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7. 4. 4. 07:00



 

겨울이 한바탕 난리를 치고 지나갔다. 겨우내 기다렸던 봄을 맞아 봄 따라 콧바람 실컷 쐬고 싶어 봄날로 갔다. 330, 출퇴근길에 마주하기만 했던 중절모를 닮은 산, 경남 산청 백마산으로 향했다.

 

산청 신안면 원지마을에서 경호강을 따라 적벽산을 지나 갈전리와 중촌리로 향하는 옛 국도변에 차를 세웠다



산성교를 지나자 백마사 이정표가 나온다. 본격적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비탈길을 오려는데 근처 맑은 경호강에 사는지 천연기념물인 담비를 보호합시다는 안내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탈길 옆으로 봄까치꽃들이 앙증스럽게 옹기종기 모여 반긴다. 민낯을 드러낸 숲 사이로 분홍빛 진달래꽃들이 존재를 드러낸다. 마치 가정집 대문을 지나는 듯 가정집 옆을 지나 절을 올라가자 겨울을 이겨내고 먼저 피워냈던 동백이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린 자국이 보인다. 작은 절 옆으로 바로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는 길에 서자 정상 900m라는 이정표 따라 흙길이다.

 

진달래 한 송이가 바위 사이로 꽃을 피웠는데 수줍은 듯 고개를 돌려 오르는 나와는 눈길을 마주하지 않는다. 가파른 길은 끝이 없지만 간간이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적벽산이며 경호강을 바라보는 풍광이 재미난다.

 

땀 한번 훔칠 적이면 어김없이 진달래가 나타나 힘내라 응원한다. 고개 들어 길옆으로 난 무덤가 주위에 한 무리의 진달래꽃들이 유혹한다. 잠시 길을 벗어나 유혹에 빠졌다. 진달래밭을 나와 정상으로 향하다 망춘대를 가리키는 팻말 따라 30m 정도 왼편으로 가자 아름다우면서 아찔한 벼랑이 나온다.

 

발아래 아찔한 풍광과 달리 좀 더 너머를 보면 적벽산과 경호강이 빚은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경호강물 사이로 하얀 새 한 마리 물과 스치듯 날아간다. 가져간 커피 한잔 마신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망춘대에서 정상으로 향했다. 길은 여전히 가파르다. 고개 돌려 지나온 풍경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성의 흔적인지 여기저기 돌로 쌓은듯한 언덕이 나온다. 지나온 백마사에서 60m 가파른 길에 올라서야 겨우 평평한 길을 만났다. 널따란 길 가운데에 소나무가 여러 갈래 뻗었다.

 

100m 정도 더 올라가면 정상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자연 암벽 등을 이용해 성을 쌓은 듯한 흔적이 나온다. 돌들 사이에 사람들이 둥글게 만든 구멍이 있다. 깃발이라도 세웠을까 궁금하다.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가 나온다.

 

산성의 흔적 덕분에 이곳에 얽힌 전설이 떠올랐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진주성과 인접한 이곳에 여러 차례 싸움이 있었는데 무더운 여름 침공한 일본군은 성안에 물이 부족하면 항복할 것이라 믿고 성을 포위했다. 이때 지혜로운 장수가 말 한 필을 바위 끝에 세우고 쌀을 퍼서 말 등에 뿌리자 멀리서 보기에 말 목욕 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왜적은 험준한 성안에 물이 풍부하다며 포위를 풀고 퇴각했다고 한다. 이때 성안의 사람들과 말이 일시에 경호강에 내달려 물을 마시자 세 치나 물이 줄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때부터 이 산성은 백마산성이라 불렸다고 한다.

 

정상에는 백마산이라 적힌 비석과 옆으로 면민 안녕 기원 제단이 나온다. 정상은 오히려 춘망대보다는 둘러싼 나무 때문에 주위 풍광이 명확하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적벽산 정상까지는 1.69km, 월명산 정상까지는 1km.

 

산 정상에 오르는 목적이 아닌 까닭에 천천히 왔던 길을 돌아 나왔다. 올라오면서 보지 못한 샛노란 생강나무꽃과 낙엽 사이로 인기척에 놀라 황급하게 몸을 숨기는 뱀도 보았다. 발아래 무릎을 꿇어 양지꽃의 노란 빛도 보았다. 노란 양지꽃을 질투하듯 제비꽃이 여봐란 듯이 진보랏빛으로 아는체를 한다.

 

초록빛으로 햇살에 샤워하는 새 생명의 용트림이 즐겁다. 겨우내 봉인된 마음이 봄 색깔로 활짝 열렸다. 다시 망춘대에 이르렀다. 드넓은 풍경들은 삶을 만만하게 봤던 나를 다시 겸손하게 만든다. 그런 나를 바람이 위로한다. 다시 희망을 품는다.

 

갑갑한 도시에 살면서 메마른 마음들이 이곳에서 다시 촉촉해진다, 겨우내 묵은 마음을 비운다. 봄날,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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