원 어르신들의 산책길이다. (사진은 허락을 받았습니다.)

 

다시 성심원으로 길을 돌아섰다. 도토리나무가 터널을 이룬 경호강 변은 이곳 어르신들의 산책길이다. 길 건너편에서 본 나루터가 나왔다. 나루터를 지나 정자나무 아래에 잠시 앉았다. 바쁠 게 없는 내 안의 숨을 고른다. 가정사와 잔디 운동장 사이를 지났다. 도토리나무 아래 배가 놓여 있다. 성심원은 세상과 소통하는 다리가 없으면 영락없는 육지 속의 섬이다. 그래서 뭇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피해 1959년 이곳에 터전을 잡은 모양이다. 반송 한그루 한가운데 있는 작은 로터리를 지나자 두 팔 벌려 예수님이 반긴다.

    

세상과 소통하는 다리가 없으면 영락없는 육지 속의 섬이었던 성심원에는 배가 있다. 그래서 뭇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피해 한센인들이 1959년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

 

요양원 가는 길 화단에 평화를 구하는 기도비가 서 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을 읽는 동안 맑아지고 고요해진다. 바람이 불어오는 마을, ‘성심원 둘레길은 나를 돌아보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