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7. 2. 2. 07:00


500년 묵은 은행나무가 멋지게 반기는 경남 산청향교

 

정유년 새해를 앞둔 섣달그믐인 127. 당직 근무 중 쉬는 시간에 잠시 일터를 벗어 나왔다. '쉼표'를 찍었다. 나무에 기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2016년 한 해 동안 고생한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경남 산청군 산청읍 전화국 뒤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산청향교가 나온다.

 

경남 산청군 산청읍 전화국 뒤편 골목으로 들어가 빈터에 차를 세웠다. 모퉁이 구멍가게에 붙은 공중전화통에는 전화기가 없다. 신발이며 잡동사니가 똬리를 틀고 있다. 골목으로 들어가자 붉은 홍살문이 보인다. 산청향교다.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하마비(大小人員皆下馬)가 옆에 서있다. 존경심의 표시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하마비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는 뜻이다.

 


산청향교 홍살문 앞에서 예를 갖추려고 애쓸필요는 없다. 홍살문 옆에서 햇살에 샤워하는 수령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의 위엄에 절로 마음을 잡는다.

 

산청향교 홍살문 앞에서 예를 갖추려고 애쓸필요는 없다. 홍살문 옆에서 햇살에 샤워하는 수령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의 위엄에 절로 마음을 잡는다. 산청향교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한 산 증인인양 우뚝 서있다. 어제와 오늘이 공존한 느낌이다.

 

은행나무를 한참 들여다보자 고양이 한 마리 슬그머니 지나간다. 향교 앞 안내판을 읽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산청향교의 정문이 욕기루 앞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안내판을 읽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향교는 옛 성현을 받들며 지역 사회의 인재를 양성하고 미풍양속 교화를 목적으로 고려 시대부터 설립돼 조선말까지 지방 교육의 중심이었다. 산청향교는 1440(세종 22)에 세워진 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755(영조 31) 지금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산청향교

 

향교는 교육과 제례의 두 영역으로 나뉜다. 일직선을 축으로 앞쪽에는 유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明倫堂)이 있다. 명륜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생활공간인 동서재(東西齋)가 있다. 뒤쪽에는 공자의 위패(位牌)를 모시는 전각(殿閣)인 대성전(大成殿)이 있다.

 


산청향교 명륜당에서 바라본 정문인 욕기루와 산청읍내

 

이곳 산청향교는 어떤 까닭인지 명륜당과 대성전이 일직선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흔히 성균관이나 향교의 문묘(文廟)에서 공자 위패를 중심으로 좌우에 공자의 제자유현(儒賢)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대성전 앞 동쪽과 서쪽에 세우는 건물인 동서무(西廡)가 없다.

 

입구에는 정문에 해당하는 욕기루(浴沂樓)가 있는데 손님을 접대하던 곳이라 한다. 동재에는 왁자지껄한 사내들의 소리가 들린다. 방 안에는 막걸리와 부침개가 흥을 돋우고 있다.

 


산청향교 동재에는 왁자지껄한 사내들의 소리가 들린다. 방 안에는 막걸리와 부침개가 흥을 돋우고 있다.

 

명륜당 앞에는 여름에 피는 석류나무가 심겨 있다. 명륜당 대청마루에 앉아 읍내를 내려다보았다. 꽃봉산이 보인다. 명륜당 뒤편으로 자 모양으로 꺾여 있는 계단을 따라 대성전으로 향했다.

 


산청향교는 명륜당 뒤편으로 대성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 모양으로 꺾여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내삼문 앞에도 100년은 넘은 듯한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내삼문에서 고개 돌려 읍내를 보았다. 아까보다 더 많은 읍내 풍광이 들어온다. 대성전 앞에는 도깨비바늘들이 사람이나 동물에 붙어 새로운 곳으로 여행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산청향교 내삼문에서 바라본 읍내 풍광

 

대성전을 나와 명륜당을 지나 홍살문 옆 은행나무 아래에 앉았다. 오랫동안 쌓여있던 묵은 고민을 나무에게 털어놓았다. 잠시 '쉼표'를 찍었다. 나무에 기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져간 캔커피를 마셨다. 달싸름한 커피가 목을 타고 들어가 2016년 한 해 동안 고생한 나를 위로한다. 햇살이 내 위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문득 각박한 현실에서 순간 이동으로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