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5. 12. 2. 06:30

산청군 생비량면 도전리 마애불상군을 찾아서

 

밤 근무를 마치자 긴 밤의 피로가 한순간에 몰려온다. 잠시 내게 쉼표를 주기 위해 1127일 경남 산청에 있는 직장에서 집이 있는 진주로 가면서 생비량면 쪽으로 돌아갔다. 아파트에 사는 나처럼 부처님 스물 아홉분이 1, 2, 3, 4층 아파트처럼 계신 도전리 마애불상군에서 아침 해를 맞았다.

 

 

경남 산청 맛집 중 하나인 한빈식육식당 뒤로 양천강을 굽어보는 벼랑이 나온다.

 

낮 근무자와 교대하고 직장을 나선 시각은 오전 7. 주위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산청- 진주 국도 3호선을 타고 가다가 신안면 원지에서 생비량면 이정표와 함께 좌회전했다. 문대리 삼거리에서 합천, 진주 쪽으로 우회전했다. 천주교 장죽 공소 앞을 지나자 한빈식육식당이 나온다. 괜스레 빈속을 따뜻하게 국밥 한 그릇 생각 간절해 침이 고인다. 산청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은 특이하게 종이를 깔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 생고기 등심모둠 200g 18,000원이고 소고기국밥 7,000원이다. 여름에 나오는 냉면은 육전이 올라오는 진주냉면이다. 밤새워 일한 까닭인지 자꾸 먹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경남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이 있는 어은마을 입구

 

식육식당 뒤편으로 가면 양천강을 굽어볼 수 있는 벼랑이 나온다. 벼랑 위로 소나무들이 하늘 향해 뻗어 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든 적벽이다. 바둑판같이 넓은 도전리 들판은 가을걷이 끝나고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늦가을 들판의 속살을 바람 몇 줄기가 지나고 햇볕이 고이 들었다.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덕분에 벼랑에 접근하기 쉽다.

 

작은 적벽에서 물러 나와 불과 2~3분 거리에 있는 도전교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했다. 어은마을 입구다. 농협창고 앞에는 돌무더기가 있다. 시간을 먹은 새끼줄이 처져 있다. 돌무덤 위에는 사람 얼굴 형상의 모양의 돌이 맨 위에 놓여 있다. 마을 사람들의 바람이 돌 하나하나에 담겨 있을 생각에 문득 숙연해진다. 돌무덤 앞에는 뽕나무들이 줄지어 심겨 있다.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은 부처님 스물 아홉분이 1, 2, 3, 4층 아파트처럼 층단에 새겨져 있다.

 

농협창고에 차를 세우고 소나무에 둘러싸인 무덤 옆으로 걸어갔다. 차가 쌩쌩 다니는 차도 옆 벼랑에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아 수월하게 올라갔다. 하나, , ~ 100개까지 세면서 부처님을 뵈올 마음에 신자도 아닌데 마음이 들떴다. 100개를 넘어가면서 귀찮아 그만두었다. 아마 130여 개 되는 모양이다.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9호인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에 따르면 마애불상은 자연암반의 벽면에 30cm 크기로 모두 4단으로 새겨져 있으며 현재 확인된 불상은 총 29기이나, 처음에는 이보다 더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중략) 이렇게 많은 불상이 무리 지어 배치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불상 옆에 ◯◯선생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혀 있다.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은 연꽃무늬 받침 위에 가부좌 한 채 앉아 있는 부처님의 형태만 보일 뿐 미소는 보이지 않는다. 마모가 심하다.

 

푸른 하늘은 아직 붉은 아침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궁금증을 안고 이제 다시 아래로 벼랑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다보이는 가파른 계단 난간 아래로 양천강이 한가득 눈에 들어온다. 벼랑에 바위가 나온다. 아침 햇살이 아직 깊이 들지 못해 부처님들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 맞은 편에 있는 집현산이 수묵화처럼 산 그림자의 농도를 드러낸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의 마애불상과 달리 여기 부처들은 미소를 볼 수 없다. 얼굴이 마모되어 형태 이외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연꽃무늬 받침 위에 가부좌 한 채 앉아 있는 부처님의 형태만 보일 뿐 미소는 보이지 않는다. 마모가 심하다. 무릎을 꿇고 가장 낮은 층단의 부처님부터 천천히 보았다. 30cm가량의 부처님이 대부분이지만 손바닥만 한 부처님도 있고 그 열 배만한 부처도 있다. 한 분 한 분 안내판에 소개한 것처럼 29구의 부처님을 숨은 그림처럼 찾기처럼 열심히 찾았다. 내 눈에는 스무 명의 부처님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해를 안고 참선하는 부처님의 모습에서 나도 해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정갈한 마음으로 바람을 빌었다.

 

불상군 맞은편 해가 뜨는 곳을 바라보았다. 집현산이다. 까치봉이다. 풍경은 수묵화처럼 산 그림자의 농도를 드러낸다. 수묵화 같은 풍경 위로 구름 한 장 지나간다.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은 벼랑에 새겨져 그 당시에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을 듯하다.

 

마애불상군에서 내려와 길가로 갔다. ‘낙석주의라는 교통표지판이 벼랑의 존재를 일깨운다. 철제로 차도로 떨어지는 돌멩이를 차단하려고 세워진 울타리에 빨간 장미 한 송이가 계절을 잊은 양 반긴다. 지금은 나무 계단으로 쉽게 벼랑에 올라가 부처님을 볼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을 듯하다.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자 마치 머리카락처럼 소나무들이 불상 무리 위에 있다.

 

 

도깨비 전설이 깃든 양천강 장란보가 도전리 마애불상군에서 승용차로 불과 5분 이내 거리에 있다.

 

길가에서 차를 세운 곳으로 가려다 마을 입구에 있는 도전교로 걸어갔다. 다리에서 양천강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드는 자리마다 산자락이 곱다. 강에는 바위들이 듬성듬성 점박이처럼 박혀 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장란보가 있다. 문득 도깨비보라고 불리는 장란보 전설이 떠올랐다.

양천강에 보가 있는데 물살이 너무 빨라 번번이 홍수에 휩쓸려 가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운창 이시분 선생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를 만들 자리를 가르쳐 주었다. 다음날 새벽에 운창 선생이 강에 나가보니 노인이 말한 그 자리에 하얀 서리가 내려 마치 줄을 그어놓은 듯하였다. 그곳에 표지를 세우고 공사를 하였으나 급류로 인해 보를 막을 일이 쉽지 않았는데 어느 날 밤에 도깨비들이 몰려와서 메밀 죽을 끓여달라고 하기에 마을 사람들이 집집이 메밀 죽을 끓여서 대접했다. 그랬더니 도깨비들이 달려들어 큰 바윗돌을 굴려다가 며칠 만에 100m가 넘는 보를 완성했다. 그러나 메밀 죽을 못 얻어먹은 도깨비가 돌 한 개를 빼어버려 늘 그곳에 탈이 났다고 하여 도깨비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을 바라보자 깎아지른 절벽의 위용에 햇살이 살짝 걸친 모양이 따뜻하다.

 

물굽이를 보고 있으면 집현산의 정기가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듯 시원하다. 잠시 고개를 들어 다시 마애불상군을 바라보자 깎아지른 절벽의 위용에 햇살이 살짝 걸친 모양이 따뜻하다. 절벽 위 하늘로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간다. 잠시 집으로 가는 길을 잊은 나를 새들이 일깨운다. 밤 근무의 피곤함에 잠시 쉼표를 찍은 퇴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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