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5. 12. 5. 06:30

궁금해서 걷자 가을 끝자락을 움켜쥐었다

경남 산청 신안면 산책로를 따라서

 

진주에서 궁금해서 왔어요~ 운동하러

털모자에 긴 방한화 신고 두툼한 겨울 잠바 입은 50대 초반의 중년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 경남 산청 신안면 엄혜산으로 우산을 지팡이 삼아 올라간다. 사내처럼 나 역시 진주에서 오가며 궁금했다. 그래서 122일 여길 걸었다. 산청군 신안면 양천강 산책로가 특히나 밤이면 조명을 받아 빛나는 다리가 궁금했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원지산책로

 

신안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양천강으로 가는 길은 5분도 걸리지 않는다. 남쪽으로 그냥 걸으면 나온다. 더구나 지리산을 닮은 듯 아주 뾰족한 형상을 한 토현교는 한눈에 쉽게 찾을 수 있다. 토현교 3개의 교각에는 한방과 딸기, 래프팅 같은 상징이 각각 그려져 있다. 교각 위에는 지리산을 닮은 산 모양의 아치가 있고 가운데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펜을 닮은 주탑이 우뚝 솟아 있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토현교.

 

다리를 건너면서 아래 양천강을 바라본다. 이편과 저편의 습지에 겨울 철새들 자맥질이 한창이다. 다리를 건너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 양천강 옆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강 건너는 나무 산책로인데 반해 여긴 시멘트 포장길에 가운데 우레탄이 깔렸다. 엄혜산 정상과 법륜암으로 가는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엄헤산과 양천강를 거니는 원지산책로.

 

누더기가 해져서 속에서 나온 솜털 모양 같은 흰 깃털의 열매가 있다는 주홍서나물이 갈림길에서 다소곳이 고개 숙여 내 결정을 기다린다. 정상까지 불과 0.85km. 한달음에 걸어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올 듯 하늘은 회색빛이라 조심스럽고 낮은 산도 만만하게 볼 수 없어 산책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갈림길을 벗어나 강변 산책로로 걸어가자 산 쪽에는 잎들이 다 떨어지고 갈색 털을 가진 열매만 유난히 덩그러니 남은 털굴피나무가 서 있다. 아래에는 미국쑥부쟁이가 갈색 나뭇잎을 배경으로 독사진 찍듯 서 있다, 보랏빛 꽃은 마치 추워서 입술이 파래진 모양이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엄헤산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대나무 숲길.

 

엄혜산 옆으로 난 벼랑을 따라 난 산책로를 지나자 잠수교가 나온다. 그대로 산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자 대나무 숲길이 나왔다. 강물 소리가 사각사각 대나무 소리와 함께 합창으로 들린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이 푹신푹신.

 

 

경남 산청군 신안면 법륜암 앞에서 만난 플라타너스.

 

대나무 숲길이 끝나자 커다란 버즘나무가 나왔다. 그 옆에 여느 시골집 같은 슬래브 건물이 법륜암이다. 법륜암은 낙엽들에 둘러싸였다. 주인 없는 암자로 들어가자 입구에 수국이 있다. 모두 화려했던 지난 시절을 잊고 꽃을 떨구었는데 두 송이 옅은 보랏빛 수국이 꽃을 피웠다. 수국 맞은편 불탑 위에 동자승 작은 조각상이 3개 올려져 있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법륜암 입구에 수국이 있다. 모두 화려했던 지난 시절을 잊고 꽃을 떨구었는데 두 송이 옅은 보랏빛으로 꽃을 피웠다.

 

법륜암을 나와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를 올려다볼 때 대나무 숲길 사이로 진주에서 온 50대 초반의 사내를 만난 것이다. 사내는 산 정상으로 가는 다리를 건넜고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나왔다. 잠수교를 건넜다. 지나온 산책로가 저기 아슬한 벼랑에 있었다. 잘 가꾸어진 길 덕분에 위험한 벼랑을 쉽게 돌아 여기까지 왔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원지산책로가 아슬한 엄혜산 벼랑에 있다. 잘 가꾸어진 길 덕분에 위험한 벼랑을 쉽게 돌아 여기까지 왔다.

 

남으로 기다랗게 향한 둑을 걸었다. 둑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 양천강이, 오른쪽에 경호강이 흐른다. 두 강물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저기다. 높은 곳의 경호강이 얕은 양천강으로 흘러 하나가 되어 남강으로 흘러간다. 둑 끝에는 빨래하기 좋은 너른 시멘트 바닥이 놓여 있다. 둑 끝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자 백마산과 적벽산이 보인다.

 

 

경남 산청 양천강과 경호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본 백마산과 적벽산, 엄혜산(왼쪽부터)

 

둑에서 내려와 자갈을 밟으며 두 물이 만나는 곳으로 좀 더 걸었다. 엄혜산의 벼랑이 아름답다. 아래 나무들이 곱다. 물에 비친 산과 나무는 파스텔로 그린 그림처럼 따뜻하다. 이미 가버린 가을의 끝자락을 움켜쥐고 있다. 따뜻한 그림 같은 풍광 끝에는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지나고 그 아래로 성철스님 생가인 겁외사가 있다. 을씨년스런 하늘을 날려버릴 듯 두 물이 하나 되는 곳에 가자 더욱 물소리는 맑고 컸다.

 

 

경남 산청군 양천강과 경호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비친 산과 나무는 파스텔로 그린 그림처럼 따뜻하다. 이미 가버린 가을의 끝자락을 움켜쥐고 있다.

한참을 구경하다 다시 돌아 나왔다. 이곳으로 걸어올 때 보았던 새 한 마리가 여태 그대로다. 수행하는 수행승처럼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기다란 다리를 강가에 내디디고 꿈쩍도 하지 않는 철새를 지났다.

 

수행승 같은 철새를 지나자 작은 돌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는 하얀 왜가리 한 마리 눈에 들어온다. 왜가리의 하얀 날개와 녹 푸른 강물이 아름다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데 오리떼들이 하얀 왜가리에게 마치 돌진하는 모양새로 우르르 다가간다. 왜가리는 무덤덤하다. 그들을 구경하는 나만 카메라 셔터 누르기 바빴다.

 

 

왜가리의 하얀 날개와 녹 푸른 강물이 아름다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데 오리떼들이 하얀 왜가리에게 마치 돌진하는 모양새로 우르르 다가간다. 왜가리는 무덤덤하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서둘러 마을 쪽으로 걸었다. 양수정(兩水亭)에 올랐다. 겨울비가 두 강물 위로 사정없이 떨어진다. 고독한 수행승같이 꼿꼿이 서 있던 새는 비를 맞으며 그대로 있을지 궁금했다. 정자에서 나와 근처 커피가게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오늘 산책길을 되새김질했다.

 

궁금해서 걸었던 길은 가을의 끝자락을 움켜쥔 따뜻한 풍광에 깊어갈 저만치 가버린 가을을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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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밤 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