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6. 5. 21. 10:10

경남 남해군 창선도 왕후박나무를 찾아서

 

비가 그친 뒷날, 바람은 시원했다. 지리산에 둘러싸인 경남 산청 장애인생활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바다가 주는 즐거움에 며칠 전부터 설렜다. 아마도 고단한 육체에 지친 마음은 바다를 그리웠는지 모른다. 517일 짭조름한 바다를 찾아 장애인 3명과 나들이를 나섰다.

 


경남 사천 남일대에서 바라본 코끼리 바위와 통영 사량도

 

먼저 삼천포항에 들어가기 전에 해안도로로 달리면서 바다의 푸른 빛으로 마음을 푸르게 물들였다. 남일대 해수욕장에 차를 세우고 코끼리 바위며 배를 타고 들어갈 통영 사량도를 먼발치에서 구경했다. 사량도를 한 바퀴 일주하고 회를 먹고 나왔다. 돌아가기 아쉬워 창선도에 숨은 비밀의 정원을 찾아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로 꼽히는 남해-삼천포대교를 건넜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로 꼽히는 남해-삼천포대교

 

다섯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남해-삼천포대교 중 사천 늑도를 지나면 남해군 창선면이다. 찾는 나무를 안내하는 이정표를 보지 못해 차를 세워 모를 심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다시 돌아서 늑도 가는 다리 왼편으로 가면 단항 마을이 나와요. 마을에서 한눈에 보일 겁니다.”

 


남해군 창선면 당항 마을에 있는 푸조나무는 수령이 200년이 넘었다.

 

차를 돌렸다. 대교에 이르지 않았는데 마을이 나왔다. 마을 가운데에 커다란 나무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다. 농로를 따라 들어갔다. 마을 회관에 차를 세우고 50m 남짓 거리를 휠체어를 밀며 구경하러 갔다.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 많이 심는 푸조나무다. 수령 200년이 넘었다. 푸조나무는 오래 살면서도 바람에 넘어가지 않는 지혜를 발휘했다. 뿌리 근처에 두꺼운 판자를 세워둔 것 같은 판근(板根)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나무 구경하는 사이 함께 간 이들은 온통 마늘밭인 나무 근처에만 눈길을 준다. 마늘로 만든 각종 반찬이며 양념 생각에 바쁜 모양이다.

 


온통 마늘밭인 남해 들녘. 오는 527일부터 29일까지 마늘축제가 열린다.

 

내가 찾는 나무가 아니라 다시 마을회관 쪽을 돌아 나오는데 농활을 앞두고 사전답사를 온 대학생을 이끌고 마을회관으로 들어서는 이장을 만났다. “당항이 아니고 단항마을입니다. 늑도 가기 전 왼편으로 가면 됩니다.” 여기는 단항 마을이 아니라 당항 마을이었다. 다시 차에 올라 길을 나섰다. 사천 늑도로 가기 전 왼편으로 3분 정도 더 들어가자 단항 마을이 나오고 하늘과 맞닿은 바다의 푸른빛이 겹치는 부근에 아름드리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이순신나무라는 별명을 가진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

 

천연기념물 제299호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라는 안내판도 나온다. 괜스레 가슴이 설렌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나무 근처에 차를 세웠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서자 밑에서 갈라져 올라온 11개의 가지가 우산처럼 펼쳐져 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이순신 나무라는 별명을 가진 나무에 손을 얹었다. 단항 마을은 여수와 통영의 한려수도 가운데쯤에 있는데 장군은 이 부근에서 일본군을 물리치고 이곳에 올라와 왕후박나무 그늘에서 쉬었다고 한다.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는 밑에서 갈라져 올라온 11개의 가지가 우산처럼 펼쳐져 있다.

나무 이름처럼 나무는 후박하고 넉넉하게 그늘을 내어준다. 나무는 용왕이 보낸 나무이기도 하다. 500년 전에 이 마을에서 고기잡이하는 노인 부부가 어느 날 큰 고기를 잡았는데 뱃속에서 이상한 씨앗이 나와 그 씨앗을 뜰 앞에 뿌린 것이 자라 현재에 이르렀다 한다. 마을 사람들은 큰 고기를 통해 용왕이 보낸 어부를 보호하는 나무라며 해마다 제사를 올린다.

 


울릉도에서 유명한 호박엿이 예전에는 후박 엿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齒牙)에 좋은 후박 껍질을 약용으로 후박 엿을 만들어 먹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호박엿이 되었다고도 한다.

 

우산처럼 하늘의 햇살을 가린 나무 그늘이 시원한 단항 마을 정자나무는 노동의 피로를 씻는 쉼터요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기도 하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의 상당수를 차지할 정도로 아름드리나무가 많았을 후박나무는 요즘 큰 나무를 구경하기 어렵다. 울릉도에서 유명한 호박엿이 예전에는 후박 엿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齒牙)에 좋은 후박 껍질을 약용으로 후박 엿을 만들어 먹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호박엿이 되었다고도 한다. 나무껍질은 후박피(厚朴皮)’라고 하는데 동의보감에 따르면 배가 부르고 끓으면서 소리가 나는 것, 체하고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을 낫게 하며 위장을 따뜻하게 하여 장의 기능을 좋게 한다. 설사와 이질, 구역질을 낫게 한다고 한다.



남해 왕후박나무의 늘어진 그늘에서 일상의 고단을 쉬어 가기 좋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넉넉한 인심에 위로받고 희망을 품는다.

 

비릿한 삶의 향기 날 것으로 펄떡이는 바다와 함께 만난 용왕과 이순신 장군의 전설은 후덕한 삶의 힘을 얻는 기회였다. 늘어진 그늘에서 일상의 고단을 쉬어 가기 좋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넉넉한 인심에 위로받고 희망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