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해찬솔 2015. 7. 22. 06:30

공룡 없는 쥬라기 공원에서 가슴이 뻥 뚫리다

경남 진주 경남과기대 교정을 거닐며

 

칼처럼 날카롭고 톱처럼 삐죽삐죽한 이빨을 가진 티라노사우루스가 없다. 한번 물면 어떤 사냥감이라도 놓치는 법이 없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없는 쥬라기 공원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튼튼한 꼬리와 뒷다리를 이용해 사냥감을 향해 높이 뛰어올라 뒷다리에 있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냥하는 벨로키랍토르도 없다. 그런데도 쥬라기 공원이다. 쥬라기공원을 찾아 진주 도심 속 대학으로 갔다. 350m 메타세쿼이아 길을 천천히 걸었다. 눈도 맑아지고, 폐도 깨끗해지고 머리도 똑똑해진 기분이다. 곧게 뻗은 거목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난 길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이곳이 진주 번화가 맞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경남 진주 경남과기대 교정에는 어른 두 명이 손 맞잡아야 할 정도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들이 미끈한 자태를 드러낸다.

 

19일 오전 830. 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냉장고에서 오이를 꺼내 먹었다. 일요일이라 막내를 제외하고는 아직 자고 있다. 밤 근무의 흔적을 샤워로 씻어내리고 집을 나섰다. 시내버스에 올랐다. 일요일 아침의 느긋함이 버스가 지나는 곳곳에 비친다. 진양교를 지나면서 남강 벼랑의 절경이 아름다운 뒤벼리를 지났다. 정류장에 내렸다. 오랜만에 보는 공중전화 부스. 전화기 옆에는 빨대가 꽂힌 요구르트가 있다. 달달한 대화가 오갔을까. 문득 궁금했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100주년기념관으로 들어갔다. 백문동이 심어진 화단에 보랏빛 열매가 알알이 맺혔다. 소나무 한 그루가 수액제를 맞고 있다. 건물을 가로질러 학교로 가자 회화나무가 먼저 반긴다. 궁궐 건물 중 대외적 정무를 보던 외조(外朝)는 왕이 신하들을 만나 정사를 나누는 곳이다. 이 중에서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삼공자리는 회화나무를 심어 표지로 삼았다고 한다. 회화나무를 학자수(學者樹)라고 하는데 나무의 뻗은 모양이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고 한다.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다짐으로 선비들이 마을 입구에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학문의 전당인 이곳 회화나무도 대학생들의 다짐인 양 굳센 기상이다.

 

 

경남 진주 경남과기대 교정에 있는 칠암동천’. 경남과기대와 경상대학교병원 사이에 일곱 개의 큰 바위가 있었는데 치리미라했다. 여기에서 칠암동으로 명명되었다.

 

회화나무 옆에는 태산목이 있다. 태산목에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로 보면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웅장하게 열 지어 서 있다. ‘플라타너스 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른 두 명이 손을 맞잡아야 할 정도로 둘레가 큰 플라타너스 7그루가 미끈한 자태를 뽐낸다. 플라타너스 껍질이 영양 부족해 마른버짐처럼 얼룩덜룩하다고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버즘나무다. 북한에서는 오히려 낙엽 진 겨울이면 방울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열매의 특징을 살려 방울나무라고 한다. 이름도 이왕이면 멋지게 지어 불러 주었으면 좋았을 것인데 아쉽다. 플라타너스의 얼룰달록한 껍집은 생김새와 달리 매끈하다. 매끈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시원하게 하늘 향한 모양새가 기상이 넘친다.

 

플라타너스 아래 긴 의자에 잠시 앉았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으로 시작하는 시인 김현승의 시 <플라타너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꿈을 찾아 교정을 오른쪽으로 해서 둘러보기로 했다. 플라타너스 길을 지나 왼편으로 칠암동천이라 새겨진 바위가 나온다. 경남과기대와 경상대학교병원 사이에 일곱 개의 큰 바위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 바위들이 있던 곳이 치리미라 했는데 여기에서 칠암동으로 명명되었다. 바위 앞에는 멀구슬나무가 서 있다. 이 학교의 교목이기도 한 멀구슬나무 열매는 전설 속 동물인 해태가 먹고 산다고 한다. 열매는 달콤해 먹을 수 있지만, 씨는 독성이 있어 약 이외에는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

 

 

꽝꽝나무 이파리에 매미 유충이 허물을 벗어 우화(羽化)한 흔적이 남아 있다. 성충이 되기까지 땅속에서 몇 년의 시간을 보냈을까 생각하니 이 껍질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칠암동천 옆에는 소나무도 있고, 돈나무도 있다. 엽전을 닮아 돈나무라 불렸단다. 돈나무 옆에는 불에 들어가면 잎 속의 공기가 팽창해 꽝꽝소리가 난다는 꽝꽝나무가 있다. 꽝꽝나무 이파리에 매미의 껍질이 매달려 있다. 매미 유충이 허물을 벗어 우화(羽化) 과정을 거쳐 성충이 되기까지 땅속에서 몇 년의 시간을 보냈을까 생각하니 이 껍질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짧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이런 허물을 벗을 단계가 몇 번이나 왔던가 나에게 되물었다.

 

매미 허물을 뒤로하자 하늘 높이 솟아오른 낙우송과 들메나무, 메타세쿼이아, 측백나무들이 나온다. ‘청담원이다. 낙우송 아래에는 이농치국(以農治國)’이라 적힌 비석이 있다. 그 뒤로는 축구 전국 제패 기념비도 나온다. 염주나무 옆에는 청담대종사 시비와 흉상이 있다. 청담 스님은 광복 이후 왜색불교인 대처승 제도를 청산하기 위한 불교 정화운동을 이끌고 불교 현대화에 애쓴 분이다. 스님의 시 마음의 노래(비심(悲心)’가 새겨져 있다.

 

 

광복이후 왜색불교 대처승 제도를 청산하기 위해 불교 정화운동에 힘쓴 청담스님의 흉상과 시비가 청담원에 있다.

 

자비를 가지고 부르는 소리에는 /하늘도 움직이는 힘이 있다.//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웃는 곳에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영원한 평화가 있다. //작은 친절이 쌓여서 / 큰 공덕이 생겨난다. //꽃을 보고 기뻐하는 것보다도 /꽃을 피워 놓고 /남을 기쁘게 하는 마음, /이것이 곧 자비의 마음씨다.”

 

청담원에는 가시나무를 비롯해 여러 나무가 있지만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나무들이 있다. 편백과 일본전나무, 삼나무다. 모두가 일본 원산이다. 그중에서도 삼나무는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과 떼레야 델수 없는 나무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우리 수군이 왜군을 맞아 이길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삼나무에 있다. 일본 수군의 함선은 결이 비교적 촘촘하지 못한 삼나무로 만든 데 반해 우리 수군은 튼튼한 소나무 만들어 함선 충돌에서 단연 우위였기 때문이다. 삼나무는 일본 건국신화에도 나온다. 스사노오노미코토라는 신이 자신의 수염을 뽑아 흩어지게 하니 이게 삼나무가 되고 가슴의 털은 편백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경남과기대 교정의 나무들은 서로를 그리워하는 듯 의지하며 숲을 이뤘다.

 

나무들의 내뿜는 빛깔은 그냥 푸른 빛이 아니다, 싱그러운 초록이다. 청담원 나무들 사이로 긴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아쉽게도 마신 뒤 함부로 버린 캔 등이 함부로 버려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나무 곳곳에는 매미의 허물들이 붙어 있다. 나무에는 매미 소리가 가득했다. 청담원 옆에는 박물관이 있다. 평일 9시부터 6시까지 열람할 수 있다는 알림문이 적혀 있는데 전화(055-751-3191) 연락 후 열람이 가능한 모양이다. 아쉽게도 공휴일은 휴무라 들어가 보지 못했다. 박물관 앞에는 진농종(晋農鐘)’이 역사를 기억하며 세워져 있다.

 

 

꽈리모양의 모감주 열매가 귀엽게 매달려 있다.

 

종을 지나 걸어가자 꽃댕강나무가 하얗게 무리 지어 꽃을 피웠다. 나뭇가지를 꺾으면 댕강하는 소리가 난다는 말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뭇가지를 꺾었지만 옅은 하는 소리만 났다. 댕강나무는 희귀수종이고 우리가 만나는 댕강나무는 원예품종이라 꽃댕강나무. 댕강나무 옆에는 등나무가 있다. 등나무 아래에 잠시 앉았다. 꽈리모양의 열매가 귀엽게 매달린 모감주나무가 등나무 옆에서 부른다. 모감주나무 옆에는 당쟁이 덩굴이 멋들어지게 건물 외벽을 감싸고 있다.

 

식수 탑에 이르자 다시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7그루가 나타난다. 학교 밖으로는 진주소방서 천전119안전센터 건물이 보였다. 오른쪽으로 돌았다. 가래나무가 나왔다. ‘오자마자, 가래나무라는 노래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흥얼거렸다. 손가락 하나 길이 정도의 이파리가 나란히 달려 층을 이루고 가지 끝에 둥글게 무리 지어 매달린 모양이 싱그럽다. 싱그러움에 고개를 들어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가래나무 아래에 서자 오자마자, 가래나무라는 노래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흥얼거렸다.

 

우스갯소리로 의사가 싫어한다는 나무, ‘무환자나무가 저만치 보인다. 무환자나무가 있는 건물 3층은 이 학교 간호학과가 있어 우연치고는 절묘하다. 근심과 걱정이 없다는 무환자나무 뒤로는 쥬라기공원이다. 공원 안에는 제우정(第雨亭)이란 정자가 있다. 정자 앞 나무 사이로 놓인 탁자와 의자에 학생이 앉아 공부하고 있다. 간단한 주전부리를 준비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 되리라. ‘쥬라기공원주위에는 개서어나무와 단풍나무, 굴참나무, 가시나무들의 잎들이 파릇파릇하다. 나무들은 서로를 그리워하는 듯 의지하며 숲을 이뤘다.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 애틋한 그 마음을 가지로 뻗어 /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정희성 시 그리운 나무중에서)

 

 

경남과기대 쥬라기공원.

 

그리워하는 나무에게 갈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이 나무에게 느껴진다. 낙우송 아래에는 차나무도 심겨 있다. “하는 일이 잘 안 될 때는 ''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라는 이병률 시인의 글이 떠올라 문득 숲 속에서 숲을 중얼거렸다. 쥬라기공원 옆길은 사월로. 사월로 옆에서는 공차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는 일이 잘 안 될 때는 ''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라는 이병률 시인의 글이 떠올라 문득 숲 속에서 숲을 중얼거렸다.

 

사월로를 지나자 문기둥이 나오는데 옛 정문이다. 진주시 중안동에 있던 교사(校舍)1931년 이곳 칠암동으로 이전한 직후의 학교 정문이라고 한다. 경남과기대는 그 연원을 중안동에 있던 낙육재에서 시작한다. 낙육재는 1721년 경상도 감영이 있던 대구에 설립된 교육서재였다. 1896년 경상도가 남북으로 분리되고 진주에 경남도 감영이 들어서자 낙육재가 생겼다. 설립된 지 1년이 지난 1897년 관립 진주낙육학교로 바뀌었다. 이곳 유생들이 을사늑약 반대 의거를 계획하자 일제는 이곳이 반일구국운동의 거점이 되는 것이 두려워 진주공립실업학교로 바꾼 뒤 당시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 지역, 현재의 칠암동으로 이전시켰다. 이후 진주공립농업학교로 개편하고 이어 진주산업대학교를 거쳐 오늘날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 이르렀다. 당시 낙육재가 있었던 자리는 도립 자혜의원이 그 자리로 옮기고 1983년 진주의료원이 되었다가 터가 매각되어 2008년에 중앙병원이 개원했다.

 

 

350m에 걸쳐 메타세쿼이아가 펼쳐져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옛 정문 앞은 메타세쿼이아길이 나온다. 아득한 옛날, 공룡과 함께했던 나무로 화석나무로 유명하다. 담양과 순창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전국 명소다. 여기 이 길도 손색이 없다. 멀리 담양으로 길을 나설 필요가 없다. 350m 메타세쿼이아 길을 천천히 걸었다. 눈도 맑아지고, 폐도 깨끗해지고 머리도 똑똑해진 기분이다. 곧게 뻗은 거목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난 길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이곳이 진주 번화가 맞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경남과기대 교정 내에 있는 도란 공원.

 

메타세쿼이아 길옆 체육관 앞에는 일편단심 무궁화가 피었다. 무궁화 너머에는 분수대가 시원하게 물을 뿜는 도란 공원이 나왔다. 층층나무가 내려다보는 도란 공원 주위 연못에 아장아장 걷는 아이 곁에서 부부가 도란도란 정답게 이야기 나눈다. 금실 좋은 부부를 닮은 자귀나무가 선분홍빛 꽃을 환하게 피웠다. 학교 한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만 빙 둘러 거니는데도 숲 속에 온듯 상쾌하다. 젊은 연인이 무슨 까닭인지 바람을 가르며 교정을 내달린다. 그들 사이로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교정을 산책하는 젊은 엄마의 모습도 여유롭다.

 

 

 

학교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번잡한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 간이 정류장이 나온다니 믿기지 않는다. 도심 속에 이런 청량한 숲이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책이 날개로 힘껏 날갯짓하고 학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부조가 새겨진 학교 정문이 나왔다. 정문 너머 4차선 도로는 일요일을 잊은 듯 쉼 없이 오가는 차들과 사람들로 북적인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번잡한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 간이 정류장이 나온다니 믿기지 않는다. 도심 속에 이런 청량한 숲이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숲사이로 바람 한 줄기 불어온다. 바람이 마음마저 설레게 한다. 초록 물빛에 샤워한 듯 온몸이 개운하다. 밤 근무 피로를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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